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2017.11.15

커버스토리

“두 번 실수는 없다”

한중관계 훈풍에도 재계는 脫중국 가속화 ‘포스트 차이나’보다 ‘차이나 플러스 원’ 택해야

  • 입력2017-11-14 1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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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대한상공회의소]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대한상공회의소]

    롯데그룹이 인도네시아 살림그룹과 합작한 ‘인도롯데’ 마케팅팀 직원들이 10월 온라인 쇼핑몰 ‘아이롯데’ 오픈을 기념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롯데그룹]

    롯데그룹이 인도네시아 살림그룹과 합작한 ‘인도롯데’ 마케팅팀 직원들이 10월 온라인 쇼핑몰 ‘아이롯데’ 오픈을 기념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1월 초 2박3일간 인도네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7월 베트남에 이어 올해 하반기에만 두 차례 동남아시아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현대자동차(현대차)는 10월 말 사내에 ‘아세안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정방선 이사를 팀장으로 하고 동남아시장 경험이 있는 직원들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은 9월 프랑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설화수 단독 매장을 냈다. 같은 달 미국 뉴욕에 이니스프리 매장도 열었다.


    베트남으로 달려가는 한국 기업들

    언급한 세 개 기업은 지난해 7월 이후 계속된 중국의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최근 한중 양국이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문’을 발표했지만 ‘중국 밖’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도 공통점이다. 

    1년 넘게 이어진 한중 갈등은 중국발(發) 위기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 의존도가 빠르게 증가했고, 2015년엔 26.0%까지 치솟았다. 화장품 등 일부 업종은 해외 매출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올리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경제성장과 한류 열풍이 맞물리면서 한국 화장품 매출이 급상승했다. 이후 업계 전체가 중국에 ‘올인’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 거대한 시장이 정치적 문제로 갑자기 닫혀버릴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하자 중국은 곧 얼굴을 바꿨다. 대륙 전역의 롯데마트 점포가 영업정지 조치를 당하거나 불매운동 대상이 됐고, 현대차 현지 공장이 멈춰 섰다.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 길도 막혔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한국 업체가 생산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친환경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뒤 지금까지 이 결정을 바꾸지 않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추정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피해 규모는 올 한 해에만 8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던 기업들은 최근 속속 중국 밖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목적에서다. 특히 주목받는 장소가 동남아시아다. 11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류 협력을 강조하며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1967년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10개국이 모여 만든 국제기구 ‘아세안(ASEAN)’은 이미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 제2 수출시장이다. 2007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뒤 우리나라의 대(對)아세안 수출량은 연평균 7.5%씩 상승해 중국(4.7%), 미국(4.2%) 등을 앞질렀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11월 16일 개최하는 ‘2018년도 세계경제 전망 세미나’의 주요 발제 주제도 △떠오르는 소비시장의 보고, 베트남(강호동 베카맥스 한국사무소장) △인도네시아 시장의 트렌드와 대응전략(김경현 메르디스인터내셔널 대표) △인도 시장 변화와 유망 수출 상품(김봉훈 맥스틴글로벌 대표)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에 주목하라(김용태 한국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장) 등이다.


    인구 6억 아세안 시장

    베트남 호찌민 고밥 지역에 있는 이마트 고밥점 외부. 이마트는 중국에 이은 2번째 해외 진출지로 베트남을 선택했다.[사진 제공·이마트]

    베트남 호찌민 고밥 지역에 있는 이마트 고밥점 외부. 이마트는 중국에 이은 2번째 해외 진출지로 베트남을 선택했다.[사진 제공·이마트]

    이들 나라 가운데 최근 우리 기업의 ‘러브콜’이 집중되는 곳은 베트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아세안 국가별 수출 비중을 보면 베트남이 43.8%(327억 달러·약 36조5422억 원)로 1위였다. 같은 해 우리나라 기업이 아세안 국가에 투자하거나 신규 설립한 법인 1078개 중에서도 베트남 법인이 672개(62.3%)로 집계됐다. 11월 8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2017 호찌민 한류 박람회’에 참석한 김재홍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은 이처럼 베트남이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인구도 1억 명 가까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장에서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기업 중 하나는 현대차다. 올해 상반기 중국 내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52.3% 급감한 현대차는 최근 베트남 자동차업체 타인꽁과 900억 원을 공동출자해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베트남에 조립공장을 신·증설하는 등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차량 생산 및 판매에 돌입할 채비를 갖추는 중이다. 최근 현대차가 ‘아세안 TF’를 구성한 것도 이 준비 작업의 일환이다. 

    아세안 국가는 지난해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구성했다. 내년부터 역내에서 생산된 차량 수출 시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 현대차는 베트남에 공장을 세움으로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6억 명 이상 인구를 가진 거대시장에 좀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한 셈이다. 

    이외에도 삼성디스플레이가 베트남 박닌 지역에 모바일용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고, LG디스플레이 역시 베트남 하이퐁시에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모듈 조립 공장을 설립하는 등 다른 기업의 베트남 진출도 줄을 잇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

    9월 프랑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개장한 설화수 단독 매장.[사진 제공·아모레퍼시픽]

    9월 프랑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개장한 설화수 단독 매장.[사진 제공·아모레퍼시픽]

    한때 중국 내 매장이 26개에 달했던 신세계 이마트 역시 베트남 진출을 본격화했다. 중국 내 사업 규모를 지속적으로 축소해 현재는 시산(西山)에서 점포 1개만 운영 중인 이마트는 이 또한 연내에 정리할 예정이다. 그 대신 베트남에 2020년까지 2억 달러 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토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 경제보복의 직격탄을 맞았던 롯데 역시 중국 내 롯데마트 사업 철수를 공식 발표했다. 최근 ‘한중관계 회복’에도 이 결정을 바꾸지 않기로 한 롯데는 인도네시아 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11월 초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 강희태 롯데백화점 대표,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 이광영 롯데자산개발 대표,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 등 그룹 최고경영진을 다수 동반한 채 인도네시아 출장을 다녀온 것도 그 일환이다. 롯데는 이미 인도네시아에서 롯데백화점(1개), 롯데마트(45개), 롯데리아(30개), 엔제리너스(3개) 등 다양한 롯데 브랜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인도네시아 재계 2위 살림그룹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10월 10일 온라인 쇼핑몰 ‘아이롯데’(www.ilotte.com)를 오픈하기도 했다. 현재 롯데그룹의 해외 사업 매출 중 15%가 인도네시아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향후 유통 부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동남아 사업 분야를 화학, 건설 등으로 확대해갈 방침이다. 

    GS그룹은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 허창수 GS 회장은 11월 초 인도 뉴델리에서 허진수 GS칼텍스 회장, 허명수 GS건설 부회장 등이 참석한 사장단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허창수 회장은 “인도는 연평균 성장률 7%대의 거대 내수시장이 있으며 중동·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 구실을 할 수 있는 등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큰 나라”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 집중하던 해외 마케팅을 동남아, 중동 등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 유럽 등 ‘미용 본고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3월 중국 정부의 ‘금한령’ 이후 중국인 단체관광객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던 면세점업계 역시 해외 진출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라면세점은 10월 말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4터미널에 화장품 및 향수 매장을 열었다. 올 연말 홍콩국제공항에도 매장을 낼 계획이다. 롯데면세점도 11월 1일 베트남 다낭국제공항점을 개장했고 하노이, 냐짱, 호찌민 등 다른 지역 진출도 검토 중이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이 한국을 찾지 않으면서 많은 면세점이 치명상을 입었다. 그 과정에서 경영 위험 원인을 줄이려면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연말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한국에 몰려든다 해도 이제는 전처럼 샴페인을 터뜨릴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경험을 계기로 업계의 체질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한편 한국 기업이 ‘중국 리스크’를 줄이려고 해외로 나간다 해도 여전히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이며, 구매력은 세계 1위 수준이다. 현재 중국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2배 이상인 걸 감안하면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맞붙어 있는 한국이 이 거대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최근 정재계에서는 우리도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일본은 2012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여파로 중국으로부터 무역 보복을 당한 뒤 중국과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남아 등지에 또 하나의 주력 시장을 만들고자 애썼다. 이것이 이른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다. 우리 기업의 ‘탈중국’ 전략도 이를 참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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