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8

2018.05.16

경제

‘30조 대어’ 신한이 낚았다!

서울시금고 104년 독점 우리은행 아성 깨 … 재무성과, 전산보안 좋은 평가

  • 입력2018-05-14 17: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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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시중은행의 접전 끝에 신한은행이 서울시금고로 선정됐다. [동아DB]

    5대 시중은행의 접전 끝에 신한은행이 서울시금고로 선정됐다. [동아DB]

    5대 시중은행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던 ‘서울시금고 수주전’이 신한은행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서울시는 4년마다 공개 입찰을 통해 시금고를 선정하는데, 최근 우리은행의 ‘104년 독점체제’에 대한 비판이 공론화되면서 사상 처음으로 복수금고 체제를 도입했다. 결국 경성부였던 1915년부터 서울시금고를 맡아온 우리은행은 신한은행에 1금고 자리를 내주고 2금고로 밀려났다. 

    올해 서울시 예산은 34조 원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그중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관리하는 1금고 운영 금액은 32조 원에 달한다. 성평등기금, 식품진흥기금 같은 특정목적기금을 관리하는 2금고의 운영 금액은 2조 원가량 된다.

    1점 차로 승리

    1금고는 수시로 돈을 넣고 빼는 입출금통장, 2금고는 일정 기간 돈을 묵혀두는 정기예금의 성격이 강하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5월 중 서울시와 최종 약정을 맺고 2019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4년간 서울시금고를 관리하게 된다. 

    이번 입찰은 신한은행, 우리은행 외에도 KB국민, KEB하나,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모두 도전장을 내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물론 이들 중에는 과연 승산 있는 게임이 될지를 놓고 오랫동안 고심한 곳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은행권에서는 “여론상 서울시가 복수금고 체제를 채택한다 해도 우리은행의 아성을 깨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 따라서 이번 시금고 입찰은 ‘2금고 쟁탈전’이 되리란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사건에 이어 4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생체인증 오류가 발생하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하필 오류가 발생한 날이 서울시 금고 입찰 접수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따라서 우리은행의 뼈아픈 실책이 다른 은행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조직 개편을 통해 ‘기관그룹’을 신설하는 등 시금고 수주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까지 개인그룹에 속해 있던 기관고객본부를 전담그룹으로 승격한 것. 책임자도 본부장급에서 부행장급으로 한 단계 올렸다. 

    신한은행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시금고 수주에 뛰어든 데는 그간의 ‘아픔’이 자양분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지난해 7월 경찰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대출과 복지카드 발급 사업을 KB국민은행에 내준 데 이어, 10월에는 수백조 원 규모의 국민연금공단 주거래 은행 선정에서도 미끄러져 수세에 몰린 만큼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입찰에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시금고 수주 TF팀’을 구성하고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자문을 받으며 입찰을 준비했다. 그렇다면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의 아성을 깨고 시금고사업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신한은행 관계자는 “이번 서울시금고 평가항목 가운데 가장 높은 배점을 차지하는 재무성과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전산보안 능력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시금고 운영에 관한 4년간의 ‘로드맵 구축’ 역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해당 로드맵을 바탕으로 향후 시금고 운영 방향과 서비스 증진 방향에 대한 과제를 721개나 제출했다. 이 결과 ‘현직 프리미엄’을 보유한 우리은행을 단 1점 차로 따돌리며 승리했다.

    “서울시금고, 인천시금고 시스템과 80% 동일”

    서울시가 104년간 이어온 단일금고 체제를 깨고 복수금고 체제를 도입하면서 신한은행이 1금고, 우리은행이 2금고를 맡게 됐다. [뉴시스]

    서울시가 104년간 이어온 단일금고 체제를 깨고 복수금고 체제를 도입하면서 신한은행이 1금고, 우리은행이 2금고를 맡게 됐다. [뉴시스]

    신한은행 관계자는 “디데이(D-day) 시나리오가 심사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에는 1월 1일 안정적인 시금고 인수 이후 시금고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 2020년에는 시금고 디지털 가속화, 2021년에는 시금고 독립 플랫폼 완성, 2022년에는 다음 4년을 위한 준비를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플랜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시금고 디지털 혁신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첨단기술을 활용해 서울 시민을 위한 다양한 납부 편의 및 수납처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 세무상담과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전용 서비스 마련 등을 꼽을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스마트 가전을 이용해 지방세 납부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단순 체납을 막는 방안도 제시했다. 또 장애인을 위한 이텍스(eTAX·서울시 지방세 인터넷 납부시스템) 전용 서비스를 구축하고 고령층을 위해서는 키오스크(Kiosk)를 활용한 서비스도 마련할 계획이다. 키오스크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과 비슷한 형태로 일반 입출금뿐 아니라 공과금 납부, 통장 재발급, 계좌 개설 등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소셜미디어 민원 분석을 통한 서비스 개선 방향 수립, 핀테크(금융+기술) 업체와 협업을 통한 디지털 혁신, 이텍스 전자정부 표준 프레임워크 도입,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분석 등의 방법도 제시했다. 

    이처럼 치밀한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인천시금고 수주를 통한 노하우가 축적된 덕분이다. 신한은행은 현재 인천시금고를 맡고 있으며, 과거 20여 개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이번 서울시금고 입찰 과정에서도 신한은행은 다수의 금고 운영 경험을 서울시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그간의 경험 덕분에 서울시금고 시스템을 거의 다 파악했다고 자신한다. 실제로 인천시금고 전산시스템과 업무별로 비교한 결과 80% 가까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뱅킹(e-Banking)이나 금고 통합관리는 90% 이상 동일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나머지 10~20%는 7개월 인수 기간 인수위원회 구성을 통해 서울시만의 특화된 서비스로 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심사위원회에서도 좋은 인상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심사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이 안정성이다. 시금고 운영 특성상 안정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신한은행은 구체적인 운영 로드맵을 제시해 심사위원들에게 신뢰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운영 계획안을 통해 전산시스템 교체에 대한 서울시의 우려도 불식했다. 서울시는 시금고 선정 때마다 전산시스템 안정화를 이유로 줄곧 우리은행을 선택해왔다. 전산시스템이 변경될 경우 납세 항목별 데이터 관리나 고지서 송달, 납부 서비스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심사 프레젠테이션에서 “금고 운영 전산시스템을 5개월 안에 구축하고 2개월간 시운영하겠다”며 심사위원들을 안심케 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2019년 사업 개시까지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인천시금고를 모델 삼아 서울시에 특화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겠다. 이와 더불어 시금고 전담 인력 배치에도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한은행은 시금고 운영 기간 서울시에 내는 출연금으로 3000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이 2014년부터 현재까지 내놓은 출연금이 1400억 원임을 감안하면 2배가 넘는 금액이다. 그뿐 아니라 전산설비 구축 등으로 1000억 원가량이 추가로 들어갈 예정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이번 입찰은 시금고 운영 계획 외에도 출연금 규모가 성패의 많은 부분을 좌우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구금고 수주전의 승자는?

    2금고로 밀려난 우리은행은 하반기 서울 25개 자치구금고 선정을 둘러싸고 신한은행과 다시 한 번 맞붙을 전망이다. [동아DB]

    2금고로 밀려난 우리은행은 하반기 서울 25개 자치구금고 선정을 둘러싸고 신한은행과 다시 한 번 맞붙을 전망이다. [동아DB]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금고지기의 과도한 출연금과 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한 낮은 대출금리, 기관장과 이면계약 등 여러 문제가 지적돼왔다. 하지만 이러다 자칫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하나같이 시금고 선정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시금고 주거래 은행이라는 상징성이 주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25개 자치구금고 수주와 직결된다. 서울시 자치구는 재정이 풍부해 웬만한 광역지방자치단체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대표적으로 강남구(2014년 기준)의 1·2금고 규모는 3조3000억 원이다. 이는 한 해 예산이 3조2000억 원인 울산시보다 많다. 

    또한 구금고로 선정되면 소속 공무원은 물론, 그의 가족을 잠재적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서울시청과 직속기관을 제외한 자치구 소속 공무원만 3만여 명에 달한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진짜 알짜배기 장사는 구금고일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하반기 서울 25개 자치구금고 선정을 놓고 또 한 번 승부를 벌인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현황’을 보면 25개 자치구금고 은행 약정은 모두 12월 31일 만료된다. 따라서 조만간 각 구는 차기 금고 운영 은행을 선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관례를 보면 1금고인 신한은행이 구금고 수주에서도 유리하리란 예상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서울 자치구는 대부분 수의계약을 통해 구금고 관리은행을 시금고 관리 주체인 우리은행으로 동일하게 지정해왔다. 서울시청과 전산 및 업무 시스템을 통일하는 게 업무상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4년 공개경쟁 입찰로 전환돼 복수금고 체제로 바뀌면서 일부 자치구가 우리은행 외 다른 은행에 금고를 맡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1·2금고를 우리은행에 맡기고 있다. 현재 용산구는 1금고(일반·특별회계)와 2금고(기금) 모두 신한은행에 맡기고 있고, 강남구와 양천구, 노원구의 1금고는 우리은행, 2금고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시금고가 구금고까지 독식하는 체제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우리은행의 독점체제를 깨고 여러 은행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준 것처럼, 구금고 선정 역시 다른 은행들에게도 똑같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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