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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박근혜 집사’ 김막업 검찰 진술서

“朴대통령, 철저히 혼자 있길 원했다”

평일 업무시간에도 대부분 관저 침실에 칩거 … 세월호 참사 당일 혼자 저녁 먹고 침실로

“朴대통령, 철저히 혼자 있길 원했다”

[동아DB]

[동아DB]

검찰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이 ‘세월호 보고 시각’을 조작했다며 기소했다.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다. 변호인 측은 검찰이 오히려 조작했다며 맞섰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정권 명운이 갈린 그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은 검찰 수사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졌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밀회설, 피부미용시술설, 수면 마취설은 다 사실이 아니다. 당시 대통령의 내밀한 생활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은 문고리 3인방도, 경호원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도 아니다. 바로 집사 노릇을 한 김막업(76) 씨다. 김씨는 대통령 관저에서 식사를 차리고 방 청소와 세탁, 서류 전달 등 온갖 시중을 들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에는 김씨 진술서도 포함됐다. 박 전 대통령은 평소 업무시간에도 관저에 머물 때가 많았다. 관저가 집무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씨의 진술은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과 ‘관저 정치’ 실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이 진술서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업무 방식과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국민 수백 명이 죽어가는 중대 재난 상황에서 국가통치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속사정을 엿볼 수 있다. 때마침 법원은 7월 19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배상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박근혜 정부와 운명을 함께했다. 2013년 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근무지는 대통령 관저. 24시간 상주하며 대통령을 보좌했다.


24시간 대기하면서 대통령 시중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요리전문가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경기 이천시에 있는 도자기 제조업체 ‘광주요’에서 요리교실을 총괄하면서다. 2000년대에는 서울 강남구와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요리교실을 운영하며 교육방송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도 출연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인연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2000년쯤 ‘광주요 신사점’을 운영할 때 내 제자가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만찬 음식을 부탁해왔다. 그 일이 계기가 돼 삼성동 자택에서 만찬이 있을 때 가 음식을 만들어줬다.” 

최순실 씨와도 삼성동 만찬장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최씨가 그 집에 사는 것처럼 살림을 잘 알았다”고 기억했다. 두 사람은 서로 존대했다. 최씨는 김씨를 ‘주임님’이라고, 김씨는 최씨를 ‘소장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김씨는 18대 대선이 있던 2012년 12월 19일에도 삼성동에서 저녁을 차렸다. 박 전 대통령은 출구조사로 당선이 확실해진 후 그에게 청와대 근무를 요청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받은 월급은 300만 원대. 휴가는 따로 없었다. 김씨는 “당시 내 소득보다 급여 수준이 낮았지만 대통령 관저에서 근무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대통령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원래 대통령의 식사를 담당하려 했는데, 관저 내실에서 직접 조리할 형편이 안 됐기 때문에 조리된 식사를 대통령에게 올리는 일을 했다. 그 밖에 24시간 동안 관저에 대기하면서 세탁과 방 청소, 심부름 등 대통령 시중을 들었다.” 

김씨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는 내실과 별채로 나뉜다. 내실은 박 전 대통령과 김씨, 윤전추 전 행정관이 사용했다. 별채에는 경호원이 상주했다. 외부 방문자가 대기하는 곳이기도 했다. 

내실은 침실, 서재, 피트니스 룸, 소식당, 한실, 파우더 룸 등으로 구성됐다. 거기에 김씨 및 윤 전 행정관의 거주공간이 딸려 있다. 두 사람의 방에는 침대, TV, 장롱이 놓였다. 

대통령 침실에는 침대, 화장대, 서랍장, TV, 책상, 노트북컴퓨터(노트북), 인터폰 등이 비치됐다. 서재에는 책장과 책상, 노트북이 있었다. 김씨는 “박 전 대통령이 서재에서 노트북을 이용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피트니스 룸에는 러닝머신 등 운동기구를 들여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여기서 윤 전 행정관의 도움을 받아 매일 한 시간씩 운동했다. 소식당은 대통령이 혼자 식사하는 곳으로 6인용 식탁, TV와 더불어 전자레인지, 커피메이커 등 간단한 조리기구가 비치됐다. 박 전 대통령은 TV를 보면서 식사했다. 

TV는 한실에도 있었다. 한실에는 보료와 책장, 책상도 들여놓았다. 기(氣) 치료를 받은 곳이 바로 한실이었다. 파우더 룸에는 화장대와 의자, 간단한 미용기구, 1인용 침대가 놓였다. ‘올림머리’로 유명한 정송주·매주 씨 자매가 드나든 곳이 바로 여기였다. 정송주 원장은 머리 손질을, 매주 씨는 화장을 맡았다. 파우더 룸은 박 전 대통령이 의무실장과 주치의로부터 치료받는 장소로도 활용됐다.


최순실 올 때만 접견실 나타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맨 오른쪽)가 지난해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에 이경재 변호사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맨 오른쪽)가 지난해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에 이경재 변호사를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공동취재단]

별채에는 경호실 외에 조리실, 대식당, 접견실 등이 있었다. 대식당은 외부 방문객이 식사하는 곳으로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1년에 서너 번 보좌진과도 식사했다고 한다. 접견실은 최순실 씨가 주로 머물던 공간이다. 회의용 탁자(8인용), 원형 식탁(6인용), TV 등이 놓였다. 최씨는 이곳에서 대통령비서실의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등 이른바 3인방과 자주 회의했다. 김씨는 “박 전 대통령도 더러 이 회의에 참석했지만 오래 있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주로 만난 곳은 접견실이었다. 내실에서 만난 적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철저히 혼자 있기를 원했기에 최씨도 내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관저에서 자고 간 적도 없다.” 

김씨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주로 침실에서 업무를 봤다. 서류가 놓인 침실 책상에서 노트북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안봉근 전 비서관의 검찰 진술과 배치된다. 안 전 비서관은 “대통령 취임 후 (관저에) 별도의 집무실을 만들어 거기서 업무를 봤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안 전 비서관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대통령 침실 입구에는 팩스기기가 놓인 탁자가 있었다. 김씨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팩스 문서를 확인했다”고 진술했다. 

김씨와 더불어 관저 근무를 한 윤 전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의 운동을 거들고 의상을 챙겼다. 초기엔 본관 부속비서관실에서 출퇴근했는데 점차 관저에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김씨가 윤씨를 처음 본 것은 18대 대선 때 삼성동 사저에서였다. 

김씨에 따르면 이영선 전 경호관도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삼성동에서 경호원 노릇을 했다. 청와대에 들어온 이 전 경호관은 관저에 상주하지는 않았다. 그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쇼핑백을 김씨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쇼핑백에는 속옷, 잠옷 등 주로 박 전 대통령의 옷가지가 담겼다고 한다. 김씨는 물건의 출처를 묻는 검사 질문에 “최씨가 사줬다는 얘기를 언론을 통해 들었다”고 답했다. 

김씨는 최씨가 2014년부터 주말마다 관저를 방문했다고 기억했다. 더러 오지 않은 날에는 “독일에 갔다는 얘기를 윤 전 행정관으로부터 들었다”고 덧붙였다. 윤 전 행정관과 최씨는 수시로 연락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근무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 관저에 머물렀기에 휴일과 평일을 구분할 수 없었다. 평일에도 본관 집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경우 대부분 관저 침실에 있었다. 일주일에 나흘 정도는 관저에서 일을 보고, 사흘은 외부활동을 했다. 외부로 나갈 때나 본관 집무실에 갈 때는 반드시 정씨 자매를 불러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했다. 머리를 올리지 않으면 외부 사람을 만나지도, 외부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본관에 출근하더라도 볼일만 보고 바로 관저로 돌아왔다.” 

그는 “대통령의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했기에 내 개인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일반 휴가는 못 쓰고 명절 때도 휴가를 못 갔다. 대통령이 관저에 있을 때는 전혀 쉴 수가 없었다. 해외순방 때나 집에 다녀왔다.”


“세월호 보고서 침실 앞 탁자에 올려놓았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상황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2014년 4월 16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상황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박 전 대통령은 김씨나 윤 전 행정관에게 딱히 구분 없이 소소한 일을 지시했다고 한다. 침실에 고장 난 물건이 있거나 전구가 나갔을 때 바꿔달라 하고 휴지 등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갖다달라고 했다. 김씨는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 때 비서실장 등 보좌진이 내실에 와서 보고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접견실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최씨가 와서 비서관들과 회의할 때를 빼고는 거의 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접견실로 가려면 내가 지내는 방을 지나가야 했기에 내가 알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때마다 경호원이 내게 통보해줬다. 재임 시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지만, 탄핵심판 청구 이후에는 외부인을 만나느라 (이용) 횟수가 좀 늘었다.” 

그는 “관저에서 대통령의 업무 관련 보고가 어떻게 이뤄졌느냐”는 검사 질문에 “거의 없었지만, 보고할 일 있으면 서면으로 이뤄졌다”고 답변했다. 

“경호실 직원이 내게 인터폰으로 연락해 ‘보고서 갖다 올려놓으라’고 하면 내가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가서 대통령 침실 입구의 팩스기기가 놓인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대통령이 나와서 가져갔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때 외에는 이렇게 보고서류가 올라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관저에서 근무했던 손 모 경호관은 대통령의 기상 및 취침시간에 대해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침실에 불을 켜면 희미한 불빛이 보여 대통령이 주무시고 일어나는 시각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로 23시쯤 불을 끄고 아침 5시쯤 불을 켰다. 다만 세월호 당일엔 아침 8시 30분부터 근무해 대통령이 몇 시에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 16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은 침실에 있었다. 다음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검사와 김씨 간 문답이다. 

세월호 침몰 당일 박 전 대통령은 언제 잠자리에서 일어났나. 

“정확히 모른다. 대통령은 통상 밤 9시쯤에는 독립공간(침실, 소식당 등)과 우리(김씨와 윤 전 행정관)가 사용하는 공간 사이에 설치된 유리문을 잠갔다 아침식사를 한 후 열어놓는다.” 

그날 박 전 대통령은 아침식사를 언제 했나. 

“통상 7시쯤 하는데, 그날은 모르겠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아침식사로 무엇을 들었나. 

“소식당에 나와 윌 요구르트, 대관령 우유, 견과류, 흑임자 죽, 원두커피를 드셨다. 통상 내가 저녁에 소식당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두면 아침에 직접 챙겨 드신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잘 모르겠다. 다만 오전부터 보고서가 올라오기 시작했으니 최소한 그때는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술인은 침몰 사실을 언제 알았나. 

“아침에 KBS 2TV 드라마를 보는데, 자막이 나왔다. 그 후 경호실로부터 서류봉투를 전달해주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어 여러 차례 보고서가 올라왔다.” 

진술인은 언제 최초 보고서가 든 서류봉투를 받았나. 

“TV를 통해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30분쯤 뒤 서류봉투가 올라온 것으로 기억한다.” 

서류봉투를 어떻게 전달했나. 

“경호원이 인터폰으로 먼저 연락했다. 이어 경호원으로부터 봉투를 전달받아 침실 입구에 있는 탁자에 올려놓았다.” 

박 전 대통령이 그 서류봉투를 갖고 가서 봤나.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뒤에 올라온 서류봉투를 갖다 놓을 때 앞서 갖다놓은 봉투가 없었던 것에 비춰보면 직접 가져가 본 듯싶다.”


“관저로 보고하러 온 사람 없었다”

당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국회에 출석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세 차례 서면보고를 하고 일곱 차례 유선으로 직접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진술인이 세 차례 모두 서면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유선보고 사실은 알았나. 

“통화는 침실에서 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알 수 없다.” 

윤전추 전 행정관은 당시 보고서를 팩스로 받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윤전추가 잘못 얘기하는 것이다. 윤전추는 전날 관저에서 자고 그날 아침 본관 부속비서관실로 출근했기에 관저에 없었다. 관저에 없었던 윤전추가 팩스로 보고서를 받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내가 없을 때는 모르지만, 내가 있을 때는 나만 보고서를 전달했다.” 

당시 서면보고나 유선보고 외 직접 관저로 올라와 보고한 보좌진이 있었나. 

“정확히 기억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처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뭔가. 

“관저 내실로 누군가 찾아오면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날은 세월호가 침몰했을 뿐 아니라 관저에 근무하면서 가장 많은 서류봉투를 전달한 날이기에 어느 날보다도 기억에 남는다.” 

윤 전 행정관은 위증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세월호 참사 당일 10시께 박 전 대통령에게 상황보고서를 전달했다고 거짓 증언한 혐의다. 그는 6월 2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잘못을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다시 김씨의 검찰 진술 내용이다. 

그날 박 전 대통령은 언제 점심식사를 했나. 


“평상시와 같이 내가 낮 12시쯤 조리실에서 음식을 받아 내실 소식당으로 갖다 드렸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세월호 관련 얘기를 하지는 않았나. 

“식사만 차려주고 나왔기 때문에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후식을 갖다줄 때 보기는 했는데 세월호 관련 얘기는 없었다.” 

그날 오후 정씨 자매가 방문한 후 대통령은 외출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급하게 서둘렀던 것 같다. 평소보다 빨리 머리를 하고 나간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고 나서 언제 관저로 돌아왔나. 

“저녁식사 무렵에 돌아왔다.” 

관저로 돌아와 무엇을 했나. 

“저녁식사를 하고 침실에 들어갔다. 저녁식사 때도 별 얘기 없었다.” 

지난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은 이틀 후 삼성동 사저로 옮겨갔다. 김씨는 거기서도 함께 거주하며 식사 시중을 들었다. 3월 31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그는 오랜 임무에서 벗어났다.




주간동아 2018.07.31 1149호 (p8~11)

  •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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