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9

2014.08.04

‘마식령 대참사’ 꽁꽁 숨기라우!

김정은 최대 치적에 먹칠 입단속 혈안…관광산업 타격 전전긍긍

  •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입력2014-08-01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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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식령 대참사’ 꽁꽁 숨기라우!

    평양-원산고속도로 마식령 우회로 위성사진. 깊은 계곡을 옆에 끼고 굽이굽이 이어진 가파른 길이 보인다. 이 도로는 마식령 동쪽 사면의 일부 구간으로 원산시와 이어져 있다(위). 북한 ‘노동신문’이 5월 3일 송도원국제소년단 야영소 리모델링 완공 소식을 전하며 공개한 야영소 전경. 건물 외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외곽에 워터슬라이드(가운데 점선 안)와 상어가 있는 실내수족관(둥근 건물), 실내체육관(위쪽 왼편) 등이 새롭게 들어섰다.

    5월 24일 김정일의 모교인 평양제1중학교 3학년 학생 50여 명이 탄 관광버스가 강원도 마식령에서 굴러떨어져 모두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일반 교통사고와 달라 북한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사고로 사망한 학생들이 북한 최고 명문인 평양제1중학교 수재라는 점이다. 둘째, 이들이 향하던 강원 원산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송도원야영소)가 현재 북한에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가장 큰 치적으로 선전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송도원야영소를 여러 차례 선전하면서 이를 세월호 비판에 활용했는데, 결국 북한도 똑같은 대형 참사가 벌어져 크게 망신을 사게 됐다는 점이다.

    50여 명 몰사 보상도 못 받아

    이번 사고 장소는 경사가 가파른 강원 법동군 평양-원산고속도로 마식령 오르막 구간으로 알려졌다. 버스가 도로 아래 마식령 골짜기로 떨어진 데다 학생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아 대형 참사로 번졌다. 사고 직후 북한은 군과 국가안전보위부 등을 투입해 사고 수습에 나서는 한편, 외부에 소식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식령에서는 1월 19일에도 지난해 말 완공된 마식령스키장으로 향하던 버스가 추락해 평양시민 30여 명이 숨졌다고 대북 소식통들이 전했다. 이 도로의 상황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김정은도 원산에 갈 때는 경비행기나 헬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고로 숨진 학생들은 만 13세로 북한 고위급 간부 자녀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 있는 평양제1중학교는 김정은이 나온 남산고급중학교의 후신으로 북한에서 최고 수재들이 입학하는 명문이다. 6년제인 이 학교는 3학년까지는 평양 출신 학생만 입학을 허용하고 4학년부터는 전국에서 뛰어난 수재를 뽑아 인원을 늘린다. 졸업생은 김일성대나 김책공대 등에 입학할 수 있어 이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고위 간부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사망한 학생들은 지방 학생들이 편입되기 직전 학년인 3학년으로, 전부 평양 출신 학생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무리 학부모가 고위 간부라 해도 이번처럼 국가적 함구령이 떨어진 사안에 대해선 항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잘못하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개인 상해보험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보상받을 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5월 13일 평양시 평천 구역에서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자 간부들이 주민들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을 신속히 공개했다. 하지만 송도원야영소로 향하던 학생들이 사망한 사실이나 마식령스키장으로 가던 평양 시민들이 사망한 사건은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다. 두 시설 모두 김정은이 지난해와 올해 최대 치적으로 꼽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식령 대참사’ 꽁꽁 숨기라우!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현지지도 소식을 전한 ‘노동신문’ 2014년 7월 6일자 사진.

    김정은은 올해만 송도원야영소를 네 차례나 찾을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그가 반년도 안 된 사이 특정 시설을 네 번이나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5월 50년 넘게 운영되던 송도원야영소를 찾아 “앞으로는 겨울에도 야영소를 운영하며 마식령에서 스키도 탈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북한 최정예 건설부대인 제267군부대가 마식령스키장 공사를 끝낸 지난해 11월부터 송도원야영소 리모델링 공사에 투입됐다. 그 결과 송도원야영소는 5월 10일 물놀이 시설과 대형 수족관 등을 갖추고 재개장했다.

    송도원야영소에 대한 김정은의 각별한 관심은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 어머니 고영희와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진 원산의 7성급 김정일 특각(호화별장)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원산 특각과 송도원야영소는 작은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수십m 거리에 있다.

    어릴 적 어머니와 보낸 원산 관심 각별

    송도원야영소보다 더 큰 넓이를 차지하는 특각에는 60m 길이의 대형 요트를 비롯해 여러 척의 호화 요트와 수십 대의 수상제트스키, 고급 워터슬라이드가 갖춰져 있다. 김정은은 자기 고향집과 다름없는 원산에 수시로 체류하며 수영과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정은의 현지 시찰 장소가 원산 인근에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5월 송도원야영소 재개장 후 북한은 이곳을 자랑하며 관영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남쪽의 세월호 사건을 비판했다. 5월 9일 ‘조선중앙방송’은 “송도원야영소 준공으로 온 나라에서 학생소년들이 기쁨에 넘친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있지만 조국의 남녘땅에선 수학여행에 올랐던 어린 학생들이 생때같은 죽음을 당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곡성이 낮에 밤을 이어 울려 퍼진다”고 보도한 바 있다. 5월 13일 ‘노동신문’은 ‘어디가 낙원이고 어디가 지옥인가’라는 글에서 “최근 준공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가 북한 아이들의 궁전인데, 어찌해 내 조국의 절반 땅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생죽음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내용의 보도가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의 참사가 발생한 뒤에도 계속됐다는 것이다. 북한이 사고 소식이 퍼지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이유 중에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감추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북한 관광산업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송도원야영소는 매년 7월 사회주의국가 청소년을 초청해 2~3주간 일정으로 국제캠프를 운영해온 장소다. 하지만 캠프 참가자의 대다수였던 중국 청소년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면서 최근 북한은 참가자 모집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은 송도원야영소 리모델링을 계기로 이 시설과 마식령스키장을 앞세워 외국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곳까지 가는 도로에서 대형 참사가 빈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참사 한 달 반 뒤인 7월 5일 김정은은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송도원야영소를 다시 찾았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송도원야영소 전용역인 송도원역을 둘러보고 “우리가 야영생들을 위한 직통열차를 마련하고 운행 준비까지 다해놓았는데 역사(驛舍)를 잘 꾸려야 한다”고 보도했다. 버스 추락사고 이후 김정은이 야영객을 철도로 운송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송도원야영소 전용역이 급히 건설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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