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6

2014.07.14

땀이 뚝뚝 ‘한증막’ 전기료 아끼려 선풍기 안 틀어

서울 동자동 쪽방촌 여름이 가장 곤혹…낮시간 대부분 밖에서 보내다 늦은 귀가

  • 맹서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국어국문과 졸업

    입력2014-07-14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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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이 뚝뚝 ‘한증막’ 전기료 아끼려 선풍기 안 틀어

    7월 8일 서울 동자동 쪽방에서 만난 김정심 씨.

    쪽방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길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주민들과 마주쳤다. 바람이 들지 않는 쪽방보다 그나마 거리가 시원해서일까. 집 앞 골목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앉은 이들과 바닥에 주저앉은 이들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쪽방촌의 중심 골목쯤 되는 새꿈어린이공원 나무 사이로 매미소리가 우렁찼다. 폭염이 막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7월 초 한낮, 10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공원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왼쪽 가파른 계단으로 길이 이어진다. 70도는 돼 보이는 경사를 타고 노인들은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른다. 가운데 회색 손잡이를 부여잡은 손이 위태롭다. 계단을 따라 내려와 다시 오른쪽으로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쪽방 건물들이 펼쳐진다. 다닥다닥 난 허름한 창문들 위로 수십 개 전선이 얽혀 있다. 미로 같은 골목과 계단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쪽방촌 건물들은 그보다 더 뜨거운 숨을 내뿜는 듯했다.

    동자동 쪽방촌 건물은 대개 3층. 층마다 방이 10개씩 있다. 한 사람 겨우 지나기도 벅찬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방문이 5개씩 마주하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각이지만 건물 안은 형광등 불빛 하나 없이 컴컴하다. 잿빛 건물 2층으로 올라 첫 번째 방문을 열고 주민 김정심 씨를 만났다.

    모든 게 방 하나로 ‘방들의 압축판’



    50대에 접어든 김씨는 남편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아들에 의지해 살았다. 그 아들이 음료수를 싣고 달리던 대형트럭에 부딪혀 뇌를 다친 게 1년 전. 아들은 2급 정신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날 이후 아들은 툭 하면 욕설을 내뱉고 주먹을 휘둘렀다. 엄마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험한 몸싸움을 벌이고 몇 시간 후면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온 아들은 미안하다며 울었다. 한방에 사는 게 불가능해진 모자는 쪽방촌에 들어와 따로 방을 얻었다. 같은 건물 2층에 김씨가, 3층에 아들이 몸을 뉘었다.

    쪽방은 ‘방들의 압축판’이다. 침실, 거실, 부엌, 옷방 같은 모든 방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3.3㎡가 채 되지 않는 방 한쪽에 이불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냉장고와 밥통, 가스레인지가 엉켜 있다. 선반에는 여행가방과 옷이 든 커다란 짐이 켜켜이 수북하다. 방 하나의 월임대료는 23만 원. 전기세와 수도세가 포함된 가격이다.

    김씨의 밥통 앞에는 당뇨약과 혈압약, 수면제 같은 갖가지 알약통이 놓여 있다. 몇 개 되지 않는 화장품도 자리를 차지했다. 달력을 고정한 투명테이프 주변으로 죽은 바퀴벌레들이 달라붙어 있다. 이 모두를 제외한 나머지, 즉 150cm 키의 50대 여자가 누우면 발끝이 방문에 닿을 딱 그만큼의 공간이 그의 잠자리다. “어휴, 여기는 한증막이에요. 문을 닫아놓으면 땀이 뚝뚝 떨어져요.” 김씨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쪽방촌 여름이 가장 곤혹스러운 때는 밥을 해먹을 때다. 가스레인지를 켜면 화끈화끈한 열기가 방 안을 가득 메워 숨이 턱턱 막힌다고 했다. 무더위로 잠을 잘 수 없는 날에는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선잠이 드는 정도다. 유독 뜨거웠던 며칠 전 밤에는 잠을 청하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왔다. 어지럼증과 열기에 손발이 덜덜 떨리자 김씨는 간신히 방문을 열고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지나던 ‘반장오빠’가 119구급대를 불러줘 간신히 살아났다는 김씨의 표정에서 아찔함이 배어나온다.

    김씨가 말한 생명의 은인 ‘반장오빠’는 쪽방촌의 주민대표 김정길 씨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활하며 다른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벌써 7년째 해오고 있다. 물어물어 찾아간 김 반장은 이날도 이웃집에 화장실을 만들어주느라 바빴다.

    그의 방 역시 산더미 같은 짐으로 빼곡하다. 본인 것은 아니다. 돈을 못 내 집에서 쫓겨나거나 교도소에 복역 중인 옛 이웃 네 명의 짐이라고 했다. “맡긴 지 3년도 넘었는데 아직 안 찾아가네. 내 짐이 아니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보니 각 짐마다 주인 이름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다.

    비좁은 방구석에 즐비하게 놓인 카세트테이프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도 카세트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다니. 클래식과 경음악을 합쳐 모두 30여 개란다. “내가 워낙 음악 듣는 걸 좋아허니께. 좋잖여, 치매도 예방된다카고.” 이 음악애호가의 방에는 다른 집 이삿짐을 날라주고 선물로 받아온 오디오가 2대 있다. 선뜻 다가선 여름과 장마를 이겨낼 유일한 위로였다.

    시원한 죽부인 있었으면…

    땀이 뚝뚝 ‘한증막’ 전기료 아끼려 선풍기 안 틀어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대표 김정길 씨.

    시선을 돌려 천장을 보니 벽지가 간신히 붙어 있다. 벽을 누르면 손가락이 푹푹 들어간다. 김정길 씨는 “흙으로 쌓은 벽이라 더워지면 벽지가 죄다 뜬다”고 설명했다. 한 교회에서 나눠준 선풍기가 있지만 전기료가 아까워 함부로 틀지는 못하고, 낮시간 대부분을 밖에서 보낸다. 남산에 올라가 운동도 하고 공원에서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밤 10시 30분쯤. 그래도 너무 더운 밤에는 돗자리를 들고 한강 둔치로 향한다. “이 동네는 다 그러고 산다”며 김씨가 멋쩍게 웃었다.

    올여름 사정이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것은 6월 24일 마을 어귀에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동자희망나눔센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쪽방상담소 새꿈나눔터에서 운동도 하고 반찬도 나눠 먹으면서 동네가 많이 좋아졌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예전에는 빨래를 하기 힘들고 목욕탕도 멀어 동네 전체에 악취가 풍겼지만, 센터에서 세탁과 목욕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정수현 서울역쪽방상담센터장은 “선풍기나 쿨매트 같은 혹서기 대비 물품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쪽방에만 갇혀 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쪽방촌 골목마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월요일 미술심리치료, 화요일 드로잉, 수요일 레크리에이션댄스’ 식이다. 그러나 내용을 아는 쪽방 주민은 많지 않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뿐더러, 읽을 수 있다 해도 독거 고령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센터에서 자활근로를 하는 주민 김기석 씨는 “쪽방촌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많다. 문화프로그램도 좋지만 한글교육 같은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석 씨는 동자동에서만 25년을 살았다. 쪽방촌 생활은 어느새 7년째. 이 동네에서는 그 나름 토박이다. 쪽방촌 주민 대부분과 잘 아는 사이인 덕에 자활근로 조장을 맡았다. 자활근로로 번 돈을 술과 담배에 허투루 쓰는 대신 헌책을 사서 읽는 ‘모범주민’이기도 하다. 그에게 올여름 소원을 물었다. “에어컨이 있으면 좋겠지만 전기료를 못 낼 테고, 그 대신 시원한 죽부인이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욕심도 소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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