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8

2014.07.28

화사한 풍광을 닮은 젊은 선율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4-07-28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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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사한 풍광을 닮은 젊은 선율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스위스에선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등 4개 공용어가 통용된다. 그중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가리켜 ‘스위스 로망드(Suisse Romande)’라 부르며, 그 대표 도시는 유엔 유럽본부 소재지이기도 한 제네바다.

    필자는 대학 시절 배낭여행 도중 제네바에 잠시 체류한 적 있다. 당시 그곳은 루체른에서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야간열차의 환승지였고, 그 후 다시 가볼 기회가 아직까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 기억 속 제네바는 ‘어둠의 장막 속 도시’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7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한 오케스트라가 그 어둠을 환한 빛으로 밝혀줬다.

    ‘주간동아’945호에서 간단히 언급했듯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1918년 제네바에서 탄생한 악단으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스위스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이다. 과거 거장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와 함께 데카(Decca) 레이블의 간판으로 활약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이 악단이 국내 무대를 찾은 것은 1991년 이후 23년 만이었다. 지휘는 일본의 신성 야마다 가즈키로, 현재 이 악단의 수석 객원지휘자이자 차기 상임지휘자 물망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첫 곡은 근대 프랑스 ‘6인조’의 일원인 스위스 작곡가 아르튀르 오네게르의 ‘퍼시픽 231’. 증기기관차의 움직임을 모티프로 작곡한 이 곡은 악보가 악단 설립자이자 초대 음악감독인 앙세르메에게 헌정된 명작이다. 연주는 오랜만에 내한공연을 갖는 악단에게서 종종 감지되는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전반적으로 작품에 대한 악단의 인연과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는 호연이었다.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자로 나선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 독주 바이올린의 톤에 자신감과 설득력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다만 재작년 지휘자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이끄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과 비교하면 한결 안정된 모습이라 다행스러웠다.



    2부에서 연주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는 1부의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관현악의 마술사’가 빚은 이 호사스러운 작품에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눈부신 색채와 활력을 선보였고, 지휘자 야마다는 감각적인 터치와 절묘한 밸런스로 악단을 능란하게 이끌었다.

    다만 앙상블에 거친 면이 없지 않았고, 첫 곡에서는 안정감과 응집력이 부족한 듯도 싶었다. 그러나 두 번째 곡부터는 이 정력적인 악단과 젊은 지휘자의 강점 및 장기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관객을 한껏 매료되게 했다. 그들의 연주는 매 순간 총천연색의 선명함으로 빛났고, 시종 생생한 역동감과 신선한 열기를 뿜어냈다.

    이러한 인상과 짜릿한 흥분감은 앙코르로 연주한 조르주 비제의 ‘아를의 여인’ 중 두 곡, 청초한 ‘미뉴에트’와 활력 넘치는 ‘파랑돌’에서 더욱 증폭했다. 이 곡들에서 악단의 연주는 마치 제네바와 인접한 남프랑스의 화사한 풍광을 시원스럽게 펼쳐 보이는 듯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셰에라자드’의 배경은 바다가 아니라 스위스 최대 호수 레만의 광활한 물결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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