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1

2018.08.15

국제

누가 베네수엘라 여성을 성매매로 내모나

인플레율 100만%, 화폐개혁에도 볼리바르화는 휴지조각

  • 입력2018-08-14 11: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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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생활고 때문에 콜롬비아로 넘어가고 있다(왼쪽).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El Espectador, 동아DB]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생활고 때문에 콜롬비아로 넘어가고 있다(왼쪽).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El Espectador, 동아DB]

    베네수엘라는 미녀가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각종 세계미인대회 입상자 가운데 30%가 베네수엘라 출신이다. 그런데 경제가 파탄 나면서 베네수엘라 젊은 여성 중 상당수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콜롬비아로 건너가 성매매를 하고 있다. 또 베네수엘라 전체 인구 3100만 명 중 10%가 이웃 국가인 콜롬비아, 브라질, 페루, 에콰도르, 가이아나 등의 국경을 넘어가 ‘경제 난민’으로 살고 있다. 콜롬비아의 경우 베네수엘라 난민이 87만 명이나 된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공공기관인 ‘여성-양성평등 전망대’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고타의 성매매 여성 중 35.7%가 외국인인데, 베네수엘라 여성이 99.8%에 달한다. 보고타의 성매매 외국인 여성 모두 베네수엘라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는 베네수엘라 출신 여성 중 절반(50.3%)은 18~25세, 33.1%는 대학까지 마친 고학력자다. 특히 베네수엘라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려고 몸을 파는 여성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베네수엘라 성매매 여성의 84.5%가 “성매매로 번 돈을 베네수엘라에 남은 가족에게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를 등지는 사람들은 서민만이 아니다. 교사, 교수, 의사, 과학자, 엔지니어 등 전문직도 생활고를 못 이겨 이웃 국가로 떠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난파선이 된 셈이다. 부자들도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고 있다. 이들의 행선지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300여 년간 베네수엘라를 식민지배했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인은 28만 명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이 최근 2년 사이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때문에 지난해 수도 마드리드의 집값 상승률이 17%에 달했다고 한다.

    황금비자제도

    스페인에 베네수엘라 부자가 몰려드는 이유는 2013년 신설된 ‘황금비자제도’ 때문이다. 황금비자제도란 50만 유로(약 6억5000만 원) 이상 부동산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스페인 정부가 즉시 영주권을 발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베네수엘라와 스페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도 비슷하다. 베네수엘라 부자의 스페인 행렬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해온 베네수엘라는 지난 5년간 극심한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전기 부족으로 정전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와 인근 미란다주, 바르가스주 등에선 7월 31일 5시간 동안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해 지하철이 멈춰 서고 은행, 쇼핑몰, 식당들이 문을 닫는 등 대혼란이 빚어졌다. 카라카스의 경우 도시의 80%가 정전사태로 사실상 마비됐다.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한 것은 화력발전소를 돌릴 충분한 석유가 없기 때문이다. 원유는 많이 생산되지만 이를 정제해 석유와 휘발유 등을 제조할 시설이 없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7000여 번 정전이 발생했다. 지방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도 많다. 



    정전사태는 그나마 낫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탓에 식료품을 살 수 없다는 점이다. 브라질산 쌀 1kg 가격은 22만 볼리바르다. 베네수엘라의 월 최저임금인 39만 볼리바르로는 쌀 2kg도 구매할 수 없다. 그나마 쌀을 살 수 있으면 다행이다. 상점들은 대부분 텅텅 비어 있어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기조차 어렵다. 갓난아기에게 먹일 우유도 부족하다. 점심 한 끼를 먹으려면 300만 볼리바르를 내야 한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큰 화폐단위인 1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미국달러로 30센트밖에 안 된다. 말 그대로 하이퍼(hyper·超)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배에서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킨 국부(國父)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의 얼굴이 들어간 볼리바르화는 이미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올해 인플레이션율을 100만%로 예상하고 있다. 

    역대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은 국가는 헝가리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7월 한 달에만 물가가 4190조%까지 치솟았다. 두 번째는 2008년 인플레이션율이 2억3100만%였던 짐바브웨다. 세 번째는 1921년 2억%였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은 전쟁배상금을 지급하고자 엄청난 양의 통화를 발행해야 했다. 베네수엘라는 물가가 15시간마다 배 이상 뛰고 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적인 물가상승률 집계를 포기한 상태다.

    포퓰리즘이 21세기 사회주의?

    경제난에도 포퓰리즘 정책 밀고나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가운데). [위키피디아]

    경제난에도 포퓰리즘 정책 밀고나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가운데). [위키피디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8월 20일 볼리바르화를 10만 대 1로 액면절하하는 화폐개혁인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단행할 예정이다. ‘화폐 액면절하’로 불리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둔 채 액면가를 낮게 바꾸는 조치를 말한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화폐단위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거래가 불편하거나 부정부패 또는 지하경제 규모가 엄청날 경우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의 화폐개혁은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짐바브웨 정부도 과거 통화인 짐바브웨달러에 대해 리디노미네이션을 여러 차례 실시했지만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2006년 1월 1000 대 1, 2008년 8월 100억 대 1, 2009년 2월 1조 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2015년 10월 1일자로 짐바브웨달러를 공식 폐지했다. 베네수엘라도 짐바브웨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마두로 대통령은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해온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유가가 높을 때 원유 판매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를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 휘발유와 생필품 무료제공 등 포퓰리즘 정책에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장기집권을 한 차베스 전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제조업 기반이 사라졌으며,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치약, 비누, 기저귀, 식용유 같은 생필품을 상점에서 살 수 없을 정도였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난에도 포퓰리즘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13년 4월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베네수엘라 누적 경제성장률은 -42%를 기록했다. IMF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하고 있다. 원유 생산량은 지난 30년간 최저 수준인 하루 130만 배럴로 감소했다. 그런데도 마두로 대통령은 경제난이 악화하는 이유가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8월 4일 폭발물을 실은 드론(무인기)으로 마두로 대통령 암살을 기도하려던 사건까지 발생해 정국마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민심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는 가운데 치안마저 불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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