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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적 이야기보다 ‘학생답게’가 더 듣기 싫어요”

서울시교육청 두발 자유화 논란, “면학 분위기 해쳐” vs “별 상관없다”

“성적 이야기보다 ‘학생답게’가 더 듣기 싫어요”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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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때는 교복도 안 입고 다녔으면서, 기껏해야 두발 자유화하는데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서울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김모(14) 군의 말이다. 김군의 아버지는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 이후 중학교에 입학해 학창 시절 내내 교복을 입지 않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여론의 논란을 일으켰다. 중고교생 두발 규제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 조 교육감의 발표에 따르면 내년 2학기부터 ‘서울학생 두발 자유화’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이미 대부분 학교가 파마와 염색만 규제하는 정도라 머리 길이를 자유화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기성세대의 반발은 거셌다.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파마나 염색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두발 자유화는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물론, 경제가 어려운 판에 학부모가 자녀들의 파마나 염색 비용으로 추가 지출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두발 자유화 조치에 가장 격렬히 반응한 것은 역시 학부모다. 9월 30일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은 ‘두발 규제 철폐 조치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전학연은 성명을 통해 ‘책가방에 교과서와 필통 대신 화장품 파우치와 고데기, 빗, 헤어롤을 잔뜩 넣고 다닐 우리 딸아이들을 생각하니 겁나고, 연예인 머리 스타일 만드느라 아침부터 거울 앞에서 왁스 발라가며 주말이면 파마하고 있을 아들들 생각하니 열불이 터진다’고 비판했다. 

전학연의 성명처럼 학부모들도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서울 성북구의 김모(43·여) 씨는 “인권 교육을 생각해서라도 자율로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렇게 급박한 시행은 문제가 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받아들일 시간을 줘야 한다. 당초 두발이나 의복 규제가 학생들이 학업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치였는데, 별 대안도 없이 규제만 풀어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규제 없으면 면학 분위기는?”

서울 시내 중고교생들의 모습(왼쪽). 초등학생 유튜버의 메이크업 콘텐츠. 요즘은 초등학생도 고학년이 되면 화장을 하는 추세다. [뉴스1]

서울 시내 중고교생들의 모습(왼쪽). 초등학생 유튜버의 메이크업 콘텐츠. 요즘은 초등학생도 고학년이 되면 화장을 하는 추세다. [뉴스1]

비단 학부모뿐 아니라 기성세대는 전반적으로 조 교육감의 두발 자유화 조치에 부정적이다. 9월 2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6244명을 대상으로 중고교생 두발 자유화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반대’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이 54.8%로 찬성 40.4%에 비해 높았다. 연령별로는 40~60대에서 반대 의견이 과반이었다. 반면 20대와 30대에서는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많았다. 

경기 의왕시의 박모(60) 씨는 “요즘 화장하지 않는 여중생을 보기 힘들다. 남학생들도 교복만 벗으면 학생인지 어른인지 헷갈린다. 그나마 남아 있는 염색, 파마 등 두발 규제까지 풀어주면 음주, 흡연 같은 탈선의 유혹에 더 크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 1980년대 고교생 두발 자유화 시절에도 염색과 파마는 규제했다. 학생들의 탈선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을 마련한 뒤 외모 가꾸기를 학생 자율에 맡겨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학생들은 어른들의 이 같은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고모(17) 군은 “단순히 파마와 염색을 허락한다고 학생들의 생활이 달라질까 싶다. 사실 지금도 두발 문제로 선생님들로부터 지적받는 학생은 드물다. 또 두발은 성적과 크게 관계없다. 전교 1등인 학생도 화장을 하고 다닌다”고 밝혔다. 경기 과천시의 이모(16) 양은 “두발 자유화 여부보다 학생들에게 더 상처가 되는 것은 어른들의 반응이다. 단지 파마와 염색을 허락하는 것만으로 대다수 학생이 학업을 등한시하고 비행을 일삼을 것이라는 우려는 우리를 미숙한 존재로 보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두발 자유화 이슈에 크게 관심 없는 학생들도 반발심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복을 벗은 지 오래되지 않은 20대 초반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은 학생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올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신모(19) 씨는 “사실 학생들이 원하는 두발 자유화는 이미 대부분 이뤄졌다. 두발 길이에 관한 규제가 대부분 없어진 데다, 남학생은 특히 짧은 머리가 유행이라 고등학생 때도 두발 규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의 백모(21·여) 씨는 “두발과 의복이 완전히 자유로운 성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은 드물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두발 자유화 초기 몇몇 학생이 파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있지만, 잠깐일 뿐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발과 학업성취도는 관계없다

2011년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  반대를 외치는 학부모 및 시민단체. [뉴스1]

2011년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 반대를 외치는 학부모 및 시민단체. [뉴스1]

서울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두발 관련 규제가 없는 것이 오히려 교육 현장 분위기를 밝게 하는 것 같다. 학생들과 두발 때문에 싸울 일이 없어지니, 그 시간에 학생들의 생활이나 교과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육감의 발표로 당장 내년 2학기부터 서울 시내 모든 학생이 염색과 파마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 중고교 708곳 가운데 597곳(84.3%)이 두발 길이 규제가 없는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일단 내년까지는 두발 길이에 관한 규제의 경우 서울 시내 학교에서는 없애고, 파마나 염색은 학교와 시간을 두고 협의해나갈 예정이다. 조 교육감도 “두발 길이만큼은 내년 2학기부터 100% 학생 자율에 맡겨달라”고 주문했다. 

사실 서울시 중고교의 두발 자유화는 6년 전부터 시행됐어야 하는 사항이다. 2012년 발의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2조에 따르면 학생은 복장 및 두발 등 용모에서 개인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학교는 복장에 대해서는 교칙으로 제한할 수 있으나 두발 규제는 할 수 없다. 조례가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작 시행됐어야 할 두발자유화가 학부모들 불안 때문에 막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사실 학부모들도 두발 자유화 반대 논리가 빈약하다는 점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본인들도 학창 시절 두발 규제의 불합리성을 겪은 세대니, 두발 자유화 조치의 당위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다. 그렇다고 이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언제든 외부 요소에 의해 추락할 위험이 있는 사회에 살다 보니, 변화 자체가 두려워진 것이다. 본인 일이라면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겠지만, 자녀와 관계된 일이다 보니 보수적 태도가 더 크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과 가장 비슷한 두발 규제를 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길이에 대한 별다른 규제는 없지만 염색과 파마를 허용하는 학교가 있고, 반대로 여학생의 머리 묶는 방법까지 규제하는 학교도 있다. 한편 대만은 2005년 9월부터 초중고교생의 두발 전면 자유화를 선언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교육부 장관과 면담을 통해 얻어낸 것. 

두발 규제 철폐 이후 대만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순위에 크게 변화가 없었던 것. 

PISA는 읽기, 수학, 과학 등 세 영역의 국가별 학업성취도를 측정하는 평가다. 2005년 대만은 회원국 중 과학은 8위, 읽기는 16위, 수학은 1위로 준수했다. 같은 해 한국은 과학 7위, 읽기 1위, 수학 4위를 기록했다. 3과목 중 2과목을 한국이 대만에 비해 앞섰다. 하지만 2015년에는 결과가 뒤집혔다. 대만이 수학과 과학에서 4위를 기록할 동안 한국은 각각 8위와 11위에 머문 것. 읽기 분야에서는 한국이 7위, 대만이 20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제는 애들 미용실 비용까지 걱정”

2011년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를 촉구하는 학생 및 시민단체(왼쪽)와 올해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을 발표하고 있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2011년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를 촉구하는 학생 및 시민단체(왼쪽)와 올해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을 발표하고 있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학부모들이 두발 자유화에 반대하고 나선 데는 비용 문제도 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이모(45·여) 씨는 “지금도 아이들 화장품을 사줘야 해 부담이 크다. 당장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화장이 필수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제 10만 원이 훌쩍 넘는 파마에 염색까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인터넷 강의보다 뷰티 유튜버 동영상을 더 열심히 보는 딸과 파마 비용으로 다툴 생각에 벌써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정모(44) 씨는 얼마 전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비상금을 내줬다.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신발을 한 켤레 사달라고 했는데, 가격이 20만 원이 넘었다. 정씨는 처음에는 이렇게 비싼 신발을 사줄 수 없다며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아이는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신발을 사겠다고 나섰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쓰게 할 수는 없어 정씨는 식비를 아껴 모아둔 30만 원을 건넸다. 

그는 “지금도 아이들의 옷값, 신발값이 부담스럽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제품이 많다. 고등학생쯤 되면 모르겠지만, 작은아이의 경우 한창 자라는 중학생이라 큰마음 먹고 옷이나 신발을 사줘도 1년이 지나면 못 입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두발 규제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학부모의 현실을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일부 학생도 이에 대해서는 걱정하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의 중학생 김모(14) 양은 “지금도 어디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는지에 따라 어울리는 친구가 달라진다. 이제는 어떤 미용실을 다니는지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굳이 머리카락에까지 그렇게 돈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서울 양천구의 송모(17) 군은 “옷이나 신발은 눈으로 봐도 가격이 가늠되지만, 헤어스타일은 가격에 따라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다. 특히 머리카락이 짧은 남학생은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고급 미용실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안양시 이모(16) 양은 “학생들이 성인에 비해 미숙할 수는 있지만, 사리분별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비싼 옷을 입고, 고급 미용실에 다니는 친구가 부러울 수는 있지만 이를 부모님에게 요구할 정도로 철없는 친구는 드물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학생이 진지하게 자기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단지 두발 자유화만으로 면학 분위기가 무너지고, 과소비 풍조가 생긴다고 여기지 말아줬으면 싶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8.10.05 1158호 (p24~27)

  •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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