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8

2014.12.22

비무장지대, 예술로 무장

‘DMZ 피스 프로젝트’ 통해 분단 현실과 미래 생각

  • 임혜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기획위원회’ 대표 hjlim625@gmail.com

    입력2014-12-22 13: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비무장지대, 예술로 무장

    연주자 이옥경이 8월과 9월 강원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폐정미소에서 선보인 즉흥 연주 ‘부서진 하늘’.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DMZ)의 한겨울은 매섭기 그지없다. 모든 것이 얼어가는 그곳에서 우리는 남북의 차가운 분단 상황을 체감하게 된다. 간간이 보이는 군인 행렬, 철책선과 검문 초소, 생소한 안내 문구 표지판 등이 서울에서 두세 시간 남짓 떨어진 DMZ 접경지역에서 마주치는 풍경이다.

    12월 18일 서울에서 눈 덮인 강원 철원 수도국으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했다. 강원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있는 수도국은 1936년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강원도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다.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됐다. 현재 수도국터에는 저수탱크, 관리소 건물 잔해 등이 남아 있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문에 따르면 ‘광복과 더불어 인공 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약 300명의 친일·반공인사들이 이 수도국에서 총살 또는 생매장 당했다.’ 광복 이후 북의 관할지역이었다 6·25전쟁 후 남의 영토가 된 철원 역사의 아픈 단면이다.

    ‘참된’ 비무장의 의미 고찰

    작가 임민욱은 이 표지판을 보고 ‘300명’이라는 숫자로만 남은, 석연치 않은 죽음들의 정황이 궁금해졌고, 이후 숫자가 지시하는 사라진 사람들의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학자, 사운드 아티스트 등과의 협업으로 이어져 참여자들이 함께 철원 수도국을 방문하는 하루 동안의 퍼포먼스 작업으로 실행됐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일종의 라디오 프로그램 상황이 연출된다. 대화,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방송을 들으며 도착한 철원 수도국에서 300명의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를 찾는 것도 프로젝트의 내용이다.

    2015년에도 이어질 진행형 프로젝트, 임민욱의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와 ‘DMZ 피스 프로젝트’가 연계한 사운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일군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는 2012년 DMZ와 그 접경지역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동시대 미술 프로젝트로서 막을 올렸다. 이 프로젝트는 비무장지대가 실은 극심한 무장의 공간인 역설적 상황,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역사가 내비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참된’ 비무장의 의미를 고찰하자는 뜻에서 기획됐다. 그해 7월 27일 미술작품 전시 행사가 열렸고, 이후 매년 철원군 DMZ 접경지역과 서울 아트선재센터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매년 새로운 주제어를 가지고 프로덕션 및 전시와 포럼, 지역 리서치 등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 조사와 연구를 지속해왔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가 시각예술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올해 시작한 ‘DMZ 피스 프로젝트’는 퍼포먼스와 콘서트 등을 중심으로 한 사운드 프로젝트와 ‘DMZ 리서치’ ‘콘퍼런스’ 등의 학술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이 프로젝트들을 통해 DMZ를 좀 더 다층적으로 볼 수 있는, 실험적이고 다양한 접근과 시도가 가능했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연구와 작업들을 토대로 ‘DMZ 피스 프로젝트’는 DMZ의 의미를 동시대적인 맥락에서 재조명하고 분단 현실을 더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예술계 공론장을 위한 또 하나의 발판이 된 것이다.

    우리의 사고와 긴밀히 연결

    비무장지대, 예술로 무장

    크라잉넛,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이 참여해 8월 15일 강원 철원군 철의삼각전적지 광장에서 열린 ‘샤우트 피스 콘서트’의 한 장면(위). 12월 18일 철원군 수도국터 일대에서 열린 작가 임민욱의 퍼포먼스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

    올해 사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 콘서트와 퍼포먼스 작업은 소리, 음악 같은 비가시적인 예술작업을 통해 고착화된 DMZ에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하고자 했다. 국내 인디밴드들의 평화 외침(샤우트 피스 콘서트), 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들의 협연(플레이 피스 콘서트)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실험적인 예술가들의 즉흥 연주와 전자합성음 연주, 소리와 극이 어우러진 투어 퍼포먼스 등을 통해 DMZ 장소의 의미는 물론 비가시적 경계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했다.

    연주자 이옥경은 철원 DMZ 접경지역에 위치한 평온한 마을, 양지리 내 폐정미소에서 불협화음의 첼로 즉흥 연주를 선보였다. 독일 사운드 아티스트 플로리안 헤커의 전자합성음 연주 작업은 DMZ가 바라보이는 철원평화전망대에서 열렸다. 전술한 임민욱의 작업이 버스 투어를 기반으로 했다면 11월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한받과 뜬구름, 권병준과 이악 등이 선보인 ‘경원선 행진곡’은 열차를 타고 떠나 극과 소리를 경험하는 참여형 퍼포먼스였다.

    학술 프로젝트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산발적으로 진행된 DMZ 주제의 문화예술 작업의 기반 위에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예술가, 연구자, 비평가,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지난 시간 동안 진행해온 결과물들을 토대로 현재적 의미의 DMZ와 이곳이 우리 삶에 어떻게 녹아 들어와 우리 삶을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 예술로 무장

    11월 17일 예술집단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한받과 뜬구름, 권병준과 이악 등이 기차와 DMZ 접경지역 일대에서 펼친 퍼포먼스 ‘경원선 행진곡’.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DMZ에 대한 관심은 차치하더라도 다시금 DMZ, 달리 말해 한국의 분단 현실을 생각하면 이 문제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사고방식, 삶의 방식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많은 연구자, 예술가가 현재진행형의 DMZ에 관한 연구와 예술적 실천을 심화해가고, 논의의 층위를 넓혀가는 활동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많은 기획자, 예술가, 연구자는 자신들의 영역에서 그리고 그 영역 주변을 넘어서면서 DMZ를 예술적 대상 공간으로 바라보고 표현했다. 앞으로도 DMZ 프로젝트는 이들과 함께 기존의 성과와 방법론을 확장하고, 다양한 방식과 열린 태도로 지속 가능성을 살필 것이다.

    *임혜진은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서미갤러리와 쌈지스페이스를 거쳐 현재 사무소(Samuso) 전시팀에 근무하고 있다. 2012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 기획팀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DMZ 피스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기획과 실행 전반을 담당했다. 그 외 ‘식물사회’(갤러리팩토리/ 2014), ‘더 완벽한 날 : 무담 룩셈부르크 컬렉션’(아트선재센터/ 2013), ‘City Within the City’(아트선재센터/ 2011)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