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0

2014.08.11

바람이 빚은 모래언덕 너 지금 어디로 가니?

전남 신안 우이도 여름날 ‘우이之夢’…돈목해변 북쪽 ‘풍성사구’ 급격히 규모 축소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입력2014-08-11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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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빚은 모래언덕 너 지금 어디로 가니?

    우이도 모래언덕 위에서 바라본 돈목해변과 돈목마을.

    새벽 4시 반. 어스레한 꼭두새벽에 눈을 떴다. 전날 목포항에서 도초도로 건너와 시목해변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찾아가는 길이 멀어 우이도 한 곳만 여행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온종일 비가 그치지 않은 탓에 서남문대교로 연결된 도초도와 비금도의 다른 명소들은 둘러보지도 못한 채 곧장 시목해변으로 향했다.

    빗방울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간간이 텐트를 두드렸다. 다행히도 비는 새벽에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서둘러 텐트를 걷고 짐을 추려 배낭에 담았다. 도초도 화도선착장에서 새벽 6시 20분에 출발하는 우이도행 첫배를 타려면 여유가 없었다. 전날 미리 약속해둔 택시를 타고 화도선착장으로 달려갔다.

    10여 분 만에 도착한 선착장에는 이미 우이도행 여객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줄곧 산허리에 걸려 있던 구름은 어느새 바다 위로 내려앉았다. 배가 결항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출항시간이 10여 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매표소 아주머니는 표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어디론가 연신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아주머니는 “오늘 아침 우이도 배는 안 갑니다. 여기도 안개가 많지만, 우이도 쪽은 더 심해서 배가 갈 수 없대요”라며 매표소 창구를 닫아버렸다. 몹시 허탈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결국 6시간쯤 더 기다린 끝에 우이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해변과 바다 모두 우리 차지

    오후 2시 도초도 화도선착장을 출발한 섬사랑6호는 우이도 진리마을(우이1구)과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를 거쳐 1시간 반 만에 돈목마을(우이2구)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가 선착장에 닿기 전부터 이미 돈목해변의 드넓은 백사장과 거대한 모래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정인(情人)을 마주하는 듯 가슴이 설레였다.



    선착장을 벗어나자마자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넘어 돈목마을 골목길에 들어섰다. 마을 풍경은 초행이었던 15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고즈넉한 골목길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돌담도 옛 모습 그대로다. 작은 교회에 원색 벽화가 그려졌고, 몇몇 민박집이 번듯하게 새로 지어진 것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였다. 그래서 우이도가 고향처럼 편안하고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돈목마을을 가로질러 돈목해변으로 향했다. 길이가 700m쯤 되는 백사장은 말 그대로 무인지경(無人之境)이었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피서철 파견 근무를 나왔다는 직원 두어 명만 그늘막 아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안내에 따라 해변 한복판으로 흘러드는 개울 부근의 백사장과 언덕에 캠핑 사이트를 구축했다.

    이 아름다운 해변의 모든 것이 우리 차지였다. 넓은 백사장, 깨끗한 바다, 선선한 바람, 시원한 냇물, 띠처럼 드리워진 해무 등이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만을 위해 존재했다. 하지만 그늘 하나 없는 해변에 친 텐트 안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후텁지근했다. 시원한 바람과 풍경을 찾아 모래언덕에 올랐다.

    모래언덕은 돈목해변 북쪽에 우뚝하다. 이 거대한 풍성사구(風成砂丘)는 우이도의 거센 바람이 억겁의 세월 동안 만들어놓은 것이다. 우이도 서북쪽에 위치한 큰대치미해변의 고운 모래가 겨울철 북서풍에 날려 지금의 모래언덕을 이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달리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규모가 크고 풍광도 아름답다. 높이 80m의 모래언덕 정상에 올라서면 돈목해변과 큰대치미해변 일대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래언덕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참으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우이도 관광객은 대부분 돈목해변과 모래언덕을 보려고 찾아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연의 이 걸작도 흥망성쇠 섭리를 피해갈 수는 없는 듯하다. 근래 들어 눈에 띌 만큼 규모가 줄었고 생태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나날이 울창해지는 주변 솔숲이 해풍을 가로막은 데다 주민들이 모래언덕의 풀을 뜯어먹는 소나 염소를 더는 키우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지막한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후끈해졌다. 반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은 뒤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적셨다. 바다는 중년에 접어든 우리 일행의 나이를 순식간에 이팔청춘으로 돌려놓았다. 아이들처럼 물싸움을 하고 물벼락도 치면서 바다의 낭만을 만끽했다. 여름철 기나긴 해가 어느덧 서산마루에 걸렸다. 섬을 처음 찾은 몇몇에게는 평범한 일몰조차 보기 드문 진풍경인 듯했다.

    바람이 빚은 모래언덕 너 지금 어디로 가니?

    우이도 최고봉 상산봉에 오르려면 밧줄을 잡고 가파른 바위절벽을 올라야 한다. 돈목마을의 작은 교회와 예스러운 골목길. 돈목해변 한가운데로 맑고 시원한 개울물이 흘러든다(위부터).

    돈목~진리 간 산길 트레킹

    바람이 빚은 모래언덕 너 지금 어디로 가니?

    진리항에 세워진 홍어장수 문순득의 동상.

    뜨겁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노을마저 스러진 뒤에도 사람들은 한동안 바닷가를 서성거렸다. 하지만 그러께의 어느 여름날 저녁, 이곳 돈목해변의 하늘과 바다를 온통 핏빛으로 물들였던 노을은 다시 드리워지지 않았다. 땅거미가 짙게 깔린 바다에서는 오징어잡이배의 집어등 불빛이 환하게 퍼져나갔다. 나직한 파도소리와 풀벌레소리만 들려오는 돈목해변의 밤은 더없이 낭만적이었지만, 밤의 정취를 음미하기에는 너무 고단한 하루였다.

    이튿날 새벽에도 도초도에서 우이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은 뜨지 않았다. 우이도 해역에 짙은 해무가 깔린 탓이었다. 해가 떠오르자 해무의 움직임도 부산해졌다. 바다와 산, 마을과 해변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텐트 안에서 뒹굴뒹굴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다 사우나처럼 뜨거워질 즈음에야 밖으로 나왔다.

    아침 산책 삼아 모래언덕에 올랐다가 큰대치미해변과 성촌마을을 거쳐 돈목해변으로 되돌아왔다. 돈목해변보다 훨씬 규모가 큰 큰대치미해변에는 수많은 해양폐기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파도에 밀려온 양식장 부표가 가장 많았고, 멀리 중국에서 해류를 타고 온 듯한 쓰레기도 적잖았다. 우리 일행이 섬을 떠난 다음 날 이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캠핑 사이트를 정리한 뒤 돈목마을의 민박집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주인아주머니가 “배 시간에 맞춰 경운기로 선착장에 실어다 놓을 테니 무거운 짐은 모두 두고 가라”며 뜻밖의 호의를 베풀었다. 작은 배낭에 물과 간식만 챙겨 가뿐하게 돈목-진리 간 산길 트레킹에 나섰다.

    손암 정약전이 유배 고초 끝 숨진 곳

    돈목마을에서 진리마을 사이에는 4km가량의 산길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우이도 최고봉 상산봉(359m)까지 들르면 총 5.4km에 이른다. 제법 비탈진 고개를 두 곳 넘고, 상산봉을 오르내리는 일도 만만치 않아 소요시간을 3시간쯤 잡아야 한다. 도중에는 우이도 최초 마을인 대초리도 거치게 된다. 450여 년 전 생겼다는 이 마을은 이제 사람은 없고 흔적과 지명만 남은 폐촌(廢村)이 됐다.

    진리는 전체 넓이 10.7km2, 해안선 길이 21km에 이르는 우이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자 행정 중심지다. 옛날에 흑산진 산하 수군이 주둔하던 우이보도 이곳에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우리나라 선창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는 ‘진리 옛 선창’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길이 63.3m, 폭 1.6m, 높이 2~3m의 규모로 선창을 둘러싼 방파제는 조선 숙종 때 축조됐다고 한다. 선창 한복판에는 배를 묶어두는 계주석(벼리목)도 세워져 있다.

    진리마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자산어보’ 저자인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하다 숨진 곳으로도 알려졌다. 16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세상을 뜬 손암은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거의 반반씩 지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그는 홍어장수 문순득(1777~1847)이 바다에 나갔다가 표류(漂流)해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중국 광저우와 마카오, 베이징 등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를 담은 ‘표해시말(漂海始末)’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진리마을에는 문순득의 옛집이 있고, 최근 진리항에는 큰 노를 한 손에 들고 먼바다를 응시하는 문순득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진리마을의 고샅을 느긋하게 걷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커다란 뱃고동소리가 들렸다. 도초도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한 여객선이 막 진리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불볕더위 속에 두 개의 고갯길을 넘어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득달같이 내달려 간신히 배에 올라탔다. 시원한 객실의 바닥에 머리가 닿자마자 금세 눈이 감겼다. 우이도에서의 1박 2일이 한바탕 봄꿈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여행정보

    ● 우이도에서 캠핑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우이도에서는 원칙적으로 취사, 야영이 금지된다. 돈목해수욕장의 일부 구역에서만 야영을 할 수 있다. 해수욕장 한복판으로 흘러드는 작은 내 주변이 야영 가능 구역이다. 근처에 샤워장 딸린 화장실 건물도 있다. 그러나 야영하며 고기를 굽거나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는 절대 금지다. 화기(버너)를 이용한 식사 준비는 마을 내에서만 가능하다(문의 :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우이도 관리인 박화진 씨 010-4618-4455).

    ● 숙식

    바람이 빚은 모래언덕 너 지금 어디로 가니?

    다모아민박의 맛깔스러운 가정식백반.

    우이도 숙박시설은 민박뿐이다. 돈목마을에 다모아민박(061-261-4455), 해돋이민박(061-262-2962), 한승미민박(061-261-1740), 우이도수퍼민박(061-261-1863), 모래산민박(061-261-1920) 등이 있다. 도초면사무소 우이도출장소(061-261-1866)와 우이초교(폐교)가 위치한 진리마을에는 설희네민박(061-262-7056), 모래언덕과 가까운 성촌마을에는 초원민박(061-261-1842), 성촌민박(061-261-5187)이 있다. 민박집에서는 대부분 미리 부탁하면 식사도 차려준다. 숙박비는 비수기 5만 원, 성수기 7만 원 선이다.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가정식백반은 1인분에 7000원이다. 피서철 성수기에는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 가는 길

    우이도행 여객선 운항시간 : 도초도(06:20)→우이2구 돈목(07:10)→우이3구 성촌→동·서소우이도→우이1구 진리(08:00)→도초도(08:50)→목포항(11:00 도착, 11:40 출발)→도초도(14:00)→우이1구(14:50)→동·서소우이도→우이2구(15:40)→우이3구→도초도(16:40 종점)

    ※ 우이도 여객선은 운항노선이 다소 복잡하고 운항 시간도 약간 유동적이다. 10~20분 여유 있게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여객선은 차량 선적도 가능한 소형 카페리지만, 우이도에 자동차도로는 거의 없다. 목포항에서 흑산도행 쾌속선을 타고 도초도로 가서 우이도행 여객선을 타면 시간이 절약된다. 목포항에서 도초도까지는 쾌속선으로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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