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9

2014.10.20

진화하는 가상현실 이젠 현실로

글로벌 기업들 가상현실시장 선점 기기 잇따라 출시

  • 오은지 전자신문 기자 onz@etnews.com

    입력2014-10-20 11: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월 14일 방한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임원들이 방한 첫날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는 가상현실(VR) 기기 분야 협업에 대한 논의가 주로 오갔다. 가상현실 기기 개발, 생산, 유통에서 광범위한 협력을 하기로 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하드웨어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삼성전자는 제품화와 유통을 맡아 영화, 게임, 교육 등 콘텐츠 업계 영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앞서 두 회사는 가상현실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 ‘IFA 2014’에서 ‘기어VR’를 발표하고 판매에 돌입했다. 기어VR는 페이스북이 3월 23억 달러(약 2조4000억 원)에 인수한 가상현실 전문업체 오큘러스VR와 공동작업으로 제작됐다.

    오큘러스VR는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가상현실 기기 ‘오큘러스 리프트’ 헤드셋을 선보인 뒤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업체다. 고글처럼 머리에 써서 눈 주위를 막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기기를 주로 개발한다. 7월에는 두 번째 시제품 ‘오큘러스 리프트 DK2’를 선보이고 개발자를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360도 가상 시야를 지원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가 주목한 부분은 오큘러스VR의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다. 오큘러스VR는 기어VR에 적용할 수 있는 역할수행(RPG) 게임 엔진 개발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페이스북은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게임뿐 아니라 원격진료, 스포츠중계 등 실감 나는 경험을 선사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가상현실이 게임을 넘어 전 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공룡 기업들은 올해 앞다퉈 가상현실 전용기기를 출시하며 가상현실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10월 8일(이하 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자 게임 기술 ‘룸얼라이브’를 선보였다. ‘방이 살아 움직인다’는 뜻을 가진 이 기술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오감을 이용해 생생하게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다. TV 화면 밖으로 영상이 빠져나온 듯한 3차원(3D) 입체감을 보여주면서 고성능 스피커로 생생한 음향을 스테레오로 제공한다. 또한 동작인식기술 ‘키넥트’를 적용해 사람 움직임에 따라 영상이 전환돼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페이스북과 삼성

    진화하는 가상현실 이젠 현실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가 10월 14일 저녁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양사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소니 역시 수년 전부터 HMD 기기를 꾸준히 출시해왔다. 내년 가상현실 게임기 ‘모피어스’를 시판하고 자사 ‘플레이스테이션4’와 연동할 계획이다.

    카메라렌즈 1위 업체 독일 칼자이스도 가상현실 기기시장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을 본체에 끼워 모바일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10만 원대 HMD ‘VR원’을 공개했고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안드로이드와 iOS 운영체제를 지원하고 4.7~5.2인치 디스플레이 크기의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구글도 가상현실 구현에 적극적이다. 미국 IT 전문매체 리코드 등 외신은 10월 13일 구글이 3D 가상현실 전문업체 매직립에 5억 달러(약 5317억)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올해 구글 개발자회의(I/O)에서 20달러(약 3만2000원) 가격의 ‘카드보드’를 내놓기도 했다. 어안렌즈로 시야를 왜곡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든 건 다른 HMD와 유사하지만 ‘구글글래스’ 등에서 내놨던 안경 특화형 콘텐츠를 곧바로 카드보드로 옮겨 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유튜브, 구글어스, 스트리트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실제 체험하듯 즐길 수 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거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 게 가상현실이라고 정의하며 그 시발점으로 196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탱크, 잠수함 시뮬레이터를 든다. 이후 비행기 시뮬레이션 등 특수 분야 교육에 이용되다 게임에 적용되면서 일상생활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고 설명한다.

    가상현실 구현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의 눈과 귀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화질이 고해상도로 좋아지면 현실감을 좀 더 느끼게 되는데, 시각에 청각을 더하는 등 하나의 감각을 추가로 자극하면 좀 더 사실적으로 받아들인다. 고선명(HD) TV 개발 초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일하던 사회과학자 루스 노이만은 같은 화질의 디스플레이를 놓고 하나의 장치(A)에는 일반 음질 카세트를, 다른 장치(B)에는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해 고음질 카세트를 틀어놓고 실험을 했다. 실험대상자들은 B 화질이 훨씬 좋았다고 답했다. 청각에 의해 시각이 왜곡된 사례다. 눈이 나쁜 사람이 식사할 때 안경을 끼면 음식 맛을 더 잘 느낀다는 실험 보고도 있다. 실제로 촉각이나 후각이 더해지면 좀 더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4D 영화관이 대표적이다.

    2025년 홀로그램 시장 95조 원

    그렇다면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야 실제와 똑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그동안 이른바 ‘실감영상’은 디스플레이 및 TV 업계의 최대 화두였다. 디스플레이 선명도를 높이거나 시야를 왜곡해 생동감을 주는 각종 기술이 동원됐다. 3D, 초고선명(UHD·3840×2160화소) 디스플레이를 속속 개발해 선보였다.

    평면 디스플레이는 UHD의 2배 해상도인 ‘8k’ 화질을 한계로 본다. 방송업계 전문가는 “사람 눈으로는 8k 해상도를 넘어가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볼 때와 8k 화질을 구분하기 어렵다”며 “디스플레이 화질을 개선해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건 한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 개발이 필요한 때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많은 TV 및 모바일기기 업체 가 돌비 등 음향 회사와 적극 제휴하고 있다. 애플은 5월 헤드폰 제조사 비츠 바이 닥터드레를 3조 원에 인수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가상현실의 궁극적인 목표는 없는 것도 있어 보이게 만들고, 없는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가상현실 영화에서 가상현실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방영한 미국 드라마 ‘타임 트랙스’에서는 홀로그램으로 제작된 비서가 주인공을 보필한다. 언제 어디서건 부르기만 하면 비서가 나타나 스케줄 관리는 물론 여러 사안에 대한 조언도 건넨다. 가상현실은 로봇 비서와 비슷하지만 시공간 제약 없이 불러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영화 ‘써로게이트’에서는 인간 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가상과 현실을 뒤섞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아예 다른 차원의 공간을 창조한 경우도 있다.

    세계 홀로그램시장은 2025년 941억 달러(약 95조3985억 원)로 지난해보다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도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한 방법으로 홀로그램 산업을 적극 지원할 방침을 세웠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20년까지 7년간 2400억 원을 투자해 홀로그램 표준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8월 발표했다. 평면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뛰어넘은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을 육성해 가상현실시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