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9

2014.12.29

‘황제 경영’ 벗고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을

한국 주주 권리, 이사회 등 유명무실…아시아 최하위권

  • 정영훈·김동욱 한국생산성본부 지속가능경영센터 연구원 yhchoung@kpc.or.kr

    입력2014-12-29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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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푸스(Olympus)의 분식회계 사건을 비롯해 2000년 이후 발생한 여러 회계부정 사건은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C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키웠다. 기업 지배구조는 기업 경영과 통제에 관한 시스템으로, 기업의 경제활동 단위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원활히 조정하고, 경영 자원을 적재적소에 조달하며, 수익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기업 지배구조가 건전하게 확립하지 못할 경우 여러 회계부정 사건에서 볼 수 있듯 해당 기업뿐 아니라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세계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4년‘OECD 기업 지배구조원칙’ 개정안을 발표했다(표1 참조). 1999년 제정한 이 원칙을 수정 및 보완해 발표한 개정안이며, 2014년 추가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는 OECD 회원국의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 확산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글로벌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실천 및 기업 지배구조 체계 확립을 위한 기준이 되고 있다. ‘OECD 기업 지배구조 원칙’은 크게 다음과 같은 5개 분야로 이뤄져 있다.

    먼저, 기업 지배구조는 주주의 권리 행사를 보호 및 용이하게 할 의무가 있다. 주주는 기업의 경영적 의사결정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소유한 지분에 비례하는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소액 주주 및 외국인 주주 등 모든 주주의 동등한 대우를 보장해야 하고, 법령 혹은 상호협약에 따른 이해관계자의 권리가 존중돼야 하며, 경영에 효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 지배구조는 기업 경영과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공시 등을 통해 투명하게 일반에 공개토록 해야 하며,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해 경영진을 감시하는 구실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위한 이사회 역할 강화

    ‘황제 경영’ 벗고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을
    우리나라도 1999년 기업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정하고 2003년 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권고안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등기임원의 보수를 개별적으로 공개하게 하거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2년마다 각국 기업 지배구조를 평가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보다 뒤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표2 참조). 아직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가 국제 위상이나 경제 규모에 비해 선진화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기업 지배구조의 수준이 낮다는 것은 주주 권리가 침해당하기 쉽고, 기업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며 이사회가 본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기업은 투자자 및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렵게 된다.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 평가 결과를 보면 CG 문화 점수가 특히 아시아 국가 평균보다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래프 참조).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의 2014년 발표 자료에도 언급돼 있듯, 한국 기업들이 기업 지배구조의 중요성을 아직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재벌기업 처지에서 지배구조는 외부에 당당하게 공개하기 어려운 주제고, 최고경영자나 이사회 구성원의 권위는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을 저해한다. 또한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를 위한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인 이사회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명확히 인지돼 있지 않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아시아 다른 국가 기업에 비해 매우 낮았으며 이사회 구성원을 만나기도 가장 어려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관점에서도 기업 지배구조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평가 지표인 DJSI(Dow Jones Sustainable Index·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국제표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에서도 기업 지배구조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하며, 특히 CG 문화 조성에 중요한 이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고 있다. 2013년 발표된 GRI의 ‘G4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가이드라인(Sustainability Reporting Guidelines)’을 보면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보고 항목 개수가 기존 10개에서 22개로 크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영진은 단기 실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외부의 간섭 없이 경영권을 행사하길 원한다. 하지만 주주 권한을 대리하는 이사회는 단기 실적에 치우치는 경영진의 활동을 감시하고, 외부에 기업과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알릴 것을 요구한다. 또한 외부적 관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경영 활동에 반영하게 하며 장기적으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성장해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사회의 사회책임경영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이사회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에 대한 비전 및 목표를 수립하고 실행 전략을 승인해야 한다. 또한 관련 예산을 검토하고 사용 명세를 감시하며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법률, 경영 트렌드, 신기술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 밖에도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CSR 보고서를 승인하는 등 기업의 체계적인 CSR 수행을 위해 감독, 자문,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때 이사회 내 별도의 CSR 소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하는 것은 가장 적극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역 세계 8위 위상과 전혀 딴판

    아시아 최하위권이라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는 무역 규모 세계 8위(2014년 기준)의 경제 규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데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을 추구해온 과거의 영향과 함께 주주 권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이사회의 책임과 역할 등 아직 미성숙하고 미정착한 제도와 사회적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의 성장과 지배구조의 확립은 보완적 관계이지 서로에게 제약을 주는 관계가 아니다. 주주가 가진 지분에 비례하는 경영 참여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존중, 투명한 기업정보 공개, 이사회 역할 강화는 기업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인 것이다. 기업들은 강제 규제와 감시에 앞서 기업 스스로 올바른 기업 지배구조의 의미와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은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의 확립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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