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4

2018.09.05

황승경의 on the stage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20세기 최고 문학

연극 ‘이방인’

  • 입력2018-09-0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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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극단 산울림]

    [사진 제공 · 극단 산울림]

    1999년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몽드’는 20세기 최고 문학작품을 선정하고자 1만7000여 명의 프랑스인에게 “20세기에 출간된 책 가운데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가”라고 물었다. 프랑스인이 꼽은 작품은 알베르 카뮈(1913~60)의 소설 ‘이방인’이었다. 

    소설 ‘이방인’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9세의 작가 카뮈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주목받았다. ‘같지 않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카뮈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작품이 실존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1957년 스웨덴 한림원은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밝힌 작가’라고 평하며 44세 카뮈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 

    카뮈의 소설처럼 연극 ‘이방인’도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한다. 선박중개사무실 직원으로 일하는 뫼르소(전박찬 분)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양로원에 계시던 어머니의 사망 소식에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는 다음 날 옛 직장동료 마리(강주희 분)를 만나 코믹영화를 관람하고 해변에서 데이트를 즐긴 뒤 사랑을 나눈다. 얼마 후 이웃에 사는 레이몽(정나진 분)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간 뫼르소는 아랍인들과 난투극을 벌이고, 아랍인이 휘두르는 칼날에 비친 강렬한 햇빛에 황당하게도 아랍인을 향해 총을 쏜다. 살인죄로 법정에 선 뫼르소는 살인이라는 죄가 아니라 살인자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고 단죄를 내리는 인간 세상을 발견한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항소를 포기한 채 세상 부조리에 저항한다. 

    뫼르소(Meursault)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생산지로 유명한 지역명이기도 하지만, 바다(Mer)와 태양(Soleil)을 조합한 남자 이름이다. 카뮈는 바닷가에 놀러갔다 태양 때문에 저지르는, 이유 같지 않은 살인을 연상하며 뫼르소라는 이름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번역, 각색도 함께한 연출가 임수현이 그리는 뫼르소는 본능에만 충실한 돌출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그래서 연극은 법률과 관습의 지배를 받는 현대인에게 판타지로 일탈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감정의 기회를 준다. 연극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솔직한 속마음을 읊는 독백은 전체 공연 분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다. 대사를 외우는 것만도 여간 힘들지 않았을 텐데 뫼르소의 고뇌와 갈등이 느껴지는 전박찬의 독백연기는 소설과는 다른 감동을 던진다. 뫼르소의 독백에서 관객은 꼭꼭 숨겨두고 혼자 생각했던 속마음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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