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2017.09.20

인터뷰

“사회적 상처는 우리 몸을 병들게 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9-19 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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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학은 오랫동안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았다. 그 덕에 우리는 나이, 생활습관, 가족력 등이 특정 질병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이 발병할 확률이 높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그렇다면 이런 경고를 듣고도 담배를 피우고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질병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야근은 현대의학이 공인한 발암물질이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야근하던 노동자가 암에 걸렸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마지막으로 이렇게도 물어보겠다. 1997년 한국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3.1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4년 27.3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자살자 상당수는 우울증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오직 우울증에 걸린 ‘그들’에게 있는 걸까.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바로 이런 것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소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차별 경험과 고용 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질병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인을 찾는 사람이다. 9월 11일 고려대 연구실에서 마주 앉은 김 교수는 이 학문의 이름을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라고 소개했다.



    사회역학은 세계적으로 봐도 1990년대 후반에야 연구가 본격화된 학문 분야다. 연세대 의대(학사), 서울대 보건대학원(석사)을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국내에서 관련 연구 분야의 중심에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보건대학원에서 강의하다 2013년 귀국한 그는 지금까지 재소자, 쌍용자동차(쌍용차) 해고노동자, 소방공무원, 동성애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 등의 건강 문제를 연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가 개인에게 입히는 정신적 상처는 반드시 사람 몸에 흔적을 남기고, 질병은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는 한 방식이라는 걸 확인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소득이 없는 노인, 결혼이주 여성과 성소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자주 아프고 더 일찍 죽는다. 그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여러 데이터를 통해 바로 이 ‘사실’을 드러내 보였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

    “세계적으로 발표되는 건강 관련 논문을 보면 과거에는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자가 환자의 개인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병의 원인을 국가, 학교, 직장, 지역사회 같은 공동체의 특성에서 찾는 연구자가 나타났죠. 연구자들은 환자에게 개인적 특수성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것도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원인의 원인’을 찾아내면 환자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지점에서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

    다시 한국의 자살률 얘기로 돌아가보자. 지난 20년 새 한국인의 유전자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은 2배 이상 높아졌다. 그렇다면 “우울증에 걸린 개인을 넘어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에 뭔가 원인이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낸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김 교수는 그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학자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런 삶을 꿈꾼 건 아니라고 한다. 어린 시절 그는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의 공부 잘하는 큰아들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의사’라 답했고, 대입시험을 치르고도 갈등 없이 의대에 지원했다. 그런데 의예과 1학년 5월 대동제 때 그를 평범한 의사로 살지 않게 만든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당시 대학 학생회는 축제 때가 되면 사회단체와 함께 장터를 열고 수익금을 해당 단체에 기부하곤 했다. 그의 학과가 ‘연대’한 단체는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였다. 거기서 일을 돕다 노동 현장에서 손가락, 청력 등을 잃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중 한 분과 나눈 대화가 생생히 기억나요. 공장에서 일하다 한 손이 프레스기에 잘렸대요. 그 손을 치료받고 나머지 한 손으로 다시 일하는데 그 손마저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더군요. 보통 그렇게 되면 다른 한 손으로 빨리 프레스기를 멈춰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분에겐 이미 한 손이 없었던 거예요. 그 말씀을 하면서 양손을 보여주는데 손가락이 두 개밖에 없었어요. 그것도 발가락에서 옮겨 심은 거라고 하셨죠.”

    이 일은 김 교수가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두고 관련 활동을 계속하는 계기가 됐다. 의대 본과 1학년 시절 산업재해를 당한 이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 한 달 동안 상근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때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제가 기타를 치고 그 반주에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여러 곡을 부른 뒤 다른 분에게 기타를 넘기려고 보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이 저 한 명뿐이더군요.”

    김 교수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젊은 날의 기억 중 하나다.

    그는 “원래부터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보면 불의를 보고 참은 일이 참 많다”는 것이다. 다만 “고등학생 때부터 주위에 닮고 싶은,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했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배우려 애썼다”고 한다. 그러던 중 산업재해 노동자들을 만나 의대생으로서, 나아가 의사로서 자신이 할 일을 고민하게 됐다는 얘기다.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의미 있고, 하고 싶은’ 일

    의대 본과 4학년생 때 당시 한 은행이 의대생들에게 제공하던 ‘무담보 대출’ 500만 원을 받아 미국 보스턴에서 8주간 머물며 노동자 건강단체 자원봉사자로 일한 것도 그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가까이 있는 하버드대 수업을 청강하면서 산업재해 노동자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각종 건강권 이슈를 생생히 접한 것이다. 이는 그가 당초 미래 직업으로 여기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아닌, ‘사회역학자’로서 삶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의대 졸업 후 천안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병원 인턴이 되는 대신 대학원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에도 제 삶은 여러 계기와 그에 대한 제 응답이 맞물려 이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연구 주제도 스스로 열심히 찾기보다 그것이 저를 찾아온 경우가 많았고요. 그때마다 저는 이 일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의미 있고, 하고 싶은’ 일인가 생각했죠. ‘그렇다’는 답이 나오면 최선을 다해 연구했고요.”

    2015년 5월 쌍용차 노동조합으로부터 연구 의뢰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진행된 지 6년이 돼갈 무렵이었다. 당시 김 교수를 찾아온 노조 관계자는 “해고노동자들이 여전히 너무 힘들어한다”고 했다. 해고노동자와 가족이 연이어 세상을 떠난 ‘등골 서늘하던’ 시간도 얘기했다. 김 교수가 사회역학자로서 처음 관심을 가진 주제도 자살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했을까’를 연구 주제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떤 경로로 실업이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로, 그리고 마지막엔 ‘한국은 해고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로 바뀌어갔다.

    그가 당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운데 해당 연구 대상자의 62.0%(69명)는 해고 이후 ‘취업, 창업 또는 업무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은 경험’이 없다. 이들이 해고 이후 구직 과정에서 가장 도움을 받은 존재는 ‘친구 및 지인’(37명·42.0%), ‘동료 해고자’(17명·19.3%), ‘가족 및 친·인척’(16명·18.2%) 순이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의 도움을 받은 이는 8명(9.1%)에 불과했다. 이 연구는 해고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이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김 교수는 “해고 위험을 개인과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사회에서 해고는 한 사람의 삶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조차 해고에 대한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노동자가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고용 불안은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 그러니 이것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셈이다.

    김 교수의 연구가 사회에 이와 관련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그 결과로 해고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된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테다. 문제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해고노동자의 삶과 그들이 입은 상처를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그들에게 ‘해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지’ 같은, 가장 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렇게 그들의 상처를 헤집어놓았는데 의미 없는 연구가 되면 어떡하나,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행한 ‘생존학생 실태조사’에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조사가 뒤늦게 시작된 탓에 학생들은 막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삶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려는 참이었다. 그들에게 다시 ‘침몰하는 배에서 친구를 잃은 상처와, 그 상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살아온 2년’의 이야기를 묻는 게 쉽지 않았다. 김 교수는 “내가 단원고 학생이라면 이 인터뷰를 하고 싶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답은 ‘아니다’였고, 그래서 더 미안하고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해야 했다. 그동안 그가 겪어온 한국 사회의 수많은 참사 경험이 김 교수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듣고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는 교훈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호 생존 학생 연구를 시작하면서 19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9년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등 우리가 기억하는 대형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다. 간혹 발견되는 신문기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사회역학자 앞에 놓인 사각의 링

    “기록되지 않았다는 건 그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국가는, 어찌 보면 자신이 초래한 참사의 아픔을 치유할 책임을 참사에서 살아남은 개인에게 고스란히 떠맡겨온 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번 고통만큼은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데이터로 만들고 공동체가 기억하도록 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김 교수가 이렇게 생각한 배경에는 대학원 시절 만난 리처드 클랩 보스턴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가르침도 있었다. 미국에서 IBM과 노동자 사이에 건강권 관련 소송이 벌어졌을 때 노동자 편에 섰던 것으로 유명한 클랩 교수는 “나도 당신 같은 사회역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김 교수에게 “데이터가 없으면 역학자는 링에 올라갈 수 없다. 역학자가 적절한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이후 김 교수에게 중요한 지침이 됐다. 콜센터 상담사, 소방공무원, 인턴·레지던트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을 위해 싸워야 할 때 그는 항상 데이터를 먼저 수집했다. 그것을 분석해 학술 논문을 쓰고, 이를 기초로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설명했다.

    최근 김 교수가 올라가 있는 ‘링’의 싸움 주제는 성소수자 인권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정신의학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했다.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을 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도 발표했다. 이제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고, 따라서 치료 대상이 아니며, 에이즈(AIDS)의 원인도 아니라는 건 세계 과학계의 ‘상식’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해외 논의 등을 다른 학자들과 함께 정리해 인터넷 홈페이지(lgbtstudies.or.kr)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1992년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 형태’로 인정했고, 이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2010~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 중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3.7%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 비율이 77.6%로 호주(14%), 미국(20.7%), 폴란드(38.4%)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조사 대상국 중 터키(83.5%)에 이어 두 번째다. 김 교수는 “이런 사회에서 동성애자는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차별 때문에 병에 걸린다”고 했다. 그가 ‘과학’을 근거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일에 뛰어든 이유다.

    김 교수는 “얼마 전 대만에서 트랜스젠더가 장관이 됐다. 유럽에서는 동성애자 총리가 여러 명 나왔다. 그들이 트랜스젠더라서, 동성애자라서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트랜스젠더거나 동성애자였을 뿐이다. 아무 근거 없는 혐오 때문에 이런 좋은 사람을 놓치는 것이 옳은가”라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게이 교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레즈비언 교수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들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에 몰두해 지금 같은 업적을 내기보다,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사회와 매일 싸우다 소진돼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지 말자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

    그는 최근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 앞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하는 강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모들에게 “당신 자녀가 이 사회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폭행당하거나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또래보다 몇 배나 높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는 병이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 같은 주장을 하면서 부모님들을 상처 입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늘 이 강의를 들으셨어도 부모님들이 그들과 논쟁하실 수는 없을 거다. 그런 싸움은 제가 하겠다. 그건 대학에서 일하는 저 같은 사람 몫이다. 오늘 이 긴 설명을 드린 건 그런 잘못된 주장에 주눅 들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서다. 그 앞에서 직접 반박하지 못하시더라도 너무 상처받지 마시라. 저들이 잘못된 거니까.”

    어쩌면 이것이 사회역학자로서 앞으로도 계속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야 할 그가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의 아픔이 길이 되도록, 그 상처와 고통이 만들어낸 ‘데이터’가 결코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최선을 다할 테니, 당신들은 제발 상처받거나 병들지 말고 이 힘든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달라’는 것 말이다.

    김 교수는 “그렇게 사명을 느끼며 일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뜨거운 주제를 연구하는 건 학자로서 큰 행운”이라고 했다.

    “내가 틀린 얘기를 하고 부족한 얘기를 하면 내가 힘을 실어주고 싶은 사람들, 내가 이 현장에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초라해지잖아요. 그렇게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주는 긴장이 있어요. 그게 학자에게 나쁜 것 같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꼼꼼히 논문을 읽고, 더 치열하게 연구하게 만드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예전에 신영복 선생의 책을 읽으며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사회역학을 공부하면서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가끔 제게 굳이 당신이 ‘맞지 않아도 될 비’를 맞을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게 제 비인 거죠. 이 비를 피한다고 해서 맑은 하늘이 있지는 않을 거예요. 아시잖아요. 삶 곳곳에는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저는 참 운이 좋게도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고통과 싸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 위로 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으며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김 교수가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소개에 밝힌 자신의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고 최선을 다 하는 학자가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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