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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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무너지는 박근혜 정부

안전핀 없는 정권의 숙명…‘자력으로 집권했다’는 인식이 불행의 싹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4-27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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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서 무너지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이 1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수첩을 꺼내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필요한 사항을 수첩에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 ‘수첩공주’로 불렸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가슴 한 곳이 먹먹해질 나이가 되면 하나, 둘, 셋, 넷, 다섯과 육칠팔구십의 차이를 이해하게 된다. 20대 후반이 속절없이 훌쩍 지나가버린 사실을 깨닫고 아쉬워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어디 서른 즈음뿐일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마흔, 쉰, 예순 즈음 등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질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하기 십상이다.

    10년 단위로 전후반 5년의 체감도가 다른 것처럼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임기 3년 차를 기점으로 느낌이 확 달라진다. 임기 전반기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인식이 있어 짐짓 여유를 찾을 수 있지만 임기 3년 차가 되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초조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국정수행 못 한다’ 역대 최고

    역대 대통령들은 너나없이 임기 3년 차를 치적을 쌓을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여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에 북방정책에 힘을 쏟았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밖으로는 세계화, 안으로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12·12사태 주역에 대한 단죄를 통해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서 흐트러진 민심 잡기에 나섰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에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으로 미래 한국 정치의 새판 짜기를 시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적 논란에도 4대강 사업을 임기 3년 차에 특유의 불도저 정신으로 밀어붙였다. 올해 임기 3년 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을 돌며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을 열고 창조경제 불씨 살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임기 3년 차가 되면 현재권력과 차기를 노리는 미래권력 간 긴장이 조성되고, 정권 창출에 앞장섰던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 민심까지 정권을 외면하면 국정운영의 추동력이 급격히 떨어져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레임덕에 빠지고 만다.



    리서치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조사한 대통령 직무 수행평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임기 3년 차 1분기 지지율은 긍정 여론 34%, 부정 여론 56%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 현재까지 역대 대통령 임기 3년 차 1분기 기준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 여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에서 부정적 응답이 40%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3분기 이후부터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이 앞장서 국가 개조를 소리 높여 얘기했지만 안대희, 문창극 등 두 차례 총리 인선에 실패하면서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끌어내지 못해 결국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실망한 국민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이라고 답한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인사 실패’와 ‘소통 부족’ ‘경제정책 실패’를 꼽았다(한국갤럽. 4월 3주 차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 이유).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높아진 원인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국정운영 최고책임자이자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초 직무 수행 지지율이 모두 50%를 넘겼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유일하게 40% 초반을 기록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첫해 첫 분기에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되풀이된 ‘밀봉 인사’ ‘수첩 인사’로 대표되는 대통령의 ‘깜깜이 인사’ 때문이다.

    권한은 나눠야 배가된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볼 때 박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총선을 진두지휘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여세를 몰아 자력으로 대통령에 오름으로써 가장 견고한 지지기반을 갖췄다. YS가 3당 합당 이후 민자, 민주, 공화 등 3개 정파의 연합체 후보로 대통령에 오르고, DJ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집권에 성공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호남이 지지한 영남 후보’를 내세워 당선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내 지분이 많은 친박(친박근혜)의 협조를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박 대통령은 사실상 자력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과 진배없다. 그러나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자력 집권’의 장점은 ‘수첩 인사’ ‘불통 인사’를 거치며 ‘내 맘대로 하겠다’는 부정적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줬다.

    야권 한 중진의원은 “역대 정부는 권력 창출에 기여한 세력이 대통령을 견제함으로써 독주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안전핀 구실을 했다”며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에게 ‘아니되옵니다’라고 진언할 사람이 내부에 없어 불통 논란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정권 출범 초부터 인사 때마다 되풀이된 ‘수첩 인사’ 논란은 시스템이 마비된 1인 통치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드러냈고, 그 결과는 정윤회 비선 문건 파문으로 이어졌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정윤회 문건 파동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 이후 총리 교체 실패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국민은 물론,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인사 실패가 되풀이되면서 정권 내부부터 무너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반 국민이 알 수 없는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을 조사, 보고한 곳도 청와대였고, 그 문건을 유출한 곳도 청와대였다. 자력으로 집권했다는 착각이 오만으로 변질돼 정권 내부에서 권력암투를 벌이다 그 속살을 국민에게 들킨 꼴이다. 국정운영에 큰 충격을 가져온 ‘성완종 리스트’도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 측면이 크다. 총리의 대국민담화로 시작된 사정국면이 부메랑이 돼 총리의 조기 사퇴를 불러왔다는 점에서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2018년 2월 24일까지. 여전히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지내야 할 시간이 더 많다. 대통령의 불행은 박근혜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부 수반이자 국정 최고책임자라는 점에서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로 돌아온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꿔 정치권에서는 책임은 나누면 반이 되고 권한은 나누면 배가된다고 한다. 함께 책임지려면 먼저 권한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직사회에서는 “전결권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대통령이 만기친람 리더십을 보이고, 청와대가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사이 장차관은 물론 국장, 과장이 전결할 사안까지 청와대에 보고한 뒤 지침을 받으려는 풍조가 생겨났다는 것. 이 때문에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원활한 국정운영의 시작은 권한과 책임의 과감한 위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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