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2017.09.20

인터뷰 | 김호철 한국도시재생학회 회장

“속전속결로 하다가는 4대강처럼 될 수 있다”

5년간 50조 원 쏟아붓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09-19 12:22:2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문재인 대통령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5년간 예산 50조 원을 투입해 전국 500곳의 노후 도심과 주거지를 정비하는 사업이다. 역대 정부는 뉴타운 사업,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통해 주거지를 전면 철거하고 대부분 신규 아파트를 지어왔다. 그러나 이는 저성장 시대에 맞지 않는 데다 돈 있는 사람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 여론이 컸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노후지역을 정비해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성장 시대 발맞춘 정부 사업

    정부가 50조 원을 들여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수도권 노후 주거지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그동안 정부가 진행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리는 ‘대박’을 쳤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란 기대감에 투기 세력이 일찌감치 몰려든 것이다. 특히 31조 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22조 원이 들어간 4대강 사업의 예산을 훌쩍 뛰어넘어 사업지 선정 전부터 들썩이는 형국이다.

    도시재생은 정말로 대박을 안겨주는 사업일까. 1980년대부터 도시재생에 관한 연구를 해온 김호철 한국도시재생학회 회장 겸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사진·56)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란 무엇인가요.
    “도시재생은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기 어려운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등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는 사업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여기에 ‘뉴딜’이라는 일자리 창출 방안까지 붙여놓은 겁니다.”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도 낙후지역에 지원금을 주고 정비하도록 한 것인데, 정부 사업은 무엇이 다른가요.
    “서울시는 기본적으로 노후 단독주택과 다가구 밀집지역 등 일부 쇠퇴지역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박원순 시장이 그런 쪽에 관심 많은 사회단체 출신이기 때문이죠. 문 대통령도 처음에는 그런 사업안을 갖고 시작했지만 ‘서울시의 상황을 전국적으로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도시재생은 지역적 특성이 중요한 사업입니다. 정부는 지역 특성에 맞게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려 합니다. 딱 뭐가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추진하는 과정에서 달라질 겁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처럼 생산성 측면에서 효용가치가 없는 사업은 아닙니까.
    “일각에선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과연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것인가’라고 우려합니다. 냉정하게 얘기해 도시재생 사업에 5년 동안 50조 원을 쏟아부으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도시재생 사업을 경제 측면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 경제, 문화, 역사 등 다각도에서 접근해야 하죠. 실제 노후 불량 주거지역에 가보면 정말 엉망입니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빈민이 늘고 슬럼화돼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오히려 거기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질 겁니다.”



    경제활성화 아닌 ‘삶의 질 향상’ 초점

    복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사회적으로 어떤 순기능이 있을까요.
    “먼저 도시재생 사업에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공동체 의식이 함양됩니다. 여러 동네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면 사회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또 국토 균형 발전 효과도 있어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도시, 행복도시 등 개발 계획이 나왔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완화되지 않았죠. 거꾸로 대규모 지역개발은 지방 구도심 쇠퇴의 원인이 됐어요. 예를 들어 경남 진주에 혁신도시를 만들면 구도심 주민이 옮겨가겠죠. 그러면 구도심은 쇠퇴합니다. 반면, 100개 도시의 500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면 오히려 대규모 개발 사업보다 국가의 균형 발전,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인구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까지 도시재생 사업으로 살려야 하나요.
    “이미 주민등록상 65세 인구가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어요. 도시재생 사업도 고령화 이슈와 맞물려야 합니다. 땅이 좁고 인구가 밀집한 나라에서 지방 소멸까지 진행되면 굉장히 위험하죠. 활력이 떨어진 도시에는 노인을 위한 시설들이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도시재생은 국토교통부만의 사업이 아니라 부처 간 협업 사업입니다. 그래서 도시재생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총리고, 위원은 각 부처 장관입니다. 고령화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도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정부가 사업지 선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70%까지 위임하기로 했는데, 괜찮을까요.
    “출발 과정에서는 지자체가 중심이 되는 게 맞습니다. 다만 지자체가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할 역량이 있느냐를 우려하는 시각도 분명 존재하죠. 그러나 중앙정부가 진행하면 지역적 특성을 살리기 힘들어요. 지자체가 중심이 되고 전문가들이 참여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도시재생지원센터’라고 있는데, 이쪽에서 틀을 짜 지자체에 줘야 합니다. 그냥 지자체에 던져주면 나눠 먹기 식으로 진행될 위험이 있어요. 지방의 도시계획 연구원들도 참여케 해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발생하는 지가 상승,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젠트리피케이션은 전 세계적 문제입니다. 소득계층이 상향화하면 반드시 수반되는 현상이죠.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도시를 개선할 때 과다한 임대료 상승은 규제로 막아야 합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상인과 건물주 간 상생협약을 하고 있어요. 이처럼 도시재생 사업지로 선정될 경우 일정 기간 낮은 임대료를 유지하도록 보장해주고, 계약 기간도 늘리며, 인상폭도 상한선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 초기부터 지자체뿐 아니라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기업, 상인, 건물주, 지역언론 등 모두가 참여할 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지역사회 모두 주체가 돼야

    올해 도시재생 사업지 선정에서 서울시는 제외됐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현 정부 역시 부동산 투기에 민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 이를 투자 개념으로 보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제대로 홍보하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50조 원’만 강조되니 문제입니다. 부동산 투기 세력이 도시재생 사업에 들어와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것은 정부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일단 서울을 제외하고 ‘도시재생은 투기가 아니다’라는 인식부터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재생과 투기의 연결고리를 끊는 게 가능한가요.
    “그에 대한 답이 쉽지 않지만 투기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는 있죠. 예를 들어 청년, 신혼부부, 고령자 등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넣는다든지, 고령자를 위한 시설을 짓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투기 세력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삶의 질이 개선돼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이익을 보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죠. 그러나 외부인이 가격 상승의 수혜를 입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은 꼭 수반돼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이번 정부가 5년 안에 끝낼 사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도시재생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입니다. 재개발·재건축처럼 아파트를 짓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개량해야 할 사업이죠. 도시재생이 원래 티가 잘 안 나요. 1곳에 1000억 원이 투입돼도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기에는 큰돈이 아닙니다. 주차장 짓고 마을회관 만들면 끝날지도 몰라요. 이것을 시드머니(종잣돈)로 해 10년, 20년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차기 정부까지 도시재생 사업이 이어지도록 틀을 만드는 일이죠. 잘못하다간 4대강 사업처럼 끝나버릴 수도 있어요. 현 정부는 도시재생 사업 발전의 틀을 마련한다는 목표의식이 필요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이미 박근혜 정부가 2013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시재생특별법)을 재정하면서 13개 선도지역을 선정했고, 지난해 33개 지역을 선정했어요. 문재인 정부도 이걸 이어받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음 정부, 그다음 정부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도시재생 사업을 먼저 추진한 국내 도시 가운데 이상적인 곳은 어디인가요.
    “국토교통부에서 선정한 13개 선도지역 가운데 하나인 경북 영주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영주1, 2동에 1940~50년대 형성된 근대시장과 옛 철도역사 주변을 재생하는 사업을 진행했어요. 이곳은 선도지역 선정 전부터 지자체장이 전문가를 위촉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죠. 고령화 연계 아이디어로 할머니들이 묵을 파는 ‘할매 묵공장’이라든지, 할아버지들이 가구를 만드는 ‘할배 목공소’ 등 옛 시장을 현대화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지역사회 주민들이 주체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매우 본받을 만한 곳으로 꼽히고 있어요.”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