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4

2018.06.27

권재현의 심중일언

“최고의 건축은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든다”

골목길 같은 사이공간을 확장하고 보행 친화적 환상도로를 만들자

  • 입력2018-06-26 11: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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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살 것인가’ 펴낸 유현준 교수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건축의 핵심 요소는 6개밖에 없어요. 바닥, 지붕, 벽, 창문, 문, 계단이죠. 이 여섯 가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는 작업이 곧 건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 4개의 염기서열로 이뤄진 DNA 코드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유현준(49)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는 이렇게 건축 개념을 매우 쉽게 풀어낸다. 인류 발전의 원동력으로 도시의 역동성을 강조하면서 도시를 구축하는 건축 원리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을유문화사)는 그에게 대중적 명성을 안겨줬다. 이 책이 입소문을 타면서 2016년 KBS ‘명견만리’와 2017년 케이블TV방송 tvN ‘어쩌다 어른’의 특강을 거쳐 ‘알쓸신잡2’에도 출연했다. 

    그는 5월 말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신간을 펴냈다. 전작이 도시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책은 건축이란 단순히 특별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공간의 관계 맺음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공간과 주변의 자연환경 및 인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건축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책을 출판한 을유문화사 측에 따르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지금까지 9만 부가 팔렸고 ‘어디서 살 것인가’는 출간 보름 만에 2만5000부가량 판매됐다고 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구 구의동 단독주택에서 살다 강남 개발붐 직후인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아온 유현준 교수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그의 건축사무소에서 만났다. 그가 평생 살아온 서울의 시민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축적 소양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책의 서두는 1994년 터키 남동부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적 ‘괴베클리 테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기원전 1만~8000년 무렵 축조된 이 건축물은 구석기 동굴에 살던 인류가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지은 최초의 대형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계는 물론,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괴베클리 테페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장례의식을 치른 종교적 건축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원전 8000년 무렵 농업혁명으로 인류가 정주생활을 하면서 종교와 건축이 시작되고 도시가 형성됐다는 유물사관의 가설을 뒤집는 유력한 증거다. 괴베클리 테페야말로 사후세계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추동돼 건축과 농업혁명, 도시와 문명이 탄생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탈중심과 다핵화

    영국 런던 로이드 빌딩 내부. 빌딩 중심을 비운 보이드 공간으로 돼 있어 다른 층에 있는 동료 직원들과 시각적 소통이 가능하다. [사진 제공 · 을유문화사]

    영국 런던 로이드 빌딩 내부. 빌딩 중심을 비운 보이드 공간으로 돼 있어 다른 층에 있는 동료 직원들과 시각적 소통이 가능하다. [사진 제공 · 을유문화사]

    흥미롭게도 이 건축물 기둥에 새겨진 조각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더 크게 그려졌다. 구석기 동굴벽화에서 인간은 항상 동물보다 작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자의식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런 자의식과 함께 탄생한 건축은 이후 인간 권력 의지가 투사되면서 좌우대칭의 거대건축으로 발전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중국 만리장성 같은 건축이 이를 대변한다. 이는 중앙집권화를 거쳐 민족국가의 탄생과 근대화로 이어지며 더욱 강화된다. 그것은 좌우대칭을 통해 중심을 강조하고 대중이 우러러 바라보게 만드는 수직적 높이를 강조하는 건축양식의 확산을 낳았다. 하지만 21세기 건축은 이와 달리 탈중심과 다핵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인류사회는 생명체를 닮았습니다.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중추신경계가 발달하듯이 인류사회도 역사 발전과 함께 중앙집권적 제도와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앙집권화한 권력이 자리 잡으면 이들 매크로한 권력의 상호연결이 더 중요해집니다. 컴퓨터가 만들어질 때 한동안 중앙처리장치(CPU)나 이를 연결하는 중앙통제 서버가 중요했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 서버들끼리 병렬로 연결되는 게 더 중요해진 것과 같습니다. 인터넷과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축도 탈중심과 다핵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탈중심 건축의 대표적 예가 영국 런던 로이드 빌딩과 홍콩상하이은행 사옥이다. 이들 건축은 중앙에 텅 빈 보이드(void) 공간을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주변에 흩어 배치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층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마주보면서 소통과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올해 6월 준공식을 가진 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 신사옥 역시 건물 가운데를 보이드 공간으로 만들면서 중간 중간에 중정(中庭)을 마련해 직원 간 소통과 유대감을 강화했다. 그 대신 유리창에 수직 루버(햇빛 가리개)를 달아 사무실 내부의 프라이버시를 적절히 보호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유 교수는 이를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 마주보며 밥을 먹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해 ‘밥상머리 건축’이라고 불렀다. 

    다핵화 건축의 사례로는 일본 건축설계사무소 사나의 작품들이 꼽힌다. 사나가 설계한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대부분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중앙홀을 없앴다. 그 대신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전시장을 불규칙적으로 배치했다. 또 독일 촐페라인 경영 및 디자인대는 창문 크기와 위치, 간격을 불규칙하게 구성했고 스위스 로잔공과대의 ‘롤렉스 러닝센터’는 층간 구분, 방과 복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유 교수는 이를 두고 무수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마블히어로 영화 ‘어벤져스’를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탈중심과 다핵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경계의 모호함이다. 안과 밖, 층과 층의 뚜렷한 구별을 무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를 도시 전체로 확산했을 때는 ‘내 것’과 ‘네 것’으로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중간 영역을 뜻하는 ‘사이공간’의 확대로 설명할 수 있다.

    ‘사이공간’을 확대하라

    [출처 · 을유문화사]

    [출처 · 을유문화사]

    “근대화의 핵심은 분업에 있습니다. 과제가 있으면 잘게 쪼개 나누는 거죠. 근대 건축 역시 방, 부엌, 거실로 섹터를 나눠 분업화, 전문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가 한옥을 지을 때는 벽으로 나뉜 섹터 자체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섹터와 섹터 간 상호관계를 중시했습니다. 건축의 본질이 공간과 공간의 관계 맺기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근대 건축은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고 소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합니다.”

    벽을 강조하는 이런 근대 건축은 자본주의를 만나면서 ‘내 것’과 ‘네 것’을 명확히 나누는 성향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건축의 내부와 외부를 나누고 다시 내부 안에서도 소유한 영역과 임대한 영역을 나누면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모호한 중간지대가 자꾸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 유 교수의 진단이다. 

    “골목길 같은 사이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내가 소유하거나 임대하는 공간 밖으로 나가면 최소한의 이동공간만 남겨두고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이공간이 없어지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까요. 바로 최소한의 공간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비좁은 집에서만 살기 힘들어 밖으로 나왔는데 머무를 공간이 없어 더 힘겨운 사람들인 거죠. 이런 상황은 한국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거리로 나가보세요. 벤치도 거의 없잖아요. 한국에서 커피숍이나 카페가 유독 많은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집이나 직장 밖에서 머무를 공간을 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한국에선 시간제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는 공간사업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유 교수의 분석이다. 돈 없는 학생에겐 PC방과 편의점이고, 직장인에겐 카페 아니면 모텔이라는 것. 뉴욕이나 런던 같은 세계적 도시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사람들이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사이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은 걸어서 30분 넘게 가야 공원을 만날 수 있지만 뉴욕은 도보로 평균 13분 거리 안에 공원이 있습니다. 소호 쪽으로 내려가면 작은 공원이나 광장이 더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어요. 그런 곳엔 항상 델리가게라고 밥 먹는 데가 있죠. 거기서 먹을거리를 사 가지고 공원에 앉아 먹을 수 있는 공간구조가 돼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며 노천카페를 활성화하는 법을 마련하고 브로드웨이 일부 구간을 막아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었습니다. 또 의자는 물론, 다양한 가구까지 깔아놓고 사람들이 머물러 있는 공간을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주말이면 명동과 인사동에 자동차 진입이 통제되지만 그래도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공간인 데 반해, 뉴욕은 아예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합니다. 템스강에 보행자 전용 다리를 설치한 런던은 물론, 강가와 도심을 연결하는 남경로를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든 중국 상하이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도시의 슬로화를 위해 사라져가고 있는 서울 골목길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그 공간을 개발하면 돈이 얼마인데’라는 자본의 논리가 여전히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도시 발전을 위해 고밀화는 필연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무시하고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달래기 위해 골목길을 다 보존하자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선택적으로 보존하되, 그 배후로 고층건물을 허용하는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 도로가 10개 있다면 그중 9개는 자동차 중심으로 만들고 1개만이라도 보행자 중심도로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단, 그 보행자 중심도로가 서울 전역에서 서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강북 ‘서울숲’과 강남 로데오 거리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다리 상상도. [출처 · 을유문화사]

    서울 강북 ‘서울숲’과 강남 로데오 거리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다리 상상도. [출처 · 을유문화사]

    그는 미국 보스턴의 ‘에메랄드 네클리스’를 사례로 들었다. 센트럴파크 등 뉴욕 녹지공간을 장방형으로 구성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설계한 에메랄드 네클리스는 보스턴 시내의 녹지공간을 선형으로 연결한 것이 에메랄드 목걸이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목걸이 구조 덕에 보스턴은 마라토너의 성지가 될 정도로 보행 친화적 도시가 됐다.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공식이 존재합니다. 첫째, 대중교통이 있어야 하고 둘째, 거기서 1.5km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어야 하죠. 그러면 그 둘을 연결하는 길이 보행 친화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 공식을 서울에 적용할 때 가장 효과적인 길은 환상형으로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지하철 2호선의 역과 역 사이에 3300㎡(약 1000평) 규모의 공원을 하나씩 조성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하철역을 나와 공원까지 걸어가는 길이 보행 친화적으로 바뀌고, 그 공원에서 그다음 역까지 길이 다시 보행 친화적으로 바뀌면서 서울 전역을 목걸이처럼 아우를 수 있습니다. 그럼 서울의 지역 간 격차와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공간에 대한 그의 사유는 현실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터넷과 블록체인으로 형성되는 가상공간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다. 일례로 아버지인 자신의 시대에는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느냐’가 주요 화두였다면, 아들의 시대에는 ‘공간을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사이버공간의 창출은 아파트라는 공간의 개발과 닮았습니다. 아파트 개발을 통해 공중에 떠 있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제시하고 중산층을 형성해 한국의 30, 40년 발전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공간이라는 없던 공간을 뻥 튀겨 만들어내고 그 공간을 소유했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사회적 불만의 분출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인식이란 게 결국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이라는 점에서 이를 단순히 환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봅니다. 인구는 너무 늘었고 인터넷을 통해 온갖 좋은 것을 다 본 세대로선 그걸 소유할 수 없는 대신, 그 경험을 디지털 콘텐츠로 전환해 소유하게 된 거죠. 스마트폰 카메라로 모든 장면과 장소를 찍어 디지털 정보로 바꾼 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면 내 것이 되는 방식입니다. 현재 기술로는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격차가 아직은 큽니다. 현재의 가상경험이 2D의 나열에 그친다면, 10년 정도 후에는 오감으로 사이버공간을 체험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될 겁니다. 그럼 더 많은 사람이 더 적은 돈으로 실재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장될 경우 공간과 공간의 관계보다 공간 자체의 매력에 함몰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유 교수 역시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다 보면 ‘SNS 단지’에 갇혀 바깥세상과 차단된 삶을 살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칼이란 것도 의사가 잡으면 메스가 되고 강도가 잡으면 흉기가 되잖습니까. 저는 인스타그램이 한국 사회의 도시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쁘게 꾸며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장사가 되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과거엔 무조건 입지가 중요해 목이 좋은 곳에 들어가려고 비싼 임차료를 내기 바빴다면, 지금은 건축 콘텐츠로 승부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 건축 콘텐츠라는 것이 아직은 ‘인테리어 건축’ 수준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쌓이고 누적되면 질적인 변화도 몰고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화목의 건축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유 교수는 도시라는 공간이 다양하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을 창출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서울대에 초빙된 어느 해외 석학의 말처럼 한국 사회에선 전공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 간 이종교배 문화보다 닮은꼴끼리 근친교배 문화가 더 승하다. 이런 문제를 해소할 건축적 대안은 없는 걸까. 

    “제가 ‘알쓸신잡2’에 출연한 것은 개인적으로 다른 전공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건축 전공자들과 얘기하면 만날 똑같은 것을 가르치려는 투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시청률 높은 예능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그 사회의 트렌드 변화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MBC ‘나 혼자 산다’에선 1인 가구의 증가와 개인주의, 관음증을 읽어낼 수 있다면 여러 명의 진행자가 등장하는 ‘라디오스타’는 우리 사회의 다핵화를 보여줍니다.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다는 것에서 이종교배적 소통과 통섭에 대한 갈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건축의 6요소 가운데 소통을 차단하는 게 벽이라면 문, 창문, 계단은 소통을 확산합니다. 창문과 문을 되도록 마주보게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모아주면 소통이 강화되죠. 또 계단은 다른 층을 연결해줍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연결이 모호해지고 끊어지지만, 계단이 놓이면 연결이 강화됩니다. 계단보다 경사진 램프를 설치하면 연결성은 더욱 강화되죠.” 

    책에서 유 교수가 높게 평가한 건축가들이 눈에 띈다. 홍콩상하이은행 사옥과 애플 신사옥을 설계한 노먼 포스터와 일본 건축설계사무소 사나 등이다. 그런 그가 지향하는 건축은 어떤 것일까. 

    “사나가 다핵화와 탈중심의 콘셉트를 잘 표현한다면 노먼 포스터는 콘셉트만큼이나 완성도가 빼어난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터는 현재 팔순이 넘었는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건축가입니다. 이번 책의 표지에 쓴 사진은 20세기 초반의 뉴욕 타임스스퀘어입니다. 그 구조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중심이 되고 있죠. 여러 광고판이 들어가면서 또다시 사이버공간과 현실공간이 만나는 접점이 됐고,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입니다. 도시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하는 게 핵심이라고 할 때 20세기 이후 이를 대표하는 공간이 타임스스퀘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건축은 그렇게 소통하는 공간이자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가는 것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제가 지향하는 건축은 책에서도 밝혔듯이 한마디로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입니다. ‘비까번쩍’하고 멋있는 건축보다 사람들 간 갈등과 문제를 풀어주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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