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인터뷰 | 드라마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

“결국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08-04 17: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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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믿고 보는 배우 조승우, 배두나의 출연으로 주목받았다. 일부는 ‘또 검사 얘기냐’라며 식상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예측할 수 없는 사건 전개와 매회 새롭게 떠오르는 살인 용의자(주인공마저 용의자),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 연이어 터지는 또 다른 사건, 몰입도를 높이는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력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가 종영할 즈음 ‘한국 드라마의 진화’ ‘장르물의 새 역사’ 등 칭찬이 쏟아졌다.



    역대급 신예 작가의 탄생

    케이블TV방송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은 무엇보다 이수연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점이 크게 회자됐다. 한국 드라마의 일반적인 전개 방식에서 탈피했고, 검찰 내부 속성을 면밀하게 들여다본 데다 재벌의 정경유착, 방산비리까지 다뤄 내공 있는 중견작가의 작품일 거란 추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또한 신예 작가의 작품에 연기파 배우가 대거 출연한 배경, 짜임새 있게 극을 설계한 비결 등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 작가는 개인 신상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고, 다만 이화여대 중문과 출신이라는 점만 알려왔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숲에 둘러싸인 이 작가의 비밀을 파헤쳐봤다.

    ▼드라마가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점이 화제다. 작품을 얼마 동안 구상했고, 집필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혼자 집필한 것인지 궁금하다.
    “처음 이 드라마를 구상한 것은 약 3년 전이며, 어느 정도 대본 작업을 해놓았다 방송 편성이 구체화되면서 뒷부분 작업을 다시 시작한 것이 지난해 가을입니다. 쓰는 데만 1년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집필은 혼자 했지만 제작사인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의 민현일 대표와 처음부터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비밀의 숲’은 기존 추리 드라마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티프가 된 작품이 있나.
    “검찰 스폰서 얘기로 방향을 정하고 나니 실제로 참고할 사건이 많았습니다. 지금 같은 형식을 취한 것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정해져 있는데, 이걸 한 회에 한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원래의 중심 이야기를 밑에서 계속 이어지게 하는 구성이 저에겐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하나의 사건으로 끝까지 가는 구성을 하고 나니 등장인물이 번갈아가며 의심을 받는 장치들이 필연적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다음 화를 기대하게 했다. 그런 장치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작업이 끝난 지 몇 개월이 지나 각 에피소드를 만들 때 어땠는지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요즘은 사실 어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 때가 많아서요. 다만 지금 돌아보면 다 좋았던 거 같습니다.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얘기를 만드는 일도 흥미로웠습니다.”

    검찰의 수사 방식, 조직문화, 주인공이 특임검사로 활약하게 되는 부분 등 검찰 쪽 정보가 많았다. 혹시 검찰 근무 경험이나 조언을 준 사람이 있나.  
    “검찰 근무 경험은 전무합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검찰 내부는 자료 조사 결과이긴 하지만, 이런 분야의 드라마를 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제가 하는 정도는 조사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부족한 수준입니다. 지금도 오류가 눈에 띄어 혼자 부끄러워하는 중입니다.”



    부족한 캐릭터에 생명 넣어준 배우들

    드라마는 대본도 중요하지만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인물을 얼마나 잘 살리는지도 흥행의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대들보가 튼튼했다. 비밀의 열쇠를 쥔 이창준 검사장 역을 맡은 유재명은 이 작품을 ‘인생작’으로 삼을 만하다. 아버지의 한을 풀려는 영은수 검사 역의 신혜선, 탐욕의 결정체인 재벌 오너 역의 이경영, 그의 딸이자 이창준 아내인 이연재 역의 윤세아 등 조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민정수석까지 올라가는 이창준 검사장은 생명력 있는 연기 덕에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이슈가 됐다. 이 작가는 이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주인공 ‘황시목 검사’의 캐릭터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감정이 배제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감정을 많이 제거한 주인공을 설정한 것은 주인공이 개인적 이유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남들하고 똑같이 느끼고 화내고 웃는 주인공이었다면 그에게 위기를 줘야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위기란 시목이 용의자로 몰리는 거겠죠.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 있기도 하고요. 용의자로 몰린 시목은 자기가 범인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자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이유로 애쓰는 주인공도 좋지만 묵묵히 할 일 하는 주인공도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황시목 검사를 왜 사건을 해결하려고 집요하리만큼 뛰어다니도록 설정했나.
    “그 질문에는 ‘직업이 검사고, 내 눈앞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내가 잘못해 억울한 사람이 생겼는데 그럼 안 뛰어다니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몰입도의 문제가 생기니까요.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지 않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응원하는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걸 메워준 게 조승우 씨의 연기력이었습니다. 누명을 벗으려고 발버둥치는 주인공이 아닌데도 그에게 매혹되고 끝까지 잘해내라고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된 건 조승우란 배우의 외모, 목소리, 움직임이 매력적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황 검사가 밥을 먹으려 할 때마다 일이 터져서 한 숟갈도 먹지 못하는 부분을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했는데, 일부러 설정한 건가.
    “네.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매우 일상적이지만 실은 정말 내키지 않을 수도 있고, 제일 좋은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시목처럼 늘 혼자이던 사람에게는요. 또한 작은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는 밥 먹고 수다 떨고 누워 자는 일상적인 그림이 많이 제거된 만큼 주인공의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갖기를 바랐습니다. 외로운 시목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아, 드디어 먹었다’ 하는 안도 같은 것이요.”

    조승우, 배두나 등 주요 출연진은 내공이 상당한 연기자들이다. 첫 작품인데 이런 배우들의 캐스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조연에서 단역까지 ‘이 드라마에는 연기 구멍이 없다’는 평이 많았는데, 가장 듣기 좋았고 정말 큰 행운으로 여깁니다. 역할과 배우를 연결시키는 감독님의 눈과 캐스팅디렉터의 위력을 새삼 느꼈습니다. 캐스팅디렉터는 좋은 배우를 찾아 연극, 뮤지컬 무대를 늘 찾아다닙니다. 저는 쓸데없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무대 연기를 잘 못 보는 편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앞에서 대사하고 울고 웃으면 생뚱맞게도 제가 창피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배우로부터 영감을 얻으려면 연극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을 캐스팅디렉터를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살인사건 피의자인 윤 과장 역의 이규형은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고, 이번 드라마를 통해 진가를 드러냈다. 어떻게 발탁했나.
    “이규형 씨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주목한 점은 목소리였습니다. 외모도 훌륭하지만, 저는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목소리이고, 둘째는 딱 등장했을 때 대중의 시선을 쫙 모을 수 있는 포스라고 생각합니다. 이규형 씨에게서 이 두 가지가 다 느껴졌습니다. 결과적으론 이규형 씨가 우리 드라마를 선택한 게 우리에겐 신의 한 수가 됐다고 믿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진 인물은 누구이고, 왜 그런지.  
    “누구 하나라고 꼭 집어 말씀드리기 정말 어렵습니다. 황시목은 어떤 분들에겐 똑똑하고 귀여운 주인공이겠지만 저에겐 외롭고 애처로운 존재였어요. 한여진은 제 이상형이고, 이연재는 무척 예뻐서 계속 쳐다보게 되는데 연기까지 완벽했습니다. 뻔한 대답이라 죄송한데, 형사들도 다 좋았고 극중에선 안 좋은 역할로 나왔지만 박무성(검사 스폰서)도 좋았습니다.”



    최종 범인은 시대가 만들어낸 괴물

    첫 회 살인사건의 피의자와 공범은 마지막 2회분에서 밝혀진다. 특히 공범이자 모든 사건을 기획한 범인이 서부지검 검사장 출신이자 민정수석인 이창준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특히 그가 자살하기 직전 남긴 편지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을 저릿하게 했다. 살인자이면서 이 시대를 걱정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동시에 드러낸 그를 주인공 황시목 검사는 ‘괴물’이라고 칭했다.

    최종화에서 이창준 검사장이 거대한 비밀의 숲 설계자로 밝혀져 많은 이가 놀랐다.  
    “시청자들이 최종 범인이 밝혀졌을 때 ‘왜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나’ 공감할 수 있었길 바랍니다. 또한 범인의 행위를 황시목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도요. 다만 제가 이 드라마의 마지막을 쓰던 시기와 현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비밀의 숲’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나.
    “우리가 손으로 남을 가리킬 때 손가락 하나는 상대를 향해 뻗어 있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나를 향해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일은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최종화에서 이창준과 황시목이 나누는 대화에도 기획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고, 또 제작하면서 특별히 고마웠던 분이 있나.
    “협업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작업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관계자분들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첫 작품이 이 정도인데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 애청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아직은 구상 단계입니다. 제가 이미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좋게 써준 기사들이 나왔는데, 습작 시절에 쓴 것들입니다. 새로 개발하고 다듬고 메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업 결과물이 실체로 남는 그림이나 책과 달리, 영상 분야는 시간이 지나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번이 첫 방송 경험이지만 그래도 그런 허전함이 조금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이 좋아하고 아껴주셨기 때문입니다. 2017년 여름을 함께 보내주셔서, 제가 사랑한 인물들을 같이 아끼고 식구처럼 안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드라마 ‘비밀의 숲’ 다시 보기 | ‘모두가 사건 용의자다’서부지검 형사부 황시목 검사는 동료 검사들의 스폰서였던 박무성으로부터 검사 비리를 제보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그는 칼에 찔려 숨져 있었고, 용의자로 택배기사를 잡지만 무죄를 주장하며 구치소에서 자살한다. 담당 경찰 한여진 경위는 택배기사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발견하고, 오히려 살인사건 현장에 있던 황시목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황시목은 직접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두 달 안에 진범을 잡겠다고 발표하고 재수사에 들어간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각자의 이유로 서부지검 내부 검사들과 이창준 검사장까지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 과정에서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접대여성이 끔찍한 모습으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되고, 검찰 비리 의혹이 커지자 특별수사팀이 꾸려진다. 특임검사로 지목된 황시목은 재벌가 한조그룹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룹 회장의 사위인 이창준 검사장과 아내인 이연재까지 용의선상에 두고 수사를 진행한다. 결국 황시목은 박무성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고 그 배후에 이창준 검사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만, 이 검사장은 끝내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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