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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통통하게 여문 살집에 구수한 맛 가득~

겨울 바다에 주렁주렁 피어나는 ‘맛의 꽃’ 굴

통통하게 여문 살집에 구수한 맛 가득~

굴은 색이 깨끗하고 검은 테가 선명한 것이 신선하다. [shutterstock]

굴은 색이 깨끗하고 검은 테가 선명한 것이 신선하다. [shutterstock]

연말이면 으레 이런저런 모임 자리가 생긴다. 대부분 일 년 동안 소식을 자주 전하지 못하고,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지인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오랜만에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려면 맛있는 음식과 대화를 이끄는 한두 잔의 술이 필요하다. 대체로 맛좋은 요릿집을 골라 약속을 잡지만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끼리는 편하게 집에서 모일 때가 왕왕 있다. 이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굴이다. 

굴은 차려 내기가 수월한 식재료다. 굴을 껍데기째 푸짐하게 담아놓으면 별다른 세팅을 하지 않아도 모인 이들의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먹는 사람들도 겨울의 신선함을 한가득 맛볼 수 있으니 근사하게 여긴다. 게다가 굴로 다양한 요리를 하면 맛이 제각각이라 쉬이 물리지도 않는다. 

남해는 경남 통영, 서해는 충남 보령이 주요 굴 생산지이며 대부분 양식을 한다. 남해에서 자란 굴은 알이 크고 살이 통통해 입에 넣을 때 푸짐한 느낌이 든다. 서해에서 자란 굴은 알이 잘고 맛이 진하다. 이는 양식 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남해 굴은 줄에 연결해 바닷속에서 키우는 방법(수하식)을, 서해 굴은 돌에 붙여 키우는 방법(투석식)을 주로 사용한다. 바닷속에 계속 잠겨 있는 굴은 먹이(플랑크톤)를 많이 섭취할 수 있어 알이 굵어진다. 반면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은 만조 때, 즉 물에 잠겼을 때만 먹이를 먹을 수 있어 크기가 작다.


남해 굴은 알 굵고 서해 굴은 진한맛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3배체 굴. [사진 제공 · 김민경]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3배체 굴. [사진 제공 · 김민경]

보리가 피면 굴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다. 즉 늦봄과 초여름에는 굴을 피하라는 뜻이다. 이 시기는 굴의 산란기로 생식소가 발달하면서 독소를 품기 때문에 생굴을 먹을 경우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영어로 열두 달 중 ‘ber’로 끝나는 달에만 먹으라는 말도 있다. 바로 9~12월(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이다. 좀 넓게 잡으면 r이 없는 달, 즉 5~8월(May, June, July, August)에는 먹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여름 굴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바로 ‘3배체 굴’ 덕분이다. 과일로 치면 씨 없는 수박과 같다. 3배체 굴은 생식소 발달을 억제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다. 생식 활동에 사용할 에너지를 성장에 쓰기 때문에 일반 굴보다 큼직하게 자란다. 또한 여름철에는 바다에 먹이가 더 풍부해 굴의 단맛도 겨울 굴보다 진하다.
 
봄의 별미인 벚굴도 있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섬진강 근처에서 맛볼 수 있다. 벚굴은 담수에서 살며 어른 손바닥만 할 정도로 크다. 바다 굴처럼 단맛이 많이 나지 않는 대신 맛이 순하고 구수한 풍미가 일품이다. 3배체 굴은 값이 비싼 데다 구하기 쉽지 않고, 벚굴은 때와 장소가 딱 맞아떨어져야 맛볼 수 있다. 굴을 푸짐하게 즐기고 싶다면 이맘때 바다 굴을 먹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햇굴은 9월부터 채취에 들어갔고 겨울 내내 나온다. 



싱싱한 굴은 탱탱함이 눈으로 보일 만큼 탄력이 좋고, 색이 맑으며, 알 끝부분의 검은 테두리가 선명하다. 깐 굴, 알굴로 불리는 생굴은 그릇에 수북이 담아 회로 즐겨 먹는다. 주로 초장에 찍어 먹는데 올리브 오일이나 레몬즙을 뿌려도 맛있다. 맛 좋은 보쌈김치를 곁들여 먹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껍데기째 유통되는 각굴은 그대로 찌거나 구워 먹는다. 쪄 먹을 때는 굴이 입을 벌릴 때까지 찜솥 뚜껑을 열지 않는 것이 좋다. 중간에 열었다가는 각굴의 입이 벌어지지 않아 먹는 일이 너무 고단해진다. 

반각굴 또는 하프셸은 굴 껍데기의 한쪽을 뜯어 가볍게 시즈닝을 한 뒤 호로록 마시듯 먹을 수 있게 손질한 굴이다. 시즈닝으론 초장, 양념간장, 칠리소스, 레몬즙 등이 많이 쓰인다.


굴무침  ·  물회  ·  굴밥 등 겨울 별미

[shutterstock]

[shutterstock]

굴로는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며 어느 것이 최고라고 꼽기 힘들 만큼 모두 맛있다. 요리는 주로 깐 굴로 한다. 깐 굴은 회로 바로 먹는 것이 가장 좋고, 이틀째부터는 익혀 먹을 것을 권한다. 깐 굴은 그릇에 푸짐하게 담은 뒤 서너 개씩 초장에 찍어 한입 가득 먹는 재미가 끝내준다. 

요리로는 배나 무처럼 시원한 맛이 나는 재료를 채 썰고 신선한 채소와 굴을 새콤한 고추장 양념에 버무리는 무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굴 무침에는 소면을 삶아 곁들여도 맛있다. 계절마다 들어가는 해산물이 달라지는 물회에 겨울 굴을 풍성하게 넣어도 좋다. 싱싱한 굴로 국을 끓이면 뜨끈한 국물에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가득 밴다. 가장 손쉽기로는 미역과 함께 끓이는 것이고, 명란이나 두부를 넣어 담백하게 끓이기도 하며, 여러 해물과 함께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하게 끓여 먹어도 별미다. 단, 굴은 많이 익히면 질겨지므로 다른 재료가 거의 익었을 때 넣어야 한다.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굴밥도 겨울 별미다. 탱탱한 겨울 무를 넣고 밥을 지은 다음 뜸 들일 때 굴을 얹으면 밥에 구수한 향이 밴다. 무의 시원한 단맛, 굴의 간간한 단맛, 쌀 특유의 달착지근함이 어우러진다. 찹쌀에 싱싱한 굴과 표고버섯을 함께 넣어 끓이는 굴죽은 겨울 추위를 달래고 입맛을 살려준다. 알이 잔 굴은 밀가루와 달걀로 옷을 입혀 전을 부치고, 알이 굵은 굴은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긴다. 

굴은 섬세하고 본능적인 미식의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건강을 지키면서 미모도 가꿔주는 영양까지 선사한다. 매년 모이지만 매번 반가운 친구들처럼 굴은 만나면 만날수록 가까이 두고 오래 먹고 싶은 바다의 보물이다.






주간동아 2018.12.14 1168호 (p70~71)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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