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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포퓰리즘의 폐해? 베네수엘라를 보라!

대정전으로 사실상 국가 붕괴  …  마두로 대통령 운명은 군부에 달려

포퓰리즘의 폐해? 베네수엘라를 보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가 대정전으로 암흑천지가 된 모습.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가 대정전으로 암흑천지가 된 모습.

오리노코강은 베네수엘라 국토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남미에서 3번째로 긴(2140km) 강이다. 이 강의 중부지역에는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라고 부르는 대규모 유전지대가 있다. 넓이 15만km2(한국의 1.5배)의 이 유전지대에 매장된 채굴 가능한 원유는 2970억 배럴로 추정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2650억 배럴)보다 많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이란 말을 들어왔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원유는 초중질유(extra-heavy oil)라는 단점이 있다. 초중질유는 타르와 같이 점성(粘性)이 강해 운반이 어렵고 유황 성분이 많아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다. 초중질유를 수출 가능한 원유로 정제하려면 미국 등 글로벌 석유기업들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골수 반미주의자이자 강경 좌파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1999년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해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하고 외국 석유기업들을 내쫓았다. 2013년 암으로 사망한 차베스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머니로 국민에게 토지·의료·교육·식료품을 무상제공하는 등 극단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했다.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오일머니를 석유산업과 인프라 등에 투자하지 않고 국민의 환심을 사고자 무상복지제도를 늘리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다 2014년 중반 배럴당 100달러대이던 국제유가가 2015년 배럴당 20~30달러대로 폭락했다. 국가 재정의 95%를 원유 수출에 의존해온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으로 수입이 대폭 줄어들고 원유 수출량마저 크게 감소했다. 1998년 하루 330만 배럴이던 원유 수출량이 지난해 11월 110만 배럴로 줄어들었다. 마두로 대통령이 재원을 마련하고자 돈을 마구 찍어내면서 초인플레이션과 함께 식료품  ·  생필품 등의 품귀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 경제는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군부 지도부와 함께 걸어가면서 손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왼쪽).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가운데)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궁, 위키피디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군부 지도부와 함께 걸어가면서 손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왼쪽).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가운데)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궁, 위키피디아]

극심한 경제난으로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자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1월 23일 스스로를 임시대통령이라 선언하고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에서 68%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유력 후보들이 가택연금과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치른 대선은 무효라며 마두로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남미 국가도 대부분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과이도 의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한 국가는 이미 50개국을 넘어섰다. 반면 마두로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의 뒷배를 믿고 퇴진을 거부한 채 야권과 대치해 정국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정전(blackout)사태가 발생해 베네수엘라가 암흑천지가 되면서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3월 7일 오후 5시부터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총 25개 주 가운데 24개 주에서 정전이 발생해 제대로 복구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일상적으로 정전이 발생해왔지만 전국이 마비될 정도의 대규모 정전은 사상 처음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대 규모 정전이라며 정치적 혼란과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국민이 이제는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정전으로 마라카이보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생아 80여 명이 숨지는 등 베네수엘라 각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신장투석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한 환자는 1만여 명에 달한다. 지하철이 운행을 멈췄고, 신호등도 들어오지 않아 차들이 충돌하는 등 교통사고까지 빈발하고 있다. 기업과 관공서, 공장, 학교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인터넷과 통신망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냉장고에 보관하던 음식이 썩기 시작하자 국민들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식량을 꺼내 먹고 있다. 또 식수 부족으로 산속의 샘물을 찾고 있다. 비상전력으로 문을 연 슈퍼마켓과 빵집, 주유소 앞에는 수많은 국민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줄을 서고 있다. 

과이도 의장은 “이번 사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4억 달러(약 4530억 원)에 달한다”며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마두로 정권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3월 11일 과이도 의장의 요청에 따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행정권을 마두로 정권이 갖고 있기에 의회가 전력시설을 복구할 수단이 없다. 마두로 정권도 마찬가지다. 대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은 마두로 정권이 그동안 전력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관리하지 않아서다. 실제로 이번 대정전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전체 전력의 70%를 생산해온 구리 수력발전소의 고장 때문이다. 또 화력발전소들도 필요한 경유를 확보하지 못해 전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마두로 정권의 교체 천명

마두로 정권은 국영 석유기업에서 일하던 전문가들을 내쫓고 측근과 군부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비전문가들이 장기간 운영을 맡은 국영 석유기업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원유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고, 그나마 생산한 원유조차 제대로 정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두로 정권은 이번 대정전사태를 미국의 사이버 공격과 야권의 사보타주(태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지만 마두로 정권은 미국, EU 등의 식량과 의약품 원조를 틀어막고 있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 페루,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등으로 탈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베네수엘라 국민의 11%인 340만 명이 외국으로 떠났다. 

과이도 의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미국 정부는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고자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면서 군사 개입도 검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되찾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싸움을 지지하겠다”며 마두로 정권의 교체를 천명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 등 베네수엘라 군부 수뇌부는 마두로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버티기를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군부가 굶주린 국민의 원성을 외면하고 끝까지 마두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9.03.15 1180호 (p56~57)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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