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인터뷰 | 박성수 ETRI 책임연구원

“양자컴퓨터는 4차 산업혁명의 완성자”

“방대한 데이터 처리, AI 개발에 필수…지금 기술 개발 안 하면 영영 뒤처져”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7-08-14 13: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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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사진)은 6년 전부터 국내 양자정보통신과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 필요성을 제기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학교수, 중소기업 등과 함께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개발사업’을 신청해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과학창조부)의 양자정보통신 기본계획 수립 기획위원, ETRI 양자창의연구센터 설립 추진위원장 등을 맡아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양자 기술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양자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먹을거리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8월 8일 박 책임연구원을 만나 양자 기술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물었다.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이 매우 생소한데요.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量子力學·quantum mechanics)에 기반을 둔 컴퓨터입니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quantity)을 의미하는 말에서 나왔고요. 이는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나타내는데,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도 빛이 파동이긴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고 봤는데,  이게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빛알 이론’입니다. ‘빛알’은 ‘광자(光子)’라고 하는데, 빛을 잘게 쪼개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양자의 일종입니다. 에너지의 가장 작은 단위를 가진 입자가 곧 양자라고 할 수 있죠.

    1961년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때까지 양자역학 해석은 악명 높은 문제였지만 이제는 여러 해석 사이에서 학자들끼리 의견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터의 원리를 설명해준다면요.
    “양자컴퓨터는 이렇게 정리해봅시다. 2개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중첩(Superposition)’, 2개의 양자를 특별 처리해 한쪽 동작에 따라 반대쪽 동작이 예측 가능한 ‘얽힘(Entanglement)’ 등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컴퓨터라고 말입니다.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 어느 하나만 표현하는데 이걸 bit(비트)라고 합니다. 양자컴퓨터는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고 이걸 큐비트(Qbit)라고 해요. 큐비트 수가 늘수록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곧 연산능력 향상으로 이어지죠.”

    그래도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0과 1이라는 2개 큐비트를 쓰면 모두 4가지(00, 01, 10, 11) 상태로 표시할 수 있죠. 이런 식으로 3개 큐비트로는 8가지, n개 큐비트로는 2의 n제곱 수만큼 표시가 가능해져요. 종이를 한 번 접으면 두께는 2배가 되고 한 번 더 접으면 4배, 8배, 16배 등이 되는 식입니다. 양자현상을 가지고 1과 0을 표시해 이걸 정보통신에 쓰는 건데, 현 슈퍼컴퓨터로 수백 년 걸릴 연산을 몇 초 만에 해낼 수 있습니다. 구글이나 IBM 등은 50개 큐비트를 다룰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들고 있죠.”



    큐비트는 어떻게 구현하나요.
    “아주 특별한 소자로만 구현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영하 273도인 극저온에서 작동하거나 진공에 가둔 개개의 원자가 사용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큐비트 회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다양한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하고 연산에 활용하는 전자, 광자, 이온 등의 양자 중첩 현상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해요. 이 밖에도 여러 기술이 필요한데, 현재는 초보 수준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요.”

    매우 빠른 연산능력을 갖고 있어 다양한 분야에 쓰이겠어요.
    “그럼요. 기존 컴퓨터로 못하는 걸 할 수 있죠. 거리와 비용 등을 따져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트래블링 세일즈맨’처럼 무엇부터 하면 가장 빠른지를 알 수 있는 ‘최적화 문제’도 풀 수 있죠. 실시간으로 오르내리는 주식투자 예측이나 신약 개발, 복잡한 기상 예측, 암호 해독 등에도 쓰일 수 있고요. 앞서 말한 ‘중첩’ ‘얽힘’ 상태 등 양자 정보의 상호작용 민감성을 활용하면 자연계 센서로도 응용할 수 있고요. 예를 들어 중력의 2000만 분의 1의 변화를 감지하는 중력센서는 지하에 묻힌 석유나 광물, 유물, 상·하수도관을 탐지하고 미사일 발사 등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미사일까지요?
    “흔히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특정 타깃으로 미사일을 쐈는데, 상대국이 전파를 교란하면 무용지물이 되죠. 그러나 중력센서를 단 미사일은 미세한 중력 변화를 인식하고 그 길을 따라 날아갈 수 있죠.”



    소인수분해와 정보 탈취

    암호 해독은 뭔가요.
    “양자컴퓨터가 도입되면 현재 신용카드, 온라인 뱅킹 등에 널리 쓰이는 디지털 암호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보안 방식은 소인수분해를 근간으로 하는데, 양자컴퓨터가 보급되면 몇 시간 안에 풀어낼 수 있거든요. 따라서 새로운 보안체계가 필요하고, 그 대안으로 유력한 기술이 양자암호통신입니다. 원하는 정보를 암호화해 통신망으로 전송한 뒤 암호를 푸는 열쇠를 빛 알갱이 한두 개에 실어 보내죠. 중첩성, 복제불가능성 같은 양자의 독특한 성질 때문에 정보 탈취가 불가능합니다.”

    ▼보안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군요.
    “그럼요. 현재는 광케이블 속 데이터를 읽는 검측기를 사용하면 누구나 정보를 탈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암호통신은 달라요. 일반 데이터는 중간에서 정보를 읽어도 그대로 전송되지만, 양자암호통신 세계에선 누군가가 회선을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해 분석하고 양자 값을 읽어내면 양자의 성질을 잃어버려요. 양자 광신호는 인터넷 광케이블을 통해 전송할 수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기술이 ‘양자 키 분배’입니다. 한 번 설정으로 발신자는 하나의 양자를 수신자에게 보내죠. 그런데 중간에 차단하고 시스템을 방해하면 누군가 회선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각국이 양자 기술에 ‘전력투구’하는군요.
    “미국은 양자정보과학 연구를 위해 매년 4766억 원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요. 양자역학 발생지인 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이 앞서 있고 5년 전부터는 중국이 연간 2913억 원을 투자하면서 양자 기술 연구에 뛰어들었어요.”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팔기도 하나요. 
    “양자컴퓨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캐나다 ‘디웨이브 시스템’사는 2011년 128큐비트를 가진 디웨이브(D-WAVE)를 처음 상용화했죠. 우리 돈으로 150억 원가량 하는데, 2013년 구글이 156큐비트의 ‘디웨이브 2’를, 2015년엔 1000큐비트의 ‘디웨이브 2X’를 도입했어요. 디웨이브는 선거전략, 자동차 운전, 통행시간 단축 등 최적화 문제에선 뛰어난 성능을 보였지만 다른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범용 양자컴퓨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죠.”

    방대한 데이터 처리에 탁월하다면 4차 산업혁명과도 연관성이 있겠군요.   
    “양자컴퓨터는 4차 산업혁명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과 ICBM(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으로, 모두 양자컴퓨터와 연관돼 있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사물인터넷(IoT)이 매일 방대한 데이터를 생성하는데, 기존 컴퓨터로 처리하려면 엄청난 전력이 소모되고 처리 속도도 늦습니다. 이세돌 프로기사 9단과 세기의 대결을 가진 ‘알파고’의 딥러닝(deep learning·컴퓨터가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을 떠올려보세요. 수억 개의 기보(棋譜)를 암기하고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정보검색을 해야죠. 예를 들어 기보 10개가 있다면 알파고는 이것들을 순식간에 비교 분석해야 합니다. 기존 슈퍼컴퓨터가 10개 기보를 하나씩 비교했다면 양자컴퓨터는 ‘루트’ 10, 즉 10번 비교 분석할 걸 3.3번 비교 분석하는 거죠. 데이터가 100만 개면 1000번만 하면 되고요.”

    그렇군요.
    “사실 AI로 그림을 판단한다면 그림의 특징을 찾아내 이를 비교해보고 알아가는 거예요. 털이 있고 둥근 얼굴에 수염이 있다면 고양이라고 인식하는 식이죠. 이런 특징을 잘 분류하고 연관성 있게 만들어놓은 데이터가 1억 개라고 해도 1만 번만 검색하면 됩니다. 엄청난 파워죠. 데이터를 뒤져 일정한 ‘패턴’을 찾거나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제품을 추천하는 ‘검색엔진’에도 사용할 수 있고요.”



    8년 동안 양자컴퓨터·통신 개발 계획

    시장성은 어떤가요.
    “이 분야에서 앞으로 거대시장이 만들어질 겁니다. 양자암호통신은 국가 안보는 물론, 산업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고요. 양자암호통신 분야는 150억 달러(약 17조1225억 원·2026년), 양자컴퓨터 분야는 236억 달러(약 26조9400억 원·2025년) 규모의 시장이 생길 걸로 예상합니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ETRI는 2005년 양자암호통신을 국내에서 처음 시험했고, 일부 대학이나 연구소 등이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SK텔레콤은 상용화 수준의 통신 장비를 개발 중이고요. 사실은 아직 초기 단계인데, 이번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대학교수 등이 참여해 3000억 원 규모의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개발사업’ 프로젝트를 신청했고,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 중입니다. 이 사업이 채택되면 8년간 범용 양자컴퓨터를 만들고 양자암호통신 및 양자센서를 개발하는 길이 열립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ETRI와 대학교수, 중소기업 등 산학연(産學硏)이 참여할 거고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해요. 지금 기술 개발을 하지 않으면 시장 진입 기회를 잃고 양자컴퓨터 후진국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죠.”

    박 책임연구원은 오래전부터 양자컴퓨터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요.
    “2012년 캐나다 디웨이브 시스템사가 양자컴퓨터를 팔겠다며 만든 브로슈어를 보고 기술 개발 필요성을 제기했어요. 이제 기술 개발과 실용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니 걱정도 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등 레이저 광학기술과 반도체 공정기술을 가지고 있고, 광통신 기술력도 세계적 수준이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정부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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