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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파괴된 핵실험장 사찰은 코미디”

“폼페이오 4차 방북 성과는 없는 셈…핵 리스트 신고 없는 북한의 셀프 비핵화는 허구”

“파괴된 핵실험장 사찰은 코미디”

[김형우 기자]

[김형우 기자]

1년 전 한반도는 북한의 핵실험과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로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1년 만에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듯한 평화 분위기에 젖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가을날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은 남북이 금방이라도 ‘통일의 문’을 열어젖힐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줬다. 남북은 이제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벼락같이 찾아온 한반도 평화 분위기와 달리 북한 비핵화를 위한 여정은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 일부 시설 폐쇄 이외에 이미 만들어진 핵탄두와 미사일은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남북, 북·미 정상 간 대화를 계기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며 종전 선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종전 선언이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와 미사일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 같은 주술인 것일까.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우리가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며 “‘북핵은 미국 적대에 대한 억제용이지 남쪽에 쓰지 않는다’는 믿음은 실질적인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10월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윤덕민 전 원장을 만났다.


북핵 협상, 美 중간선거 결과에 연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를 중간선거(11월 6일) 이후로 늦췄다. 

“북한이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실수라면…? 

“2000년 클린턴 정부 말기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북하면서 (북·미 사이에) 좋은 프로세스가 진행됐다. 그런데 그때 북한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스몰딜에 몰두하다 실기해 (북·미 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이번 방북 때 북이 적극적으로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 중간선거 전 트럼프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면 북이 원하는 바를 얻기 쉬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간선거 이후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연기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선거 결과에, 그리고 선거 이후 미국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됐다. 북핵 문제가 별 이슈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간선거가 끝나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과 입지가 크게 달라질 텐데….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야당의 공세에 시달릴 개연성도 있다. 하원은 예산권을 행사한다. 만약 하원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 사사건건 트럼프 대통령의 어젠다를 비토할 수 있다. 여론이 크게 악화되면 북핵을 반전카드로 삼을 수 있다. ‘6·25전쟁을 70년 만에 종결했다’며 평화 이벤트로 매스컴을 집중케 하는…. 그렇지만 효과는 크지 않고 오래가기도 어렵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 중간선거 이후로 늦춰지면서 종전 선언도 순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종전 선언을 두고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종전 선언은) 유엔군사령부(유엔사)와 주한미군, 한미동맹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남북이 손잡으면 동북아의 균형자가 될 수 있다’던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연상케 한다.” 

한반도 새 질서론에 동의하나. 

“남북 정상이 만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주변국 정상을 잇달아 만나는 것이 곧 한반도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최악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을 이룬 과정에는 미국 중심의 전후 자유무역 국제 환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국제 질서는 힘센 국가 주도의 파워 폴리틱스 시대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그렇고, 중국의 중화주의가 그렇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하는 가운데 일본이 재부상하고, 러시아가 극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질서가 파워 폴리틱스로 회귀하면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성장해온 우리의 처지가 가장 곤란해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북이 힘을 합한다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제어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너무 우리 중심적으로 국제 질서를 보고 있다.” 

북한은 대외환경 변화를 잘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은 미국과 핵보유국 담판을 위해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 남한을 적극 끌어들이고 러시아와 끈을 만드는 것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으로 중국의 몸을 달게 해 6년 동안 냉대하던 시 주석과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과도 슬슬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차원적 외교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8월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2개국과 양자회담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5개국과 양자회담을 가졌다. 9월 유엔 총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중반 우리의 국력이 북한을 앞선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반도의 주역은 한국이었다.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바탕으로 북핵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윤 전 원장은 “국제정치학자들은 폴란드와 한국을 강력한 국가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으로 가장 나쁜 위치에 있는 나라로 꼽는다”며 “강대국 사이에서 어떻게 우리의 생존을 보장받을지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채널 가동 안 돼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뭘까. 

“우리가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북핵 문제의 연원이 미국의 적대정책으로 북한이 자위적 차원에서 핵을 가진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미국이 적대관계를 해소하면 북한이 핵을 버리고 개혁·개방으로 나온다. 그러니 우리는 남북관계만 생각하자’는 그런 논리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북한 비핵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북핵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미 본토를 공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없애고 핵물질 이전을 막는 것이 1차 목표다. 북핵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것으로도 미국은 직접적인 위협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지 않은가.”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기 전까지는 그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오랜 평화에 익숙해져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진 면이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겪고도 북한이 그럴 리 없다고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남북정상회담 후 북한에 대해 경계하기보다 신뢰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 

“대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더라도 튼튼한 안보가 전제돼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지면 우리도 방어적 수단을 갖겠다고 결기 있게 나서야 한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 미국이 먼저 나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하겠나. 전쟁까지 하고 수차례 도발을 당했으면서도 북핵에 대해 ‘우리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문제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논리 구조를 보이는 것이 어이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에서도 비핵화와 관련한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상대가 여전히 정찰총국장과 통일전선부장을 지낸 김영철 국무위원회 위원이다. 김영철은 핵 문제의 실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카운터파트일 뿐이다. 북한이 김영철을 내세우는 것은 실질적인 비핵화 협의를 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마땅히 리용호가 나와야 하는데 회담장에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 외에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까지 방북했다. 비건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버렸다. 이게 뭘 의미하나. 북·미 간에는 여전히 디테일한 비핵화 협상채널이 없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열흘 앞두고 의전에만 합의했던 것처럼,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정상 간 빅딜을 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북한의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협상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워게임이다. 전쟁연습이다’라고 주장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하게 하는 등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의 충동적 성격과 협상 달인이라는 자만심을 부추겨 관료들을 제치고 빅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윤 전 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북한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 틀을 깨고자 트럼프 대통령과 빅딜을 시도할 것”이라며 “미국에 위협이 되는 ICBM과 핵탄두 몇 개를 건네줘 처리하는 대신 제재 완화와 종전 선언을 받아내려 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말 아닌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 보여야

[김형우 기자]

[김형우 기자]

북한 비핵화 논의가 시작된 지 반년이 됐다.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됐다고 보나. 

“비핵화가 100%이면 5~6%도 진전이 안 됐다. 여전히 90% 이상은 성역으로 남아 있다. 핵무기와 핵시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고 접근조차 못 하고 있다. 비핵화를 위해 제일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핵동결이다. 그리고 핵 리스트 신고를 통해 핵의 실상을 파악한 뒤 어떻게 비핵화할지 로드맵을 짜고, 그 절차에 따라 비핵화를 진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모든 핵협상은 그렇게 했다. 1994년 제네바합의도, 2005년 9·19 공동성명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의 셀프 비핵화만 지켜보고 있다. 핵 리스트 신고와 그 로드맵에 따른 비핵화가 아니면 북한의 살라미(잘게 쪼개기) 전술에 말려들게 된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말 그대로 핵·미사일 실험장일 뿐이다. 핵무기와 미사일을 양산하는 시설이 아니다. 영변 핵시설도 굉장히 낡고 오래된 시설이다. 플루토늄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우라늄 농축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무엇보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위협이 되는 60여 발의 핵탄두와 1000발 이상의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도 그대로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동안에도 북한은 핵탄두를 6개 이상 늘렸을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그대로인데, 실험장을 폭파한 것도 비핵화 조치라고 종전 선언을 하자 한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했다. 충분한 조치 없이 너무 쉽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 ‘북핵은 미국 적대에 대한 억제용이고 남쪽에 쓰지 않는다’는 믿음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기술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는 10년, 20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런데 비핵화 의지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핵 리스트 신고를 받아보면 진정성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핵은 방사능물질이기 때문에 이력이 남는다. 시료 채취 등을 통해 핵물질 양을 추정할 수 있는데, 핵무기 만드는 데 얼마 쓰고 얼마가 어디에 남았는지 신고 내용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바로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영변을 사찰했을 때 신고 내용과 일치하지 않아 북한이 핵물질을 숨겨놨다는 사실을 알아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사람은 하나같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그 시작은 핵 리스트 신고다.”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 이후 핵실험장에 국제사찰단이 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난센스다. 파괴된 실험장을 어디서 어떻게 사찰하겠다는 건가. 무너진 갱도까지 땅을 파 들어가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데, 엄청난 작업이다. 그리고 어디서 땅을 파 검증할 건가. 코미디 같은 얘기다.”




주간동아 2018.10.12 1159호 (p20~23)

  •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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