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3

2015.04.13

후계자 김정은이 인도에 간 까닭은

2007년 10월 하이데라바드 세계군인체육대회 등장

  • 김승재 YTN 기자 · 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5-04-13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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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계자 김정은이 인도에 간 까닭은

    2007년 인도 하이데라바드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왼쪽). 당시 한국 축구계 인사 A씨가 건네받은 주인도 북한대사관 김모 이등서기관의 명함.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2007년 10월 인도에 다녀온 사실이 확인됐다.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은은 2006년 12월 김일성군사종합대를 졸업하면서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2007년 스물네 살 김정은이 인도에 간 것은 후계자 신분으로 지도자 수업 차원으로 분석된다. 기자는 ‘인도에 등장한 김정은 그 후의 북한 풍경’이란 책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세계군인체육대회는 4년마다 열려 ‘군인올림픽’으로 불린다. 제4회 대회는 인도 중남부 도시 하이데라바드에서 2007년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열렸다. 이 대회에는 남북한을 포함해 101개국에서 4700여 명이 참가해 15개 종목의 경기를 펼쳤다. 한국 축구계 인사 A씨는 개막 첫날 하이데라바드에 도착해 개막식이 열리는 가치볼리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A씨는 경기장 입구에서 북한에서 온 중년과 젊은 남성 2명을 만나 북측 좌석에 앉아 4시간 이상 대화를 나눴다. 중년 남성이 시종일관 다소곳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기에 A씨는 주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

    세 차례 만남, 두 차례 사진촬영

    개막식 행사가 끝날 무렵 A씨는 이들과 헤어지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중년 남성은 인도 수도 뉴델리에 있는 주인도 북한대사관의 김모 이등서기관이었다. 중년 남성과 달리 젊은이는 명함을 받기만 할 뿐 주지는 않았다. A씨가 이름을 묻자 “김정은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 사촌처제 이름과 똑같네요. 남쪽에서 정은이라는 이름은 주로 여자들이 씁니다”라고 A씨가 말하자 김정은은 웃기만 했다. 당시만 해도 김정은의 존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A씨는 그가 북한에서 힘깨나 쓰는 집안 자제이겠거니 생각했다고 한다.

    A씨는 이날 김정은과의 대화에서 북한 축구 발전을 위해 두 가지 제안을 했다. 첫째는 유럽 등 축구 선진국으로의 조기 유학이고, 둘째는 외국의 유능한 지도자를 불러들여 국내에서 교육할 수 있는 국제축구학교 건립이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일까. 2013년 북한은 평양에 국제축구학교를 건립했고, 축구 꿈나무들을 유럽으로 유학 보냈다. 그리고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여자 축구 우승, 남자 축구 준우승을 차지했다.



    A씨와 김정은의 두 번째 만남은 10월 21일 대회 폐막식 날 이뤄졌다. 폐막식 참석을 위해 가치볼리 주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다시 만난 것. 김정은은 매우 반갑게 그를 맞았고 이들은 경기장 입구에서 또다시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폐막식 행사를 지켜보려고 A씨가 남한 쪽에 배정된 자리에 앉자마자 북측 선수단의 간부급 인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A씨 손을 잡고 통로로 끌고 가 긴한 부탁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개막식 때는 남측 선수단이 북측보다 먼저 입장했으니 폐막식 때는 북측이 먼저 입장하면 안 되겠느냐는 것. A씨는 우리 선수단에 이를 전달했고, 우리 측은 흔쾌히 수용했다. 결국 폐막식 당일 남북한 선수단의 입장 순서가 뒤바뀌어 북측이 먼저 입장했다.

    일정을 마친 A씨는 귀국길에 선물을 사려고 하이데라바드에서 가장 크다는 백화점을 찾았다. 이 백화점 1층 입구에서 A씨는 김정은을 또다시 만난다. 김정은은 멀리서 A씨를 알아보고 손짓해 불렀다. A씨가 다가가자 김정은은 수중에 100달러짜리밖에 없다며 혹시 바꿀 소액환이 있는지 물었다. A씨가 없다고 답하자 김정은은 돌연 생각난 듯 “할 이야기가 있다”며 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려 했다. 주변에 한국인이 많아 북한 사람과의 대화가 부담스러웠던 A씨는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는 김정은과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지도자 수업 차원의 인도행

    후계자 김정은이 인도에 간 까닭은

    김정은의 인도 방문 사실을 공개한 신간 ‘인도에 등장한 김정은 그 후의 북한 풍경’.

    A씨가 만난 인물은 현재의 김정은 제1비서가 맞을까. 기자는 분명히 그렇다고 본다. A씨는 세 차례 만난 김정은의 가장 큰 특징으로 특유의 걸음걸이를 꼽았다. 배를 내민 채 양손을 털레털레 흔들며 걷는 걸음걸이가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는 것이다. 거침없이 자신 있게 말하는 이 젊은이를 중년 남성이 옆에서 다소곳하게 수행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게다가 이 남성은 뉴델리에 있는 주인도 북한대사관 이등서기관이었다. 후계자 김정은을 수행하려고 뉴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스스로 이름을 밝혔다는 사실도 그가 김정은 제1비서임을 입증한다. 당시만 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던 김정은은 자신에게 북한 축구 발전에 대해 열정을 갖고 말하는 A씨가 마음에 들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것이다. A씨는 사촌처제 이름이 김정은이 아니었다면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름을 잘못 기억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김정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사진을 건네줬다.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어서 지면으로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성형외과 전문의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는 사진 속 인물이 스위스 베른공립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 김정은의 얼굴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사진 속 인물의 손이 김정은 손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사진 속 젊은이는 ‘전혀 연출되지 않은’ 혹은 ‘가공되지 않은’ 청년 김정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2007년 가을 김정은의 인도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그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내부 문건과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은은 2006년 12월 김일성군사종합대를 졸업하면서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내정 직후 첫 해외 행보였던 셈이다. 먼저 지도자 수업 차원에서 국제사회 견문을 쌓고자 해외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더욱이 군인체육대회는 북한이 매우 중시하는 체육행사 가운데 하나.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도모하고 군에 대한 후계자의 지휘권을 준비하는 효과도 노렸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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