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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러시아가 다시 동방으로 돌아온다

30년 만에 최대 군사훈련 ‘보스토크 2018’ 실시…30만 병력, 3만6000대 전투차량 투입

러시아가 다시 동방으로 돌아온다

러시아 공수부대원들이 낙하훈련을 실시하는 모습(위)과 헬기로 적진 침투훈련을 하는 모습.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 공수부대원들이 낙하훈련을 실시하는 모습(위)과 헬기로 적진 침투훈련을 하는 모습.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의 국장(國章)에는 동쪽과 서쪽을 각각 쳐다보는 쌍두(雙頭) 독수리가 있다. 2000년 제정된 국장의 쌍두 독수리는 러시아 영토가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동쪽이 막히면 서쪽으로 가고, 서쪽이 막히면 동쪽으로 가는 전략을 써왔다. 제정러시아는 1856년 크림전쟁에서 유럽 열강에 패해 서남쪽으로 진출할 통로가 막히자, 동쪽을 공략해 1860년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을 맺고 극동의 연해주(프리모르스키 크라이)와 사할린섬을 차지했다. 제정러시아는 연해주에 항구를 만들고 ‘블라디보스토크’(‘동방을 지배하라’는 뜻)라고 명명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는 제정러시아의 겨울에도 얼지 않는 유일한 부동항이 됐다. 

제정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1891년 극동지역을 개발하고자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1916년 완공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지금도 러시아 영토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


‘자파드 81’ 훈련 이후 최대 규모

러시아 전차들이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 전차들이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가 옛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9월 11~15일 닷새간 실시되는 군사훈련의 작전명은 ‘보스토크 2018’이다. 보스토크는 러시아어로 ‘동방’이라는 뜻이다. 이번 훈련은 우랄산맥 동쪽에서부터 태평양 해안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서 진행된다. 

원래 보스토크 훈련은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러시아는 이번 훈련에 전체 병력 100만 명 가운데 3분의 1에 달하는 30만 명(모든 공수부대 병력 포함)을 비롯해 전차와 장갑차 및 각종 전투차량 3만6000대, 전투기와 폭격기 등 각종 항공기 1000여 대를 투입한다. 북해함대와 태평양함대도 동원한다. 이번 훈련은 1981년 ‘자파드 81’ 훈련 이후 최대 규모다. 자파드는 ‘서쪽’이란 뜻이다. 옛 소련 시절 동유럽(러시아에서 보면 서쪽)에서 실시되는 훈련에는 자파드라는 작전명이 붙었다. 자파드 81 훈련에는 병력 15만 명이 동원됐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번 훈련은 자파드 81을 재현하는 것이지만 규모는 더욱 크다”면서 “모든 훈련은 전쟁에 가까운 조건 하에서 실시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번 훈련에 인민해방군 3200명과 전차 등 각종 차량 900여 대, 전투기와 헬기 30대를 파견하고 몽골군도 참가한다. 중국 해군 함정들도 러시아 함정들과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중국 국방부는 “중·러 양군의 전략지휘본부가 공동으로 지휘감독부를 조직하고,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 전구와 러시아군 동부 군구가 연합 전역 지휘기구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이런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 조치에도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14~20일 자국의 서북부와 이웃 나라 벨라루스에서 ‘자파드 2017’을 실시했다. 당시 동원된 병력은 2만 명 규모였다. 그런데 이번 훈련은 전쟁을 가정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과 무기, 장비를 투입한다. 러시아는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에서 잃어버린 영향력을 복원해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상원 국방위원회 소속의 프란츠 클린트세비치 의원은 “이번 훈련은 미국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사령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서 주목할 점은 러시아와 중국이 핵 공격 모의연습도 실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극비 계획인 핵 공격 훈련은 아무리 밀월관계의 국가라도 함께 하지는 않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러시아와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듯이, 양국은 사실상 군사동맹관계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러시아의 중국 전문가인 바실리 카신은 “중국과 러시아는 문서상에는 없지만 사실상 군사동맹을 구축하고 있다”며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미국의 제재와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전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합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가부예브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연구원은 “수년 동안 베이징은 모스크바에게 잠재적 적국이었지만, 이제 더는 베이징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몽골도 참여해 군사동맹 과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망원경으로 ‘자파드 2017’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망원경으로 ‘자파드 2017’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크렘린궁]

이번 훈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신동방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동방정책이란 자원이 풍부한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을 개발해 러시아의 경제발전 및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진출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신동방정책이 힘을 받으려면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해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4차 동방경제포럼을 주재할 예정이다. 동방경제포럼은 푸틴 대통령이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개최해온 경제개발협력 행사다. 이번 포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낙연 한국 국무총리 등이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5월 말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도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요청했지만 김 위원장은 불참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을 주재하면서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극동지역 개발이 러시아 경제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20%만 개발된 상태다. 특히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동토가 녹으면 앞으로 에너지 개발이 더욱 활기를 띨 것이 분명하다. 극동지역 개발이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보다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극동지역은 전체 국토 면적의 36%를 차지하지만, 인구는 623만 명으로 러시아 전체 인구 1억4367만 명의 4.3%에 불과하다. 러시아 정부는 인구를 늘리고자 극동지역 거주민이나 이주민 가운데 희망자에게 토지 1만㎡를 무상으로 분배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외국 기업들의 투자도 미미하다. 러시아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이 적극 나서주길 기대한다. 

지금 러시아는 한 손에 강력한 군사력을, 다른 손에 풍부한 자원을 들고 극동지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고 있다.




주간동아 2018.09.12 1155호 (p60~61)

  •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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