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5

2014.12.01

신비주의 벗고 쇼맨십을 입는다

존 갈리아노 영입 브랜드 철학에 변화 예고

  • 이수지 명품칼럼니스트 sognatoriszq@naver.com

    입력2014-12-01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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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패션디자인과 교수는 필자에게 “패션디자이너는 국회의원이자 연예인”이라고 했다. ‘패션 월드’에서 디자이너의 스타성은 브랜드를 홍보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존 갈리아노, 마크 제이콥스 등만 봐도 디자이너의 스타일과 쇼맨십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공헌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과는 정반대의 철학을 가진 디자이너도 있다. 바로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다.

    마르지엘라는 195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79년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등과 함께 ‘앤트워프 식스’로 분류되곤 하는데, 80년대 패션계에 출현한 이들은 독창적인 흐름을 불러일으켰다.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tier)에서 3년간 수학한 마르지엘라는 88년 첫 컬렉션 무대를 선보였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기업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를 설립했다. 해체주의에 입각해 기존 패션과는 차별화된 컬렉션을 선보인 그의 의상은 많은 젊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줬고, 친환경 패션 및 빈티지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익명성과 저항의 상징

    혁신적인 컬렉션 스타일과 달리 그는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인터뷰를 회피했을 뿐 아니라 자기 사진이나 초상화 또한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관객이 디자이너 개인보다 옷에 관심을 두기 원했으며, 쇼에 세운 모델의 얼굴을 가리거나 옷에 빈 라벨을 붙이는 방식 등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도리어 마케팅 수단이 됐고,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마니아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마르지엘라가 추구하는 익명성과 패션 세계의 현실에 대한 저항이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이자 개성이 된 것이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이러한 철학을 고수하며 2002년 디젤(Diesel)과 마르니(Marni)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패션회사 OTB(Only the Brave)그룹에 속하게 됐고, 2009년 마르지엘라가 은퇴한 후에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하지 않은 채 컬렉션을 이어오며 신비주의를 고수해왔다.



    그런데 OTB그룹 회장 렌초 로소(Renzo Rosso)는 10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존 갈리아노를 임명했다. 수수께끼처럼 디자이너를 감춰오며 신비주의를 고수한 브랜드에 정반대 성향을 지닌 ‘쇼맨십의 황태자’를 영입한 것. 과연 이러한 시도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브랜드 철학에 변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존 갈리아노가 새로운 철학을 갖고 디자인에 임하게 될지 내년 1월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많은 이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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