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사회

KAI 수사, 2015년 감사원 감사 재탕?

  • 이정훈 콘텐츠비즈팀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8-04 17: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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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연말 17조 원 규모의 고등훈련기(APT) 사업을 결정하는 미국이 한국 검찰을 주시하고 있다. 유력한 후보 기종인 T-50을 생산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정치권에 뇌물을 준 방위산업체의 경우 응찰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T-50의 경쟁자는 미국 보잉사의 BT-X다. 2011년 보잉은 미국 급유기 사업 경쟁에서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2007년 미 공군이 급유기 사업을 펼쳤을 때 보잉은 이 사업을 담당해온 공군 장성을 영입했는데, 이것이 부정행위로 적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응찰 자격을 박탈당해 급유기는 유럽산으로 결정되는 듯했다. 정치인들이 나서 “국산을 써야 한다”고 변호해준 덕에 다시 입찰을 실시해 보잉이 가까스로 사업을 따냈다. 



    KAI, 17조 원 美 훈련기 사업 수주할 수 있을까

    보잉은 급유기 사업을 빼고는 한국 공군기 사업과 미국 공군기 사업에서 계속 실패했기에 APT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한국 검찰이 KAI가 박근혜 정부에 뇌물을 준 사실을 찾아낸다면, T-50은 도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공론화할 수도 있다.

    KAI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내부 갈등이다. KAI는 1999년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항공 부문, 현대항공을 합쳐 만들었다. KAI의 대표작인 T-50은 삼성이 시작했다. 그런데 KAI 경영진은 하성용 전 사장 등 대우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기에 은연중에 불화가 있었다. 지금도 KAI에서는 하 전 사장과 삼성 출신인 P 전 부사장 간 경쟁이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이 각종 투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의 문제가 거론된다. 2013년 KAI는 유로콥터와 함께 보통 10년은 걸린다는 헬기를 7년 만에 개발해냈다. 신무기 개발은 그 무기가 갖춰야 할 성능을 규정한 뒤 그에 맞게 설계를 하면서 시작된다. 설계도대로 ‘시제기’를 만들고, 다양한 조건에서 시제기를 시험해 당초 기대한 성능이 나오는지 점검한다.

    성능이 나쁘거나 문제가 발견되면 그 해결책을 찾아내 설계를 변경한다. 쓸데없는 부분이 있으면 없애기도 하는데, 이는 항공기 가격을 낮추는 구실을 한다. 설계도를 변경하면 시제기도 도면대로 뜯어고친 뒤 다시 비행해보고 문제가 해결됐는지 살핀다. 이런 이유로 시제기는 ‘누더기’가 된다. 이러한 변경을 끝내고 실전용으로 처음 생산하는 것을 ‘초도 양산기’라고 한다.

    초도 양산기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T-50은 미세먼지 정도만 있는 한국에서 쓰려고 개발됐다. 그런데 중동에 수출하려 하니 모래 바람이 심했다. 모래가 들어가면 엔진 고장이 날 수 있으니, 모래 바람을 막는 장치를 추가해야 한다.

    그래서 선진국은 초도 양산기를 시제기처럼 4~5대만 제작한다. 실전 사용에서 발견된 문제가 있으면 다음 양산기를 위해 설계를 변경한다. 양산기도 소량 생산해 사용 중 문제가 있으면 또 설계 변경을 해 2차 양산에 반영한다. 이런 식으로 선진국은 신무기를 전력화하는 데 15년 이상 세월을 보낸다.

    우리는 달랐다. 미국처럼 소량 생산을 해 계속 고쳐나가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대량 생산을 한다. 개발 기간이 짧았던 만큼 수리온은 시험비행에서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퇴역하는 UH-1 헬기가 많았기에 초도 양산을 20대나 했다.  



    수리온 양산이 가져온 문제점

    헬기는 전선(電線)이 많은 도시에도 내려야 하는데, 그때 전선이 동체와 날개 사이로 들어오면 뒤집혀 추락할 수 있다. 따라서 동체 앞에 전선을 잘라주는 뿔처럼 생긴 ‘와이어 커터’를 설치한다(52쪽 사진 참조). 수리온은 동체 위에 엔진을 넣고, 그 위에 블레이드(헬기 날개)를 붙인 구조다. 따라서 동체와 블레이드 사이가 매우 넓어 상대적으로 긴 와이어 커터를 설치했다.

    블레이드를 돌리면 헬기는 위로 떠올라 제자리 비행을 한다. 여기서 앞으로 갈 때는 블레이드를 앞으로 ‘확’ 숙인다. 그러면 동체는 블레이드와 함께 앞으로 숙여지기 때문에 블레이드가 와이어 커터를 칠 수 없다. 그런데 수리온은 바퀴를 달고 있어 땅에서 블레이드를 앞으로 숙여 돌리면 도로를 ‘활주(滑走)’할 수 있다. 많은 무게를 실었을 때는 제자리 이륙보다 활주 이륙이 낫다. 그런데 활주 이륙을 할 때는 동체가 많이 숙여지지 않는다. 빠르게 활주 이륙하겠다며 최대한 블레이드를 숙이면 와이어 커터를 칠 수 있다. 수리온으로 훈련하던 육군에서 이러한 사고가 일어났다. 언론은 이 사건을 ‘수리온의 날개가 동체를 쳤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자 “UH-60도 활주 이륙 시에는 블레이드를 최대한 숙이지 않는다”는 해명이 나왔다. 설계 잘못이 아니라 활주 이륙에 대한 이해 부족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공격헬기인 아파치는 격납고에 주기(駐機)하지만 UH-60이나 수리온은 신속한 출격을 위해 노상주기(야전 주기)한다. 기동헬기는 노상주차한 자동차처럼 눈비를 맞는다. 그런데 헬기 문은 자동차 문처럼 밀봉되지 않는다. 그래서 빗물이 들어올 수 있다. 헬기 문을 자동차 문처럼 만들면 헬기가 무거워지는 등 다른 문제가 생긴다. 폭우가 내리면 수리온에 빗물이 들어오지만 “UH-60도 그렇다”는 설명으로 넘어갔다.

    또 ‘윈드 쉴드’라는 조종석 앞 유리 파손 사건도 일어났다. 수리온에는 외제보다 더 강한 국산 윈드 쉴드를 개발해 설치했는데, 비행 중 뭔가를 맞자 잔금이 가면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됐다. 부조종사 쪽 윈드 쉴드가 멀쩡했기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지만 조종사들의 불만을 샀다. 그런데 윈드 쉴드는 KAI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국방부, 방위사업청(방사청), 국방기술품질원,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 등 7개 기관이 좋다고 해서 설치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이 때문에 추후 생산품에는 외제를 넣기로 했다.

    그리고 문제가 된 것이 체계결빙이다. 습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헬기를 띄우면 엔진 열 때문에 눈이 녹았다 금방 얼음으로 변하다. 이러한 얼음이 계속 빨려 들어가면 엔진은 새가 빨려 들어온 것처럼 고장 날 수 있다. 그래서 얼음을 녹이는 디아이싱(de-icing) 장비를 갖춘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날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KAI는 수리온을 미국 오대호 등으로 가져가 체계결빙 대응 능력을 검증했어야 하는데, 윈드 쉴드 문제 등을 먼저 해결하느라 늦어졌다. 2015년 감사원은 수리온에 대한 감사를 벌여 초도 양산기를 인도한 것은 특혜라고 지적했다. 체계결빙 시험은 겨울이 와야 할 수 있기에 KAI는 현재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외국 회사의 기술을 이용해 신무기를 개발할 때는 기술료를 지불해야 한다. 정부는 유로콥터가 준 기술을 국과연으로 보내 A라는 합격점이 나와야만 KAI가 기술료를 주도록 했다. 합격점을 받고자 KAI는 국과연에 관리비를 줬다. 그런데 감사원은 무기 원가 규정에는 기술료 관리비라는 항목이 없다며 KAI가 원가 부풀리기를 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다른 것도 시비를 걸었다. T-50은 정부 돈으로 개발했지만, 수출은 KAI가 한다. 따라서 T-50을 수출하면 KAI는 기술 사용료를 정부에 지불해야 한다. T-50을 들고 세계로 나갔던 KAI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 폴란드 등에서 전부 실패했다. ‘장사꾼’ 출신인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그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박리다매를 해결책으로 보고 T-50 기술 사용료를 대폭 깎아주라고 했다. 그 덕에 T-50은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태국, 필리핀 등으로 ‘신나게’ 팔려나갔다. 감사원은 이 기술 사용료 인하를 정부에 손해를 끼친 행동, 즉 ‘국고 손실’로 규정했다.

    세 번째로는 KAI 내부 비리가 거론된다. 수리온을 설계할 때 KAI는 설계진이 부족해 용역회사를 참여케 했다. 그때 KAI 인사팀에 있던 손승범 씨가 처남 명의로 회사를 차리고 수리온 설계용역을 받아가게 했다. 그는 이 회사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요율을 주고 리베이트를 챙겼는데, 그 돈이 7년간 20억 원 이상이었다.



    KAI-박근혜 전 대통령 연결고리 찾을까

    이 때문에 차장이란 직급에 어울리지 않게 씀씀이가 커졌는데, 이를 수상하게 본 누군가가 감사원에 투서를 보냈다. 감사원은 손씨의 혐의를 포착해 통보했고 KAI는 그를 파면처분한 뒤 검찰에 고발했다. 그때 손씨가 잠적했는데 검찰이 수배한 지 만 2년이 된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 감사원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손씨 처남의 어머니가 하씨인 것에 주목해 하 전 사장이 손씨를 통해 용역회사를 만들어 비자금을 마련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으나 혐의점을 아직 찾지 못했다. 서울중앙지검은 KAI 경영진이 특정 협력 회사에 집중적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비자금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APT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KAI는 2015년 12월 T-50을 토대로 미국 수출용 시제기를 만들어 출고식을 가졌다. 그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미국 수출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대통령이 참석했으니 ‘하 전 사장은 박 대통령, 문고리 3인방과 가깝다’ ‘하 전 사장의 부인이 박 대통령의 일가’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하 전 사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이번 KAI 비리 의혹 사건에서 주목할 것은 이 의혹이 2년 전 제기돼 감사원 조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때 감사원은 개인 비리(손승범)를 제외하곤 비자금 조성 등 구조적인 비리는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감사원은 방사청 등에 국고 손실 책임을 물었지만, 방사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사청은 기술 사용료에 대해 감사원과 전혀 다른 판단을 했던 것이다.

    경남 사천에 위치한 KAI에 대한 수사는 원래 창원지방검찰청이 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이 압수수색을 하며 수사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는 첫 번째 국정 100대 과제로 적폐청산을 꼽고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사건에 대한 공소 유지를 선정했다. 이 일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이 KAI 수사를 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이란 의견이 많다. 이런 지적에서 벗어나려면 서울중앙지검은 하 전 사장과 박 전 대통령 간 커넥션을 찾아내야 한다. 그 경우 감사원과 서울중앙지검은 빛나지만 미국 APT 사업 경쟁에서 T-50이 승리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반대로 찾아내지 못한다면 APT 사업에 집중해야 할 KAI를 흔든 것이 된다.  KAI 수사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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