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학교 주변 7성급 호텔 건립 허용 여전히 논란

대한항공 송현洞 땅 호텔 건립 희망…박물관 등 공적 용도 사용 목소리도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입력2014-05-12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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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주변 7성급 호텔 건립 허용 여전히 논란

    2013년 9월 25일 정부가 제3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해 학교 주변에 유해 부대시설이 없는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키로 했지만 관련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복궁 옆 송현동 땅에 지으려는 대한항공의 한옥호텔은 주변에 학교가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짓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위한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학교 주변에 유흥시설이 없는 호텔 건립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이해관계자 간 의견 차이가 큰 상황인데, 과연 솔로몬의 해법이 나올 수 있을까.

    가장 대표적으로 최근 거론되는 사례는 대한항공이 소유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땅(옛 미국대사관 숙소)에 계획된 7성급 호텔 건립 건이다. 논란 중심이 된 송현동 땅은 경복궁과 인접한 최고고도지구, 역사문화미관지구, 북촌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등 3개 학교가 인접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 위치한 점도 논란의 이유다. 대한한공 측은 해당 지역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더 편안하게 체류하면서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복합문화단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에 대한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우려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4월 2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등 4개 시민단체가 ‘재벌기업 특혜 위한 박근혜 정부의 편법적 학교 주변 호텔 건립 추진 시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문화적 공공가치의 훼손과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을 이유로 호텔 건립에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어 16일에는 ‘송현동 부지 호텔 건립 저지를 위한 NGO연대 토론회’를 열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학교 주변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정부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학교보건법과 청소년 보호법에 정면 배치된다는 주장이었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에 시민단체 반박

    대한항공 측은 이미 2010년 서울시 중부교육지원청에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해제를 요청했다가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 등을 이유로 불가통보를 받은 바 있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기나긴 소송 끝에 3심 모두 패소 판정을 받았다.



    ‘호텔건립추진안’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지난해 9월 28일, 박근혜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의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관광산업 활성화를 언급하면서다. “특급관광호텔에 대한 건립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조 회장의 말에 박 대통령이 “투자하려 해도 몇 년을 못 하고 기다리는 것부터 뭔가 좀 해결책이 꼭 나왔으면 한다”고 화답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인 관광진흥법 개정안의 처리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6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논의 때 박명수 전문위원이 제출한 ‘관광진흥법 일부개정 법률안 검토보고서’에 그 취지가 설명돼 있다. 개정안에선 관광숙박업에 대한 사업계획의 승인 또는 변경 승인을 받은 경우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 환경을 저해하는 단란주점, 유흥주점, 사행행위장, 게임장 등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에 대해서는 학교보건법에 따른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서도 호텔을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관광숙박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개정안 상정의 이유다.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50m 지점(절대정화구역)까지는 음주 및 가무가 허용되는 유흥업소와 호텔, 여관, 여인숙 등 숙박시설, 당구장과 PC방 영업이 제한된다. 하지만 학교 정문으로부터 반경 200m 지점(상대정화구역)에는 심의만 거치면 이 같은 업소가 들어서는 데 문제가 없다. 특히 학교 인접 지역이 거주지역이 아닌 상업지역으로 분류되는 경우 청소년 유해시설이 학교와 인접해 있어도 별달리 규제할 근거가 없는 상태다. 심지어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각종 업소 및 불법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심의를 받지 않고 영업하거나 영업 자체가 금지된 유해업소를 불법으로 영업하다 적발된 건수가 334건에 달한다. 현재 논란이 되는 송현동 땅에 대해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대한항공 측 주장처럼 송현동 땅은 경복궁과 인사동, 북촌 등 서울의 역사·문화벨트로 부를 만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지만, 유흥업소나 숙박시설 등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대한항공이 바라는 대로 복합문화단지 건립이 이뤄질 경우 경복궁, 창덕궁, 인사동, 북촌 등 관광명소와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편의성 확대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이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의견이다.

    학교 주변 7성급 호텔 건립 허용 여전히 논란
    해당 학교 학생들도 불안

    서울YMCA 이은대 청소년활동부 지도자는 “호텔 내 유흥시설 설립을 규제한다 해도 인근 유흥시설이나 오락시설을 이용하려는 호텔 이용객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근 인사동이나 북촌 등에 유해상권이 형성될 개연성이 농후해진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내 중고교생의 하교시간이 유흥시설이 활발히 영업하는 시간대인 저녁 8~10시인 만큼 청소년의 안전에도 상당한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이라며 “호텔 건립에 따른 피해가 단순히 인근 학교 청소년의 학습권이나 건강권 침해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호텔 건립에 대한 인근 학교 학생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앞 호텔 건립 추진에 대한 해당 학교 학생들의 인식을 조사하려고 4월 9일 서울YMCA 청소년클럽 정책팀 소속 학생 4명이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앞에서 실시한 스티커 붙이기 방식의 현장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학생 387명 가운데 317명(82%)이 반대했고 70명(18%)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반대 의견으로 주를 이룬 것은 학습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관광객이 많아지면 위험에 노출될 개연성이 높아서 등이었다. 반면 찬성 의견은 멋있을 것 같아서, 곧 졸업이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어서, 연예인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등의 내용이었다.

    백영현 덕성여중 교장은 “학교 주변은 고급호텔과는 거리가 먼 서민 주거지역이다. 떡볶이집이 4개, 라면분식점이 2~3개, 작은 액세서리 가게 몇 개가 전부인 이곳에 고급호텔과 부티크가 들어설 경우 학생에게 미칠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백 교장은 “우리 학교는 위치상 체육대회만 개최하려 해도 종로경찰서와 소방서, 심지어 1km 원거리에 있는 청와대에까지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불과 10m 거리에 있는 곳에 호텔이 건립될 경우 학생뿐 아니라 호텔 이용객 역시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제 나름의 논리를 펴고 있다. 현행 학교보건법이 이미 30여 년 전 제정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항변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재의 특급호텔은 수준 높은 문화여가생활 공간이자 국제회의 등이 열리는 비즈니스 공간, 가족의 건전한 레저 공간으로 법이 제정될 당시 호텔과는 개념부터가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송현동 땅이 가진 입지적 여건을 생각한다면 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 개념을 넘어선 서울시내 최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30년 전 제정

    학교 주변 7성급 호텔 건립 허용 여전히 논란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전통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영국 런던 브리지 쿼터 일대.

    한국관광협회중앙회(관광협회) 역시 4월 15일 성명을 통해 ‘유해시설 없는 관광호텔 건립 허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관광협회는 성명을 통해 “가라오케(노래방) 등 청소년 유해시설이 없는 경우 학교 주변에 고급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 등 외래관광객을 수용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 및 내수 진작 효과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2008년 이후 외래관광객이 매년 약 100만 명씩 증가함에 따라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관광업계 성장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으리란 판단이다. 관광협회 측은 “외국인 관광객 2000만 시대에 대비해 이제 더는 관광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관광호텔을 주거 및 교육환경을 저해하는 혐오시설 같은 유해시설로 보지 않아야 한다”며 관광진흥법 개정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관광명승지 내 호텔 건립 사례가 없다는 일부 전문가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한항공 측은 반박한다. 중국 상하이 ‘신톈디’, 베이징 ‘둥팡신톈디’, 일본 도쿄 ‘록폰기힐스’ 등 문화재 시설과 현대적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는 대단위 관광단지를 조성해 문화적 랜드마크로 육성한 사례가 있는 만큼 경복궁 옆 호텔 건립을 단순히 문화재 인접 숙박업소 건립 정도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신톈디는 석고문을 중심으로 근대 100년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하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신톈디는 상하이 전통 주거지역을 고급 상점,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해 상업지구로 개발한 북쪽 구역과 현대식 건물의 쇼핑타운, 레저 시설을 갖춘 남쪽 구역으로 나뉜다. 마오쩌둥의 고택과 쑨원 고택,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1차 중국공산당 대회가 열린 일대회지 등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물과 타임스스퀘어, 안다즈와 랑함 등 고급호텔, 상하이 뮤지엄 등 현대식 건물이 이곳에 위치한다.

    영국의 런던 브리지 쿼터 역시 도심재개발 사업으로 초대형 복합건물 ‘더 샤드’가 랜드마크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17~18세기 산업발전으로 번창했던 런던 브리지 일대 항구가 쇠퇴하면서 이 지역에 런던시청과 테이트 모던, 셰익스피어 글로브 등 주요 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이 지역에는 런던 브리지 외에도 서더크 대성당과 타워 런던, 타워 브리지 같은 전통 건축물이 자리하며, 버려진 부두창고 지역인 버틀러스 워프는 레스토랑과 고급 레지던스로 재개발돼 런던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초대형 건물 건립이 포함된 런던 브리지 쿼터 개발이 1998년 발표되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을 즈음해 서유럽 최고 높이인 지하 3층, 지상 95층 규모의 초대형 복합건물인 더 샤론이 문을 열었다. 더 샤론의 34~52층에는 세계적인 고급호텔 체인인 샹그릴라가 입주해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에도 황실정원을 바라보는 황궁 옆에 최고급 호텔인 도쿄 그랜드 팔레스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궁내성 산림담당의 사무실 자리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영호텔로 재건축하면서 호텔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인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과학기술관, 닛폰부도칸 등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다. 남쪽으로는 국회의사당과 법무성, 외무성, 재무성 등 정부기관이 자리해 현재 송현동 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입지 조건이라는 것이 대한한공 측 주장이다.

    송현동 땅의 활용 방안에 대한 결말을 예단하긴 아직 이르다. 그러나 공적 용도의 시설물 건립을 주장하는 이들의 발언이 늘어나고 있다. 최노석 관광협회 부회장은 “호텔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학교 주변 호텔 건립에 대한 규제 역시 완화돼야 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는 일이지만 학교 주변 50m 내 절대정화구역에까지 호텔 건립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해당 지역이 학교와 초인접한 만큼 박물관 등 입지 조건을 해치지 않는 다른 시설물 건립을 검토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최근 미디어스 기고를 통해 이 땅을 청소년공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청소년을 지키지 못한 사회적 참회의 하나로 청소년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사익과 공익 사이에서 어떤 지혜로운 해법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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