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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의료법인 KMI ‘수상한’ 가족 경영

부부가 전 · 현직 이사장, 딸 · 사위 · 조카 곳곳에 포진…‘미스 & 미스터 KMI’ 선발대회 강요 논란도

비영리 의료법인 KMI ‘수상한’ 가족 경영

한국의학연구소(KMI) 이사회 재연 장면. [채널A]

한국의학연구소(KMI) 이사회 재연 장면. [채널A]

2016년 3월 7일 오전 11시. 비영리 의료재단법인 한국의학연구소(KMI) 회의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한 달여 전인 1월 30일 이모 이사장이 질병으로 갑작스레 쓰러지면서 후임 이사 및 이사장을 선임하는 자리였다. 후임 이사 및 이사장 후보는 바로 전임 이사장의 부인 김모 씨. 이사회가 시작되자마자 한 이사가 다소 난해한 이사장 선임 사유를 설명하며 안건에 부쳤다. 

“김ㅇㅇ이사는 이ㅇㅇ이사장님을 내조해오면서 우리 재단에 대한 사랑이 깊고, 이 이사장님의 경영철학 이해도가 높으며, 여성 지도자의 능력과 업적이 검증되는 시대적 흐름과 우리 재단의 여성 구성비가 78%에 달하고 있음을 고려해 법인에 지대한 도움이 되리라 예상하며 이사장 선임을 제안합니다.” 

“(출석이사 전원) 김ㅇㅇ 이사의 이사장 선임에 동의합니다.” 


이사회 참석자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사회는 곧바로 김 이사의 이사장 선임 안건을 상정해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신임 이사장의 처우는 전임 이사장과 동일하게 결정했다. 별도 이사장실에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 법인카드, 그리고 연봉 8억 원 등이 전임 이사장이 받던 처우였다. 

KMI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사회 경험이 전무한 전업주부였다. 회사나 기관 운영은 고사하고 직장생활 경험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KMI에서 오래 근무한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주부가 어느 날 갑자기 비영리 의료재단법인 KMI의 이사장직에 올라 8억 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게 된 것이다. 

1985년 법인을 설립한 KMI는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본원과 강남, 여의도 등 서울 3곳, 그리고 부산, 대구, 광주, 수원까지 모두 7개 센터를 운영하는 국내 최대 건강검진기관이다. 의료진 150여 명을 포함해 직원이 약 1400명에 이른다. 한 해 매출은 1500억~1600억 원. 이 정도 규모의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 자리에 전업주부가 앉는다는 건 그만큼 조직이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KMI 이사회는 이사장을 포함해 이사 14명과 감사 2명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전문 의료인은 단 1명도 없다. 건강검진이라는 전문 의료행위를 하는 기관으로선 이례적이다. “각 센터 병원장은 고용돼 의료 행위만 수행하는 봉직의사일 뿐 모든 권한은 센터장(이사)이 다 쥐고 있어 사무장 병원이나 다름없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의료기관 이사진에 의료인은 0명

서울 종로구 KMI 본원 건강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한 직장인. [채널A]

서울 종로구 KMI 본원 건강검진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한 직장인. [채널A]

이사는 대부분 이 전 이사장의 고교 동창, 대학 선후배, 동네 친구 등 오랜 지인들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전 이사장의 부인을 후임 이사장에 앉히는 데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리라는 게 전·현직 KMI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사장 부부의 딸과 사위, 조카 등 가족과 친·인척이 곳곳에 포진해 경영 및 조직 관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사장 부부의 딸 이모 씨는 지난해 5월 특별채용 형식으로 입사했다. 서울 명문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인 이씨는 2016년 초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서초동 한 법률사무소에서 6개월 남짓 송무 및 법률자문을 한 게 경력의 전부다. 그런데 KMI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법무실장으로 승진하고 별도 사무실 공간과 법인카드, 8000만 원 넘는 연봉까지 받고 있다. 

딸보다 1년 빠른 2016년 4월 경력공채로 들어와 홍보 분야에서 일하는 사위 이모 씨도 특혜채용 의혹을 받고 있다. 지원 자격이 ‘해당 경력 1년 이상’이었지만 이씨에게는 관련 경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입사한 지 1년 반 만에 ‘책임’이라는 직위로 승진했다. 이 또한 파격적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책임이라는 직위는 경력 10년이 넘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선임으로 근무한 지 10년이 넘어도 아직 책임을 달지 못한 직원이 많다. 그런데 2년도 안 돼 책임이라는 자리로 승진했다.” 

딸과 사위는 같은 대학 1년 선후배 사이로 대학생 시절부터 사귄 ‘캠퍼스 커플’로 알려졌고, 지난해 12월 두 사람 모두 KMI에 입사한 후 결혼했다. 이들 부부 외에도 KMI 직원 가운데 이사장 부부의 조카와 조카사위 등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친·인척만 4명이나 됐다. 

KMI가 이처럼 이사장 가족과 친·인척의 사유화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20여 년에 걸친 이 전 이사장의 장기집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KMI에서 오래 근무하다 퇴사한 한 전직 직원의 말이다. 

“겉으로는 재단법인인데 안에는 절대군주 같은, 제왕 같은 이 전 이사장의 권력이 있었다. 우리(직원들)는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바른말 하는 사람은 승진을 못 한다. 아닌데 맞다고 말하는 사람만 승진한다. 내부 직원은 같이 일하다 퇴직한 사람도 만날 수 없다. 그러다 걸리면 업무적으로 핍박을 당한다.” 

또 다른 한 KMI 전직 직원에 따르면 사내 신년행사나 체육대회 때 ‘미스&미스터 KMI’ 선발대회도 열렸다. 센터별로 뽑힌 직원들은 수영복을 입거나 야한 춤을 춰야 했다. KMI 측은 직원들의 자발적 행사였다고 하지만, 당시 참여했던 직원들은 “다신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라고 했다. 

비영리 의료재단법인에 대한 관리·감독 기관은 보건복지부다. 2016년 7월 실시한 KMI 감사에서 보건복지부는 △경험과 전문성이 전혀 없는 전임 이사장의 배우자를 이사장에 선임한 임원진에 대한 엄중한 조치 △이사장 연 보수를 4억 원에서 8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인상한 근거 부족에 따른 시정 조치 △이사장 1회 이상 연임 금지 △직원 폭행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 전 이사장에 대한 이사직 배제 조치 등 강도 높은 처분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KMI는 이사장 연봉을 4억 원으로 내리고 정관을 개정해 이사장 연임을 한 번만 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하는 등 일부 시정조치를 했지만, 이사장 부부의 딸과 사위가 특혜채용됨으로써 오히려 가족 및 친·인척 지배가 강화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KMI “불만 품은 퇴직자들의 음해” 반박

KMI 시무식에서 부대행사로 열렸다는 ‘미스&미스터 KMI’ 선발대회. 수차례 비정기적으로 열렸다고 한다.

KMI 시무식에서 부대행사로 열렸다는 ‘미스&미스터 KMI’ 선발대회. 수차례 비정기적으로 열렸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위원)실로 보내온 답변 자료를 통해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에서 이사장의 친·인척 채용은 법인의 사유화가 우려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며 “다른 법인 사례 등을 참조해 이사장의 법인 사유화 방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천 의원도 “의료행위라는 공익적 일을 하는 비영리재단을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이사장과 가족이 운영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KMI 측은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에 따른 요구 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며 조금씩 개선해가고 있다”면서도 조직 안팎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사회에 의료인이 없는 건 “아무리 (이사직을) 권해도 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딸과 관련해서도 “전문성 있는 변호사가 필요한데 오려는 사람은 없던 차에 마침 변호사인 (이사장의) 자제가 있어 채용했다”는 것이다. 이사장의 사위 역시 공개채용 방식을 통해 선발한 만큼 특혜는 없었다는 게 KMI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 이사장의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에는 “전임 이사장을 계속 내조하면서 그분의 내면을 알 수 있었고, 어머니 리더십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이 전 이사장의 폭행사건 피소 사실과 관련해서는 “회사에 불만을 품고 나가 경쟁업체를 차린 퇴직자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여기저기에 투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비영리 의료재단법인 KMI는 부가가치세 감면과 출연한 재산에 대한 세제 혜택은 물론, 국가의 건강검진 사업을 대행하는 등 다양한 이득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외부 감독은 2년마다 한 번씩 진행되는 보건복지부 감사가 전부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비영리조직이 워낙 많아 모든 조직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스스로 통제가 안 되면 친·인척 간 사유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투명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내부적으로 감시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입력 2018-04-10 11:38:23

  •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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