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2

2014.11.10

“우린 축구가 하고 싶어요”

임유철 감독의 ‘누구에게나 찬란한’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4-11-10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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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축구가 하고 싶어요”
    “가난하다고 꿈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 이야기일까. 얼핏 생각하면 마치 1960년대 혹은 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에 있었을 법한 선전문구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014년 11월 우리를 찾아온 영화 ‘누구에게나 찬란한’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김남길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문제는 축구를 하는 데도 가정환경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 하나 있다고 프로축구 선수가 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굶주림을 친구로 트랙을 돌고, 금메달을 먹어서 배고픈 시절과 결별하는 스포츠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제 거의 없다. 부유한 집 남자아이들이 취미 삼아 유명 국가대표 선수가 운영하는 축구클럽에 나갈 때, 어떤 아이들은 “축구가 하고 싶어요”라며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그런 세상의 축구 이야기, 그렇게 뜨거운 아이들의 축구 이야기, 그게 바로 ‘눈부시게 찬란한’이 담아낸 축구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이미 영화 ‘비상’에서 축구 이야기를 다뤄 감동을 이끌어낸 바 있는 임유철 감독 작품이다. 임 감독은 이번엔 아동복지센터를 기반으로 결성한 ‘희망 축구팀’에 카메라를 맞췄다. 가난이 자랑스러운 훈장과도 같던 시절도 있지만, 오늘날 가난 혹은 부모의 빈자리는 훈장이 아니다.

    부모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엄마는 보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영선이, 뛰어난 축구 실력을 가졌음에도 ‘왕따’라서 잘 섞이지 못하는 병훈이, 아버지가 축구를 반대하는 수민이,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슬픔을 채 삭이지 못한 성훈이. 이 아이들은 초등학생 나이에 많은 인생의 무게를 진 채 필드를 뛰어다닌다.



    그렇게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고, 작고, 힘들다. 한창 자랄 나이인 데다 운동까지 하는데 먹는 것도 부실하다. 게다가 처음 이 팀 아이들을 지도한 박철우 초대감독은 아이들이 환경을 돌파하려면 축구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여겨 아이들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했다. 아이들에게 축구는 두려움이 됐다.

    영화 ‘눈부시게 찬란한’은 새로 부임한 김태근 감독이 일궈내는 변화에 주목하다. 그는 아이들을 혼내고 기죽이기보다 기분 좋게 만든다. 말끝마다 ‘우리’를 강조한다. “축구는 우리가 하는 거야. 누가 잘못한 게 아니라 우리가 잘못한 거야”처럼 말이다.

    이런 감독의 격려와 가르침 속에 왕따였던 병훈이는 속상한 영선이를 가장 먼저 알아봐주는 속 깊은 형이 되고, 성훈이는 주장으로서 책임감을 배워간다. 힘들고, 속상하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축구는 꿈이고, 희망이고, 삶의 이유다. 아직 그럴듯한 승리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밝다. 그래서 강가에 나란히 서서 “축구가 하고 싶어요”라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친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삶의 궤도를 잊고 산다. 이 넓디넓은 우주에는 제 나름의 고민과 슬픔, 기쁨을 가진 수많은 별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우주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이름으로 빛나게 될지 모를, 아름다운 별이라 할 수 있다. 그 총총한 별들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누구에게나 찬란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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