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2017.09.20

김민경의 미식세계

믿고 먹는 올드 패션, ‘소금집’ 델리미트

시간이 빚은 고품격 수제 햄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9-19 1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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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달걀은 물론, 햄이나 소시지도 안 팔린다고 한다. 어떻게 생산됐는지,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 길이 없으니 불안한 마음에 아예 먹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불안함은 불확실함에서 나온다. 불안함을 떨치려면 생산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흔히 햄이나 소시지를 인공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으로 여긴다. 하지만 햄(ham)은 본래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숙성, 자연 건조 및 훈연해 만든 ‘고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현재의 하몽, 잠봉, 프로시우토 같은 것이다.

    소시지는 이리저리 발라 먹고 남은 고기를 모아 창자에 넣어 말린 뒤 두고 먹은 데서 시작됐다. ‘소금에 절인’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니 상하지 않도록 소금에 절였나 보다. 살라미, 살시차, 초리소, 앙두예트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했다.

    신선한 고기와 소금, 스파이스, 허브, 와인을 사용해 염지, 숙성, 건조, 발효, 훈연의 방법으로 진짜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곳이 있다. 젊은 미국인 셰프와 디자이너였던 한국 청년이 함께 가공육을 만드는 ‘소금집’이다.

    여기에 기존 햄이나 소시지를 대신할 만한 햄이 여럿 있다. 제주 흑돼지 햄은 햄이라 부르지만 덩어리 살코기로 만들기 때문에 잡고기나 합성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뒷다리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부위의 뼈를 발라내 살코기만 약 20일 동안 숙성시킨다. 이후 사과나무로 훈연해 부드럽게 익힌다. 촉촉하고 폭신폭신하게 씹는 맛이 좋고 아주 구수하다.

    카피콜라(capicola)는 돼지 목살을 소금과 허브에 버무려 2~3주가량 숙성시킨 다음 저온에서 로스팅한 것이다. 고기 겉면에 향신료가 잔뜩 붙어 있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다. 살코기는 탄력 있고 촉촉하며 맛이 순하다.

    돼지 목살로 만드는 생햄인 코파(coppa)는 카피콜라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겉은 바싹 말라 있고 단단하지만, 얇게 썰면 단면에 붉은 살코기와 흰 지방이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어우러져 있다. 육질이 부들부들하면서 씹는 맛도 살아 있고 고소하다.

    돼지 등심을 오랫동안 건조, 발효시켜 만든 론지노(lonzino)는 기름기가 거의 없는 생햄이다. 뒤가 비칠 정도로 얇게 썰어 먹으면 매끈하면서 쫄깃하고 감칠맛이 좋다.

    브레사올라(bresaola)는 쇠고기를 사용한 생햄인데 주로 지방이 적은 부위로 만든다. 소금과 허브를 섞어 염지한 후 레드 와인에 담가 숙성시켜 건조한다. 루비처럼 고운 붉은색을 띠며 치즈처럼 농익은 향이 난다. 익힌 햄은 그대로 먹거나 샌드위치에 곁들이고 생햄은 복숭아, 사과, 멜론 같은 달콤한 과일이나 꿀, 오래 숙성시킨 치즈와 먹으면 잘 어울린다.

    ‘소금집’에서는 3년 동안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만 쓴다. 씁쓸하고 잡스러운 맛이 빠져나가 고기 본연의 맛과 향을 잘 살려주기 때문이다. 제조 방식은 냉훈연과 온훈연 두 가지로 나뉜다.

    냉훈연은 섭씨 38도 이하에서 나무를 태우는 연기만 고기에 입히는 방식이다. 천천히 오랜 시간 동안 풍부한 맛과 향이 고기에 밴다. 온훈연은 나무를 태우는 열과 연기를 동시에 고기에 입히는 것으로 섭씨 65~70도에서 이뤄진다. 이보다 온도가 높으면 수분이 빠져나가 고기의 맛과 식감이 떨어질 수 있다. 훈연할 때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체리 또는 사과나무, 나무 특유의 깊고 진한 향이 배는 히커리를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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