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7

2014.05.12

물방울무늬, 시련과 치유였구나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5-12 10: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철학자 니체는 저서 ‘우상의 황혼’에서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일본 화가 쿠사마 야요이는 이 문장의 산 증거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열 살 때부터 사물에 물방울무늬가 겹쳐 보이는 정신질환을 앓았다. 집에 있던 빨간색 식탁보의 꽃무늬가 물방울로 바뀌어 온 세계를 뒤덮는 환영을 본 게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딸을 바로잡겠다며 매질을 퍼부었고, 쿠사마는 눈앞 풍경을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며 홀로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강박적으로 그리고 또 그리는 사이, 빨갛고 노란 천연색 물방울이 반복되는 이미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일본 가가와현의 예술섬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노란 호박’과 ‘빨간 호박’이 바로 쿠사마의 작품. 극심한 고통을 유쾌하고 대중적인 예술로 승화한 그의 작품은 1989년 쿠사마가 환갑이 된 해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해 뉴욕현대미술관이 쿠사마를 조명하는 개인전을 마련했고, 1993년엔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됐다. 이후 그는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열고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하는 인기 작가가 됐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쿠사마 야요이, A Dream I Dreamed’전은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대표작 ‘호박’을 비롯해 조각, 설치, 회화, 영상 등 120여 점이 전시된다. 거대한 설치작품 ‘튤립에 대한 내 모든 사랑을 담아 영원히 기도한다(With all my love for the tulips, I pray forever)’ 등 무수히 반복되는 물방울이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들과 회화 시리즈 ‘나의 영원한 영혼(My Eternal Soul series)’ 등이 눈길을 끈다. 관객이 새하얀 방 안에 들어가 물방울무늬 스티커를 벽에 붙임으로써 공간을 변형해나가게 하는 작품 ‘소멸의 방(Obliteration Room)’도 인상적이다.

    쿠사마는 올해로 여든다섯 살이 됐지만, 유년기부터 그를 괴롭힌 정신질환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는 1977년부터 일본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살면서 치료와 창작을 병행 중이다. 그럼에도 전시작 전체에서 느껴지는 발랄함은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시련을 겪음으로써 더욱 강해진 화가가 그 힘으로 대중에게 치유의 손을 내미는 듯하다.



    물방울무늬, 시련과 치유였구나

    ⓒYayoi Kusama

    물방울무늬, 시련과 치유였구나

    ⓒYayoi Kusama

    이번 전시는 지난해 대구미술관 기획전을 시작으로 상하이, 마카오, 타이베이, 뉴델리 등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주요 도시 순회전의 일부다. 6월 15일까지, 문의 1544-1555.

    1 Pumpkin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urethane paint, metal

    Great Gigantic Pumpkin Φ260×H250cm, Pumpkin Φ200×H205cm, Pumpkin Φ130×H125cm,

    2 With all my love for the tulips, I pray forever

    metal,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urethane paint, stickers dimensions variable, 2013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