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5

2017.07.05

스페셜 리포트

학생+연구원+노동자, 대한민국 공대 대학원생이 사는 법

인문대생에 비하면 ‘상대적 강자’ 취급받지만 “실상은 ‘을’만도 못하다” 자조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7-03 13: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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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월 26일 강원 원주시에 있는 한 대학 실험실 복도에서 폐기물 보관통이 터졌다. 실험을 마치고 화학물질을 처리하려던 학생 5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전국 실험실 사고 가운데 약 90%가 대학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학생에겐 교수와 달리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사고는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3월 실험 도중 화합물 폭발로 손가락 두 개를 잃은 대전 한 대학원생은 산재보험료를 받지 못했다.

    #2 6월 23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정부 지원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학생 앞으로 나온 연구비를 절반만 주는 등의 방법으로 국가보조금을 착복한 A교수를 구속 기소했다. 1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적발한 B교수도 수년간 정부 연구과제를 맡아 하면서 학생연구원 인건비 일부를 현금으로 회수해 수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정부가 대학 연구비 비리 엄벌을 천명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상당수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제몫을 빼앗긴다.

    #3 6월 28일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이 대학 C교수가 ‘논문을 봐주겠다’며 연구조교(학생)를 술자리로 불러내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천재 수학자’로 통하던 서울대 교수가 학생 성추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교수의 대학원생 대상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 잔혹사

    모두 지난 열흘 사이 보도된 사건이다. 이전 열흘, 다시 그전 열흘로 거슬러 올라가도 대학원생 대상의 사건, 사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일도 적잖을 것이 분명하다. 6월 13일 서울 연세대 공대에서 사제폭발물이 터졌을 때 상당수 누리꾼이 ‘범인은 교수에게 앙심을 품은 대학원생일 것’이라고 추정한 배경이 여기 있다.



    경찰 수사 결과 해당 사건 피해자는 이른바 ‘갑질 교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해 대학원생도 “교수에게 겁을 좀 주고 싶었을 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로써 이번 사건은 더는 확산되지 않고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국내 대학원의 고질적 병폐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그동안 인문사회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이공계 대학원 문제도 심각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원생 인권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한 건 2015년 이른바 ‘인분 교수’ 사건 이후다. 경기도 한 대학교수가 대학원생 제자에게 수년간 인분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이때부터 정부 차원의 대학원생 인권 보호 움직임이 시작됐다.

    같은 해 국내 한 지방대 국문과 박사 과정생이던 김민섭 씨가 에세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를 펴내며 인문계 대학원생의 열악한 삶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비가 상대적으로 풍족하고 졸업 후 사회 진출도 인문사회계에 비해 수월한 것으로 알려진 이공계 대학원생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측면이 있다. 서울 한 사립대 공대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D씨는 “그동안 대학원생 인권 문제를 앞장서 제기한 건 주로 인문사회계 전공자다. 그런데 이공계 대학원에는 그들이 모르는 문제가 많다. 실험하다 사고가 나도 교수한테 혼날까 봐 알아서 처리하고, 하루 종일 교수가 시키는 일을 하느라 내 연구 못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세대 공대에서 사제폭발물이 터졌을 때 많은 공대 대학원생이 ‘우리도 이제는 말 좀 하고 살자’고 반응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인문사회계 교수와 대학원생 관계가 ‘갑을’이라면, 이공계 교수와 대학원생 관계는 ‘갑병’ 또는 ‘갑정’ 수준”이다.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대학원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건 전자의 경우 교수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우창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고등교육 전문위원은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해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 밝혔다. “국사학, 국문학, 동양철학 같은 일부 전공을 제외하고는 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이 넓지 않다”는 얘기다. 석·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취업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지거나, 연봉이 수직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원은 다르다. 지방 사립대 공대 대학원생 E씨는 “요즘 이공계 출신은 학부만 졸업해도 웬만하면 취업이 된다.

    거기에 석·박사 학위를 더하면 좀 더 나은 직무를 맡을 수 있다. 생산·기술·관리직에 갈 사람이 연구·개발직에 가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연구용역을 잘하고 교수에게 인정받으면 중소기업 갈 사람이 중견기업, 중견기업 갈 사람이 대기업에 갈 수도 있다. 학위를 못 받거나,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해 괜찮은 논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니 교수의 힘이 강력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명 이공계 대학원생도 교수가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대학에 자리 잡거나 해외 명문대에 ‘박사 후 연구원 유학’을 갈 때, 그리고 취업할 때도 연구실 내 경력과 석·박사 학위, 교수 추천 등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수들도 학생 앞에서 ‘당당’하다.

    “가끔 언론에 ‘국가 연구과제를 하는 공대 대학원생들이 자기 통장으로 들어온 연구비를 인출해 교수한테 상납했다’는 보도가 나오잖아요. 그걸 보고 인문대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아니, 네 명의의 통장에 들어온 돈을 왜 빼주는 거야’라고 묻기에 그냥 웃고 말았어요. 우리가 권리의식이 없어서, 아니면 돈이 많아서 그걸 빼주겠습니까. 교수가 달라면 줘야 하는 게 여기 문화예요.”

    D씨의 얘기다. 그에 따르면 최근 첨단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국내 유명 사립대 교수가 이런 방식으로 수년간 제자들에게 연구비 뒷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실 대학원생 가운데 한 명이 매달 교수에게 건넨 돈봉투를 되돌려 받고, 그 위에 ‘상납 액수’를 적어 남몰래 보관해둔 덕이다. 해당 교수는 돈 받은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돈을 모두 학생들을 위해 썼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여전히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D씨는 “이런 일이 전국 각지에서 반복된다. 그러니 이공계 대학원생은 자기 몫으로 나온 연구비를 중간에 떼지 않고 다 주는 교수를 ‘좋은 분’으로, 적당히 떼어가는 교수를 ‘괜찮은 분’으로 여긴다. 그렇게 비정상을 감수하며 사는 게 습관이 돼 있다”고 토로했다.



    학생 연구원이라는 이중지위

    또 다른 공대 대학원생 E씨는 한 사립대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한 대학원생이 대학 본부에 자기 지도교수의 연구비 비리를 고발했는데, 그걸 접수한 이가 잘못을 저지른 교수한테 연락해 ‘학생들 사이에서 당신이 연구비를 잘못 관리한다는 소문이 떠도니 조심하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결국 내부고발자가 특정됐고, 해당 학생이 고초를 겪었다. E씨는 “요즘 대학에서는 연구비를 많이 가져오는 교수가 ‘갑’이다. 학생이 그에게 맞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배들이 용기 있게 문제를 지적했다 오히려 학계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걸 보면 누가 또다시 목소리 낼 생각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국내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학교에서 강의한 연구자 오찬호 씨도 저서 ‘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연구비 수주가 중요 평가기준이 되면서 돈 잘 따오는 교수와 그렇지 못한 교수로 나뉜다. 처음에는 교외연구비 수주를 잘 하는 교수를 ‘그런 쪽에 역량이 있다’ 정도로 평가했다. 진정한 학자의 자세는 아니라고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돈 따오는 연구에 관심이 없는 교수들은 ‘교수란 사람이 자기 제자들을 나 몰라라 한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질타를 받기 시작했다. 사업수주에 성공한 교수는 권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권력은 남용된다. 자기 제자 위주로 조교를 배정한다. 평소 싫어하는 동료 교수의 제자는 배제된다. 돈을 끌어오지 못하는 교수는 자기 제자를 조교로 배정해달라고 ‘돈 교수’에게 사정한다. 학과에서 ‘돈 교수’는 제왕이며 그 교수가 신뢰하는 대장 조교 역시 권력을 갖는다. 내부 공동체가 이 지경이니 학문적 시너지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이공계에 국가 연구과제가 몰리면서 이런 분위기가 강화됐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99년 막이 오른 ‘두뇌한국(Brain Korea·BK)21 사업’이 이공계 대학원에 미친 영향이 컸다. 정부는 이때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을 안정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BK21 사업비 대부분을 대학원생에게 지원했다. BK21 과제를 수주한 교수에게 지도받는 학생이 해당 연구에 참여하면 연구비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가 연계되는 ‘실험실’의 위상이 강조됐고, 이공계 대학원생은 실험실 단위로 조직화됐다. 지도교수의 연구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곧 대학원 생활이라는 문화가 생기면서 이공계 대학원생은 △강의를 듣고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키워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이자 △국가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연구원이라는 이중 지위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이들을 ‘학생연구원’이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펴낸 ‘학생연구원 지원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국가 연구과제가 크게 늘어나면서 최근 우리나라 이공계 석·박사 과정생은 거의 전부 학생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적잖다는 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12년 해외 이공계 유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장학금으로 학비를 조달했다. 장학금 액수도 월평균 176만 원, 연간 20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해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원생의 장학금 수혜율은 40% 수준이고 수령액도 한 해 평균 석사 과정 469만 원, 박사 과정 371만 원에 불과했다.



    정작 ‘내 공부’ 할 시간은 없는 대학원생들

    그럼에도 많은 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한 건 연구과제 참여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2011년 국내 6개 대학에서 국가 연구과제에 참여한 이공계 대학원생 1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석사 과정생은 1년간 평균 2.7개 과제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월평균 68만 원, 박사 과정생은 평균 3.1개 과제에 참여해 월평균 103만 원을 인건비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학생연구원 지원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이를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매우 모자란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우리나라 대학원생들은) 모자란 생활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과제에 참여하고, 지도교수에게 종속되는 성향이 더욱 강해져 연구나 교육보다는 연구과제 수행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국가 연구 외에 다른 과제도 더 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 국내 대학들은 교수의 임용, 승진 및 정년 심사 시 연구비 수주 능력을 매우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는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프라임(PRIME·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은 대학의 산학협력 정도에 따라 지원금에 차등을 두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교수가 가능한 한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연구실에 ‘동원’할 수 있는 학생연구원이 많아야 한다. 서울 한 사립대 공대 대학원 졸업생은 이에 대해 “최근에는 많은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교수들에게 ‘대학원 올래?’ 하는 제안을 받는 분위기다. 좀 똑똑한 학생을 차지하려고 교수들이 기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적당한 보수와 취업 지원 등의 약속을 받고 대학원에 몸을 담은 학생들은 교수 지시에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요즘 교수들은 학술적인 목적을 가진 연구비(grant)뿐 아니라 기업이 발주하는 각종 용역(contract)도 많이 수주한다. 이런 과제 중에는 학생의 연구 역량 강화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일단 실험실에 몸 담은 학생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게 일반적이다. 교수가 학생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일정 부분 책임지는 조건으로 다양한 프로젝트 참여를 지시하고, 추진 상황을 수시로 관리·감독하는 과정에서 교수-학생 관계는 때로는 부모-자식, 때로는 사장-직원 관계 등으로 변화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공계 연구실에서 연구비 관련 비리와 대학원생 인권 침해가 빈발하는 것도 이런 문화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교수가 스승이면서 보호자, 고용인의 얼굴을 다 갖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이 이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반면 상대적으로 대학원의 연구 기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5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189개 대학 대학원생 1906명 가운데 34.5%가 공동연구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의 18.3%는 교수로부터 원치 않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빈번하게 강요당한다고도 토로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학생연구원 10명 중 6명이 주당 20~40시간을 연구실 공동연구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이공계 유학생은 주당 평균 13시간, 일본 이공계 유학생은 평균 7시간만 연구실 공동연구 등에 썼다. 나머지 시간은 학업과 독자적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이 처한 또 하나의 어려움은 공동연구를 넘어 회계처리 등 각종 잡무까지 떠맡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총학생회 조사에 따르면, 2016년 현재 KAIST 대학원생은 주중 하루 평균 2.26시간을 연구 외 업무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안에는 또 다른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한 제안서 작성, 각종 영수증 처리, 연구 장비 관리 등 ‘세상의 모든 일’이 포함된다. 이처럼 공동연구와 잡무에 많은 시간을 쓰는 대학원생이 애초 대학원에 진학할 때 꿈꿨을 ‘자기 연구’를 하려면 휴식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D씨는 “상당수 이공계 대학원생이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월화수목금금금’ 스케줄에 따라 사는 건 그러지 않으면 개인 연구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끔 대학원생들끼리 모이면 ‘공부하러 대학원 왔는데 실상은 박봉의 노동자가 됐다’는 얘기를 한다”고도 했다.

    반면 사회적 신분은 여전히 ‘학생’인지라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에서는 소외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대학원을 정상화하려면 선진국처럼 대학원생에게 다양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연구 프로젝트 참여를 통한 인건비는 보조적 인센티브 정도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원을 대학원답게

    서울 한 사립대 공대 F교수는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대학원을 대학원답게’를 꼽았다. 대학원 입시를 강화해 연구 역량과 의지가 있는 학생만 가려 뽑고, 그들을 제대로 가르쳐 학문 후속 세대로 키우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폴라 스테판 미국 조지아주립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서 ‘경제학은 어떻게 과학을 움직이는가’를 언급하며 “해당 책은 연구비(경제)가 미국의 과학 연구를 어떻게 좌지우지하는지 보여주는데, 요즘 한국의 세태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요즘 우리 대학들은 번듯한 건물과 명성을 활용해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고 교수가 유치해온 보조금으로 수입을 올린다는 점에서 고급 쇼핑몰과 다르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교수는 교육자라기보다 사업자가 되고, 그들이 충분히 돈(연구비)을 벌지 못하면 쇼핑몰(대학)이나 직원(학생)이 생존하지 못한다. 이런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대학의 ‘연구비 만능주의’가 해소되고 교수-학생 관계가 복원되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의견이다.

    또 다른 공대 G교수는 이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원 상당수는 이미 연구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2012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이공계열 박사 과정생이 각각 1만 명을 넘어섰다. 그는 “이들 학생을 모두 ‘잠재적 연구자’로 보고 그에 맞게 대학원 정책을 짜자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대학원을 구조조정하면 학부 등록금이 동결되고 학령인구가 감소해 안 그래도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상당수 대학이 버틸 재간이 없다”고 했다.

    G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석사 과정생 상당수가 자비로 대학원에 진학한다. 세계 각국에서 학위를 원하는 유학생이 모여들기 때문에 학업 위주로 대학원을 운영해도 얼마든지 학생을 모집할 수 있다. 연구를 업으로 선택한 박사 과정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적절한 수준의 연구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에서 각종 용역을 중단하면 연간 1000만 원 넘는 등록금을 내고 대학원에 진학할 학생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 역량이 충분치 않은 이들에게 국가나 사회가 장학금을 주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라며 “지금은 한국적 현실을 인정하고, 사실상 노동자 지위에 있는 대학원생의 인권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든 대학원생이 교수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지위에 머무르고, 그로 인해 각종 부조리와 비리가 발생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뜻이 통한다. 서울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이에 대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학원생 인권 문제를 ‘악당(교수) 대 선의의 피해자(학생)’ 구도로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에 일부 ‘악당’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의 교수도 부지불식간에 학생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구조라는 게 더 문제다. 각 대학이 다양한 연구 환경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해 우리 대학원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우창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전문위원은 “교수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적절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현재 감봉, 정직, 파면 등으로 단순화된 교수 징계 체계를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 또 대학원생이 졸업 후 문제를 제기해도 교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교수 징계 시효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연세대의 경우 이번 사제폭발물 사건 후 총장 지시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대학원 문화 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공계 전문대학인 포스텍과 KAIST는 이미 2012년 7월과 2013년 9월 각각 ‘옴부즈만’ ‘옴부즈퍼슨’ 제도를 만들어 대학원생의 고충 처리 및 상담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교수가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면 이 기구가 나서 학교 차원의 해결을 모색한다. 특히 KAIST는 옴부즈퍼슨의 조직도상 서열이 부총장이나 학장보다 높다. 원로과학자인 구자경(수리과학과), 박승오(항공우주공학과) 명예교수가 옴부즈퍼슨을 맡아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중재자 구실을 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한편 포스텍 물리학 박사 출신인 문미옥 대통령비서실 과학기술보좌관이 국회의원 시절, 국가 연구과제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이 근로계약을 맺고 산재보험의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법률 제정 노력도 시작됐다. 공대 대학원생 D씨는 “친구 중에 영문과 대학원생이 있는데 과외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고 장래 전망도 나보다 어둡지만, 그래도 지금 생활이 즐거워 보인다. 정작 나는 대학원에 다니며 즐거움을 잃었다. 연구하려는 사람이든, 취업을 꿈꾸는 사람이든 이공계 대학원에 다니며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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