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0

2018.08.08

인터뷰 | ‘박근혜 10년 일정 총괄’ 이창근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격정토로

단독 | “ 朴,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에 사육당했다”

“내가 짠 대통령 일정표 崔 손에 들어가  … ‘3인방’은 모든 게 崔 지시였다 고백해야”

  • 입력2018-08-04 16: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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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이창근(44) 전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은 2007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정을 담당했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선인비서실 보좌관을 거쳐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 국정홍보 행정관을 지내며 박근혜 청와대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박 전 대통령을 대면한 몇 안 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경제학 박사인 그는 2016년 3월 청와대를 나왔고,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부원장과 서울대 연구부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지역발전센터 원장으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3인방’과 ‘몸통’ 최순실

    ‘이창근’이라는 이름은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보도한 이른바 ‘정윤회 문건’(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의 ‘십상시(十常侍)’에도 등장한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이 문건에는 정윤회 씨가 대통령비서실의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여권 관계자 10명과 정기적으로 회동하며 청와대 내부 일과 인사를 논의했는데, 이들이 중국 후한(後漢) 말기 어린 황제 영제를 조종해 온갖 전횡을 휘두른 10명의 내시(십상시)로 불린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정윤회 문건’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 전 대통령, 그리고 보수정당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이 전 행정관은 ‘주간동아’와 몇 차례 만남에서 답답함과 아쉬움을 토로하며 ‘십상시 사건’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십상시로 거론된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실명 인터뷰를 하는 만큼 부담감도 커 보였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문고리 3인방’이 국가정보원(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는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7월 12일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정 전 비서관은 최순실 씨에게 청와대 비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1년 6개월 만기복역 후 출소했는데. 



    “그들과 함께 국정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고, 국민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3인방 외에는 전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논의했더라면 당연히 법적 문제를 따져보고 문제를 제기했을 거다.” 

    최순실 씨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나. 

    “전혀(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서 정윤회 씨에 대해선 들어봤지만 최씨는 생각도 못 했다.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보도됐을 때 나는 물론이고,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3인방에게 직접 확인한 적이 있다.” 

    그때 뭐라고 했나. 

    “ ‘정씨와 (관계는) 끝났다’고 했다. 최씨와 관련해선 말을 안 했다. 정씨 관련해서만 물어봤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최씨의 존재는 전혀 몰랐으니까. 최씨에 대해 알았다면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나 보좌진이 문제제기를 했을 거다. 그런데 이제 퍼즐 조각이 맞춰진 거 같다.” 

    퍼즐 조각? 

    “그렇다. 최순실 국정논단 사태가 불거진 뒤 최씨의 운전기사 증언이나 청와대 조리장의 인터뷰 등을 보니 평소 의아했던 부분들이 하나씩 풀렸다. 3인방과 최씨는 매주 일요일 별도회의를 하고 주요 사안을 결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 모르게 3인방 위에 ‘몸통’으로 존재했다.”

    “ ‘정유라 챙기기’ 의아했다”

    이재만 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 (왼쪽부터) [뉴시스]

    이재만 전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 (왼쪽부터) [뉴시스]

    당시 총무비서관실 조리장(양식)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한상훈 셰프는 2016년 12월 7일 ‘여성동아’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기 초부터 이영선 전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이 거의 일요일마다 최씨를 픽업해 프리 패스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문고리 3인방’은 관저에서 그를 기다렸다. 조리장도 3명 대기했다. 관저 주방에서 화장실 가는 길에 그와 두 번 마주쳤다. 늘 일본식 전골 요리 ‘스키야키’를 먹었다. 3인방과 회의할 때는 출출하다며 김밥을 달라고 했다. 집에 갈 때 김밥을 싸달라고 해 포일에 싸서 줬다.’ 

    평소 의아했던 일들이 뭔가. 

    “2014년 당시 야당 의원이 정유라의 승마대회 특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정유라 사건은 국회 상임위원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차원에서 강하게 대응하라’는 메시지가 국회에 전달됐다. 최경환 의원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을 때인데, 대통령 뜻이란 말이 돌았다. 승마협회의 문제점은 그렇다 쳐도, 정유라가 마사회 승마장 무료 이용이라는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정유라를 챙기는지 의아했다. 대통령이 뭐가 아쉬워 이런 문제에 적극 나서겠는가.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세월호 참사 때라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실시간 보고를 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정 전 비서관은 상황보고 내용들을 한꺼번에 출력해 오후와 저녁에 대통령 관저 테이블에 놓아뒀다고 했다. 대통령비서실 상황보고를 정 전 비서관 e메일로 11차례 발송했는데 그걸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은 거다. 우리도 관련 보도를 보고 황당했다. 실시간으로 상황보고가 전달된 줄 알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아침방송 속보를 보고 진위를 확인했고, ‘세월호 탑승객 전원 구조’ 소식을 접한 뒤 늦은 점심을 할 정도로 긴박했다. 식사를 하다 ‘전원 구조’ 속보가 오보로 확인돼 숟가락을 놓고 다시 업무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 전 비서관이 실시간 보고를 안 했다니…. 검찰 조사를 보니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2시 15분 최씨가 대통령 관저를 방문해 3인방과 회의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이 결정됐다. 정 전 비서관이 최씨를 만나 상황보고에 관해 논의하고 뒤늦게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짐작된다.” 

    정 전 비서관은 공무상비밀누설죄로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기록물을 보낸 것도 전혀 몰랐다. 뉴스를 보니 내가 만든 박 대통령 당선인 일정표가 최씨에게 보내졌더라. 2007년 3인방을 처음 만났을 때도 서로를 이 차장(이재만), 정 과장(정호성), 안 과장(안봉근)이라 불렀고, 선거캠프 시절 박 전 대통령도 ‘안 과장에게 이 서류 전달해주세요’라고 해 의아했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최씨의 운전기사 인터뷰 기사를 보니 최씨는 ‘소장’으로 불렸더라. 소장, 차장, 과장…. 최씨가 사실상 ‘3인방의 보스’고, 수직적 관계라는 건 직함에서도 드러난다. 주요 사안은 최씨가 주재하는 회의에서 논의하고 대응 방안을 결정한 뒤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대통령은 ‘논의한 대로 추진하세요’라고 얘기했을 거다. 3인방이 의견을 모아 보고하니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을 거 같다. 3인방은 모든 걸 알면서도 함구한 채 주변을 기만했고, 그들 위에는 최씨가 군림한 거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들에게 사육을 당한 거고…. 지금이라도 3인방은 ‘모든 게 최씨의 지시였다’고 얘기하는 게 솔직할 거 같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3인방을 잘못 쓴 책임이 크다.” 

    매일 함께 일하면서도 최씨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건…. 

    “3인방 외에 관저 내실에는 누구도 출입하지 못했고, 3인방은 주말에 최씨와 비밀회동을 했으니 알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과 국회의원, 기자들도 모두 속았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청와대에서 일한 직원들은 소모품이었다는 자괴감이 들까. 국정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책임은 통감하지만, 우리도 속았다는 배신감은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한다.” 

    기자는 이즈음 정윤회 문건에 등장한 ‘십상시’로 화재를 돌렸다. 그는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당시에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문건에 등장한 식당 상호가 ‘◯◯가든’이라고 해서 처음엔 고깃집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중식당이더라.(웃음) 식당 위치도 모르고 정윤회 씨를 만난 적도, 일면식도 없다.”

    “ ‘십상시 굴레’ 벗어났어야 하는데…”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검찰 조사를 받았나. 

    “문건과 관련해 이재만 전 비서관과 김춘식 전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이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나를 포함해 나머지는 서면조사를 받았다.” 

    3인방을 포함한 8명은 세계일보 대표와 편집국장, 기자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놓고 1년 8개월 만인 2016년 7월 고소를 취하한 이유는 뭔가. 

    “당시 3인방이 고소 취하를 독려했다. 지금 생각하면 국정농단 관련 취재가 시작되고 하나 둘 밝혀질 즈음인데, 각자 명예도 걸린 일이었던 만큼 취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문건 내용이 허위라는 걸, 최소한 십상시 모임이 존재하지 않는 명백한 허위란 걸 밝혀 얼토당토않은 ‘십상시 굴레’에서 벗어났어야 하는데…. 3인방을 뺀 나머지 인사들은 죽어라 일만 하고 ‘이상한 내시’가 돼버린 셈이다.” 

    당시 ‘십상시’로 분류된 8명은 고소를 취하했지만 ‘비선(秘線) 실세’로 보도된 정윤회 씨는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해 8월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에게 문건이 사실과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2014년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3인방에 둘러싸여 외부 인사와 소통이 단절된 건 아닐까. 

    “그건 아니다. 어떤 장관은 행사에 앞서 ‘잠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겠다’고 해 대면보고 시간을 잡아줬고, 상당수 국무위원도 필요할 때 대면보고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전화나 e메일도 되는데 굳이 시간 써가며 대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업무 스타일이 그랬다. 휴가 때는 관저 건물 밖에서 서류를 쌓아놓고 일에 집중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정책, 그중에서도 경제정책 부문을 맡아 정책을 가다듬었는데 갑자기 후보 일정을 담당하는 업무를 하게 됐다. 2011년 재·보궐선거, 2012년 총선, 대선 등에서 일정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친박’ 후보 중심으로 지원 유세 일정을 짠 거 아닌가. 

    “전혀. 친이(친이명박)계로 분류되던 J의원, K의원, H의원의 지역에 지원 유세하는 등 오로지 경합지역이나 열세지역 중심으로 판을 짰다. 한 친이계 의원 보좌관은 ‘정말 우리 지역에 유세하러 오시느냐’며 되묻곤 했다. 나는 당시 선거상황실이 아닌, 당사 5층 사무총장실과 부총장실을 오가며 철저한 보안 속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시도당 사무처장들과 소통하며 일정을 짰다. 박 전 대통령도 ‘지원 유세 일정을 친이, 친박 구별 없이 짜라’고 지시했을 뿐, 관여는 하지 않았다. 2012년 3월 29일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박 전 대통령은 18개 지역구를 도는 강행군을 했고, 살인적인 일정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어졌다. 하루는 충남 → 대전 → 충북 → 강원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다 호흡이 힘들어지자 차를 세워 휴식을 취한 뒤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김동연, 홍남기 할 말은 해야”

    현재 자유한국당은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 체제가 됐다. 

    “의원들을 만나 보면 차기 당대표 선출 때까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비대위 체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김병준 비대위가 여기에 발목을 잡히면 더는 국민의 지지는커녕 보수층 지지도 받지 못할 거다. 김 비대위원장이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 그가 내세우는 ‘보수 가치’를 빨리 정립하고 그 틀 안에서 지금까지 보수 정책을 되돌아보는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침묵하는 보수와 새로운 젊은 인재들을 참여시키고, 보수가 지향하는 정책과 현 정부 정책의 차이가 뭔지를 따져 협조할 건 하되, 따질 건 따지는 정책 정당으로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금의 한국 경제가 전 정부 탓인지도 국회에서 따져봐야 한다.” 

    국회에서 경제를 따진다? 

    “취업자 증가 폭이 5개월 연속 10만 명대 이하를 기록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절벽’이 계속되는데 현 정부는 전 정권 탓이라거나, 날씨와 인구구조 등 외부 원인을 들먹인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7월 12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산업 전반의 구조 개선에는 소홀한 채 건설 및 토건 사회간접자본(SOC)에만 집중했고 주력 산업인 조선, 기계, 철강, 자동차, 화학 등 제조업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고용지표는 대표적인 경기 후행지표고, 특히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4조 원을 일자리 예산에 쏟아부었다. 인구구조 변화는 예측 가능한 변수인데 결과가 나빠지니 ‘남 탓’이라고 해서야 되겠나. 박근혜 정부가 금융, 교육, 노동, 공공개혁 등 구조 개선을 주장할 때 현재의 여당은 반대했다. 노동개혁 분야도 우리가 임금피크제를 주장할 때 야당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맞섰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정체불명의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거다. 이런 말을 못 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비겁한 거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나. 

    “김 부총리는 MB(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기획수석실 국정과제비서관과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국무조정실장을 맡았다. 홍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기획수석실 기획비서관을 지내 경제정책 전반을 다 알고 있다. 최근 규제혁신으로 여당은 ‘규제샌드박스 5법’과 ‘서비스산업활성화’ 입법을 장담했지만, 이는 전 정부에서 주장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법과 큰 차이가 없다. 김 부총리와 홍 실장은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만들어봤다. 그때 야당은 ‘최순실을 위해 만든 법’ ‘재벌 특혜법’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국회 상임위원회 상정도 못 하게 하더니 이제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비슷한 이름의 법안을 만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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