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4

2017.11.22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오늘 점심은 메뚜기 어때?”

‘식용 곤충’ 연구 및 개발 확산…식량난 해결, 환경 보호에 이점

  • 입력2017-11-21 14: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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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 요리 전문 레스토랑
 ‘빠삐용의 키친’에서 판매하는 곤충 요리.[사진 제공·바앤다이닝]

    곤충 요리 전문 레스토랑 ‘빠삐용의 키친’에서 판매하는 곤충 요리.[사진 제공·바앤다이닝]

    몇 년 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화제였다. 지구온난화를 막고자 대기 중에 뿌린 특별한 화학물질이 지구를 꽁꽁 얼렸고, 일부 생존자는 얼어붙은 대지를 계속해서 도는 열차(설국열차)에 몸을 실은 채 끝없는 여행에 나선다. 비싼 표를 구한 소수의 부자는 앞 칸에, 무임승차한 다수의 빈자는 끄트머리 칸에 나눠 타고 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끄트머리 칸에 탄 이들에게 공급되던 검은색 양갱 같은 단백질 바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양갱의 정체는 열차에서 무한 번식한 바퀴벌레였다. 수많은 바퀴벌레가 갈려 검은색 양갱으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누구나 ‘웩!’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화가 나오던 시점(2013년)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보고서를 하나 발표한다. 제목은 ‘식용 곤충(Edible Insects)’.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귀뚜라미, 메뚜기가 소, 돼지보다 좋은 이유

    식용 곤충을 재료로 사용한 음료와 과자 등을 판매하는 카페 ‘이더블커피’의 상품들. 곤충가루가 들어간 초콜릿, 장류, 전갈 보드카 등이 있다(왼쪽). 2015년 7월 14일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서울에서 열린 식용곤충요리경연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애벌레인 ‘고소애’로 만든 오이롤초밥을 선보이고 있다. 고소애는 딱정벌레목 곤충인 갈색쌀거저리의 애벌레다.[동아일보 신원건 기자,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식용 곤충을 재료로 사용한 음료와 과자 등을 판매하는 카페 ‘이더블커피’의 상품들. 곤충가루가 들어간 초콜릿, 장류, 전갈 보드카 등이 있다(왼쪽). 2015년 7월 14일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서울에서 열린 식용곤충요리경연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애벌레인 ‘고소애’로 만든 오이롤초밥을 선보이고 있다. 고소애는 딱정벌레목 곤충인 갈색쌀거저리의 애벌레다.[동아일보 신원건 기자,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시골에서 나고 자란 중년 이상 세대라면 어렸을 때 귀뚜라미나 메뚜기를 구워 먹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배고프던 시절 곤충을 먹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식문화까지 서구화하면서 어느새 곤충은 혐오 대상이 됐다. 

    FAO 보고서도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다. 지구상 곤충 가운데 현재까지 먹어도 문제가 없다고 확인된 것은 약 1900종이나 된다. 딱정벌레(31%), 나비 애벌레(18%), 벌-말벌-개미(14%), 귀뚜라미-메뚜기(13%) 순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인도, 일본,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세계 20억 명이 전통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곤충을 먹어왔다. 



    유엔은 이렇게 곤충을 먹었던 식문화를 되살릴 필요성을 제기한다. 짐작하다시피 이유는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이다. 2017년 현재 세계 인구는 약 76억 명이며 2050년이면 90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늘어난 인구를 먹여살리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먹을거리가 필요하다. 

    유엔이 세계 인구 100억 명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찾은 대안이 바로 식용 곤충이다. 유엔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먼저 곤충은 적은 자원으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귀뚜라미는 똑같은 사료를 섭취하고도 닭보다 2배, 돼지보다 4배, 소보다 12배 이상 효율이 높다. 그러니까 쇠고기 1kg을 얻을 때 쓰는 사료 양이면 귀뚜라미 12kg을 생산할 수 있다. 곤충은 변온동물이라 체온 유지에 영양분을 쓸 필요가 없어 효율이 높다. 

    곤충은 소, 돼지, 닭과 달리 비교적 좁은 환경에서 별다른 부작용 없이 대량 사육이 가능하다. 사료가 적게 필요할 뿐 아니라 물 소비량도 적다. 곤충을 이런 좁은 공간에서 키운다 해도 소, 돼지, 닭 등에 비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소, 돼지 같은 가축을 사육할 때 발생하는 온실기체는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전체 배출량의 18%나 된다. 특히 가축 사육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이나 이산화질소 같은 온실기체는 짧은 기간에 지구를 데우는 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3배(메탄)에서 289배(이산화질소)까지 크다. 반면 곤충의 온실기체 배출량은 소, 돼지의 100분의 1 수준이다. 

    소, 돼지, 닭 등을 집단 사육하는 방식은 광우병,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조류독감) 등 치명적인 질병을 낳는 원인이 된다. 집단 사육은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종 간 장벽을 넘어 사람에게 전염될 수도 있다. 

    다수의 과학자는 곤충이 소, 돼지 같은 포유류나 닭 같은 조류보다 인간과 훨씬 차이가 크기 때문에 종 간 장벽을 뛰어넘는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을 초래할 위험이 낮으리라 본다. 물론 이 대목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인류가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식용 곤충의 대량사육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으니까.


    벨기에, 네덜란드, 핀란드 등도 식용 곤충 허용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만 염두에 두더라도 ‘식용 곤충을 미래 식량’으로 내세우는 유엔의 비전이 상당히 그럴 듯하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대응도 바뀌고 있다. 9월에는 핀란드 정부가 귀뚜라미 등 곤충을 식용으로 키워 판매하는 것을 허용해 화제가 됐다. 앞서 벨기에, 네덜란드 등도 육류를 대체하는 먹을거리로 곤충의 판매를 허용했다. 

    식용 곤충에 거부감이 있던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의 변화도 놀랍다. 핀란드 투르쿠대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응답자 절반 정도가 ‘곤충으로 만든 음식을 사 먹을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스웨덴 응답자의 40%, 독일 응답자의 25%도 식용 곤충 섭취 의향을 밝혔다. 

    짐작하다시피 식용 곤충의 가장 심각한 장애물은 곤충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이다. ‘설국열차’의 끄트머리 칸 사람도 맛은 없지만 꾸역꾸역 먹었던 검은색 단백질 바가 바퀴벌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구역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곳곳에서 곤충의 형태를 가능한 한 숨기면서 먹을거리로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월 현재 한국 정부도 귀뚜라미, 메뚜기, 누에번데기 등 7가지를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식용 곤충으로 지정하고 연구 및 보급을 진행 중이다. 이미 국내 한 기업이 쇠고기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3배 이상 많은 메뚜기 분말을 10%가량 섞은 초콜릿을 시장에 선보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2050년에는 정말로 귀뚜라미나 메뚜기로 만든 단백질 바를 먹는 시대가 올까. “오늘 점심은 메뚜기로 때우는 게 어때?” “여기, 생맥주 두 잔에 귀뚜라미 주세요!” 이런 대화가 오가는 풍경을 한 번 상상해보라. 그나저나 그때는 바퀴벌레를 갈아 단백질 바를 만드는 ‘설국열차’의 그 장면이 어떻게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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