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1

2018.01.10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코딩 교육? ‘스크래치’나 시작하자

억지춘향식 암기보단 가지고 놀 수 있는 교육으로 접근해야

  • 입력2018-01-09 13: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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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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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때 제일 기뻤던 일을 하나 꼽자면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PC)를 가졌을 때다. 1990년만 해도 컴퓨터는 상당히 고가였다. 당연히 박봉의 월급쟁이였던 아버지도 여러 차례 망설였을 것이다. 고심 끝에 주머니를 열기로 결심하면서 아버지는 내심 아들이 빌 게이츠 같은 유명한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런 아버지의 기대는 금세 깨졌다.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10대는 ‘베이식’ ‘파스칼’ ‘코볼’ ‘C’ ‘어셈블리’ 등으로 이어지는 컴퓨터 언어를 습득하기보다 옆길로 샜다. ‘천리안’의 전신인 ‘PC서브(PC-Serve)’와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 등 갓 시작한 PC통신 서비스에 맛을 들인 것이다. 

    거의 30년이 된 이야기를 새삼 꺼낸 것은 최근 ‘코딩’ 열풍이 낯설지 않아서다. 올해(2018년)부터 중고교에서 주 1시간씩 코딩 교육, 즉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하는 게 의무화됐다. 내년(2019년)부터는 초교 5, 6학년도 주 0.5시간 이상씩 코딩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교육시장에서도 ‘코딩’ 바람이 거세다. 한 세대 만에 다시 유행이 찾아온 것이다.

    빌 게이츠가 학교에서 코딩을 배웠나

    2017년 11월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SW교육 페스티벌’에서 청소년들이 코딩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11월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SW교육 페스티벌’에서 청소년들이 코딩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먼저 딴죽부터 걸고 가자. 코딩 교육이 학교에 빠른 속도로 진입한 이유는 이 교육을 통해 정보기술(IT) 우수 인력을 조기 양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10대 혹은 그 전 나이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다 보면 제2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당장 반론이 가능하다. IT 우수 인력 양성을 위해 왜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코딩 교육을 배워야 할까.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교육시장만 키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월 수십만 원대의 코딩 사교육시장이 형성됐다는 뉴스가 들린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받아 프로그래머가 된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난리법석인가. 



    이런 반론을 의식한 탓인지 코딩 교육이 논리력이나 사고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교육은 코딩 말고도 널렸다. 당장 수학 교육을 제대로 하면 같은 효과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책 읽기나 글쓰기의 효과는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평소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교류하면서도 느끼는 점이다. 코딩 능력이 탁월한 프로그래머도 논리력이나 사고력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프로그래머는 코딩 능력만큼이나 논리력과 사고력이 돋보이는 반면, 다른 프로그래머는 걱정이 될 정도로 답답하다. 더구나 논리력과 사고력이 돋보이는 전자는 평소 책 읽기나 글쓰기에 신경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담컨대, 현재의 코딩 교육 열풍은 금세 식을 개연성이 높다. 갑작스럽게 정규 교육과정에 코딩 교육을 편성한 일도 득보다 실이 클 전망이다. 이미 현장의 프로그래머 사이에서는 마치 수학이 암기과목이 됐듯, 코딩도 주입식 암기과목이 돼 ‘수포자’(수학 포기자)처럼 ‘코포자’(코딩 포기자)만 양성하리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그래도 코딩 교육이 중요한 이유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Scratch). 기존 컴퓨터 언어에 비해 쉽게 코딩을 접할 수 있다. [뉴스1]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Scratch). 기존 컴퓨터 언어에 비해 쉽게 코딩을 접할 수 있다. [뉴스1]

    그렇다면 코딩 교육은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는 직업학교나 컴퓨터공학과 같은 대학 전공으로 미뤄둬야 할까. 아니다. 코딩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오히려 8세가량, 그러니까 초교 입학할 때부터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이들이 조기 코딩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8세가량부터 대다수 아이가 각종 애플리케이션, 특히 게임에 노출된다. 곁에 아이가 있다면 서너 살 혹은 그 전부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조작하고 심지어 게임도 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이다. 8세쯤 되면 이미 아이는 완벽하게 ‘수동적인’ 사용자(user)가 된다. 

    바로 그 시점에 아이에게 게임 대신 코딩을 경험하게 하면 어떨까. 여러 몰입 요소를 넣은 게임을 소비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 창조하는 일은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디지털 문화의 ‘능동적인’ 사용자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질 있는 몇몇은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기도 할 것이다. 

    둘째, 코딩 교육에서 다루는 컴퓨터 언어는 말 그대로 새로운 ‘언어’다. 주입식 암기 교육이 아닌 제대로 된 코딩 교육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할 또 다른 논리와 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코딩은 그 새로운 언어로 글을 쓰는 일이다. 미국에서 조기 코딩 교육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미치 레스닉은 책 ‘나인 :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 원칙’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꼭 저널리스트나 소설가가 되기를 바라서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글쓰기를 가르치는 건 글쓰기를 통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글쓰기를 이용해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코딩을 이용해서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문제예요.” 

    이 대목에서 여러 독자가 곧바로 반문할 것이다. 8세부터 코딩을 위한 사교육을 하라는 얘기인가. 아니다. 멋진 대안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레스닉 등이 중심이 돼 8세부터 16세까지 어린이와 청소년이 쉽게 코딩 기본을 습득할 수 있도록 새로운 컴퓨터 언어 ‘스크래치(Scratch)’를 2007년 개발했다. 

    그림 블록 맞추기처럼 코딩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스크래치는 전 세계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받아 쓸 수 있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학원에 가지 않아도 스크래치를 가르치는 수많은 학습 자료가 인터넷에 널려 있다. 물론 한글 자료도 많다. 만약 아이가 이 스크래치로 자유롭게 노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코딩 교육을 취한 첫걸음이다. 

    그러니 새해에는 아이가 게임만 한다고 도끼눈부터 뜰 게 아니라 스크래치를 권하면 어떨까. 기왕에 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한다면 사교육시장만 키우는 평가에 집중할 게 아니라 아이가 스크래치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 덧붙이자면 스크래치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흥미롭다. 자, 새해에는 함께 스크래치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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