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2015.06.08

비틀스가 녹음한 스튜디오에 당신이 설 수 있다면

‘컨버스 러버 트랙스’ 프로그램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6-08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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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스가 녹음한 스튜디오에 당신이 설 수 있다면
    대중음악 역사는 곧 레코딩의 역사다. 악보로 기록되던 명곡들은 레코딩을 통해 소리가 돼 우리에게 기억된다. 그 소리들이 녹음된 곳, 바로 스튜디오다. 명반이 탄생할 때마다 명문 스튜디오 역시 탄생하곤 했다.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실험이 행해지고, 공간과 사람이 만나 음반이라는 그릇에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대중음악사의 별들 곁에는 그들의 재능과 시간을 기록한 스튜디오들이 있다. 비틀스를 이야기할 때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빼놓기란 불가능하다. 자메이카의 터프 공 스튜디오가 없었다면 밥 말리와 레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음색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혁명과 업적의 나날들을 견인했던 스튜디오들이 하나의 성지가 된 이유다.

    이 음악 성지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길 기회가 생겼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컨버스에서 전 세계 뮤지션을 대상으로 ‘컨버스 러버 트랙스(Converse Rubber Tracks)’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내용이 매력적이다. 선정된 뮤지션은 영국 애비로드,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셋 사운드, 독일 베를린 한자 톤 스튜디오, 자메이카 터프 공 스튜디오, 아이슬란드 그린하우스 스튜디오, 브라질 토카 도 반디도 등 4대륙 8개국에 흩어져 있는 12개 스튜디오에서

    1곡에서 3곡까지 자신의 음악을 녹음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항공권을 포함한 경비도 대부분 지원되며, 현지 스튜디오 엔지니어가 레코딩을 돕는다. 주어지는 시간도 넉넉할뿐더러 결과물은 모두 아티스트에게 귀속된다.

    2011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4년간 900명 이상의 인디 뮤지션이 명문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신청 방법도 간단하다. 컨버스 뮤직 인터넷 홈페이지(사진)를 통해 자신의 프로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정보를 기입한 후 원하는 스튜디오와 선정돼야 하는 이유 등을 담은 짧은 영상을 링크하면 된다. 7월 초 결과가 나오면 9월에 희망하는 스튜디오로 이동, 하루 8시간씩 최대 이틀 동안 레코딩에 들어간다.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매력은 그동안 평가절하됐던 한국 인디 뮤지션들이 제 평가를 받을 기회라는 점이다. 필자는 그간 세계 음악계의 거물들을 적잖게 만났지만 그들 중 한국 아이돌, 즉 케이팝(K-pop)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대신 그들은 한국의 인디 뮤지션들에게 관심을 보이곤 했다. 마돈나를 발굴한 제작자 시모어 스타인은 캐나다에서 노브레인의 공연을 본 후 지속적으로 연락, 계약을 추진했다. 세계 최대 페스티벌인 글래스턴베리의 프로그래머는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한 후 잠비나이, 최고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을 지난해 글래스턴베리에 세웠다.

    그럴 만하다. 최근 한국 인디음악계는 실력뿐 아니라 정체성에서도 해외 동시대 뮤지션에 견줘 부족함이 없다. 20년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다. 한국 청년문화의 시간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세대 단절 없이 역량을 축적해온 음악은 없었다.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 음악은 라이프스타일의 강력한 요소 중 하나다. 특정 장르의 음악이 유행하면 스타급 뮤지션은 특정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게 곧 패션으로도 유행이 된다. 컨버스 또한 체크무늬 티셔츠와 함께 19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교복 같은 존재가 됐다. 그렇게 음악과 결합한 컨버스는 꾸준히 각국 뮤지션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컨버스 러버 트랙스 또한 그 일환이다.

    다른 브랜드도 워크숍 등을 개최해 뮤지션을 후원하지만, 대중음악산업의 본질에 속하는 레코딩과 직접 악수하는 프로그램은 컨버스 러버 트랙스가 처음이다. 음악에 국경이 사라진 시대, 자신의 재능과 영감을 음악사의 성지에서 완성하려는 야심을 가진 뮤지션들에게 왕도가 열렸다.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결과는 값질 것이다. 서울 홍대 앞을 벗어나 세계로 순례하려는 팀이 많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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