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2014.04.28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투자 실패란

은퇴 자금도 대형 사고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 초래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4-04-28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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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투자 실패란
    1941년 미국의 한 손해보험회사에 근무하던 안전기사 H. W. 하인리히는 노동 관련 재해사건을 조사하다 일정한 통계 법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큰 사건 1건이 발생하기 전 찰과상 정도의 가벼운 재해가 29건 있었으며, 또 그 뒤에는 식은땀이 흐를 것 같은 상황이 300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대형 재해를 막으려면 조금이라도 가슴 철렁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중대한 사고의 전조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하며, ‘1 : 29 : 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실패학의 창시자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도 ‘실패는 확률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실패학에서 실패란 ‘어떤 행위의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거나 기대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을 말한다. 하타무라 교수는 치명적인 실패가 일어날 확률은 300분의 1이고, 작은 실패가 일어날 확률은 300분의 29라고 강조한다. 큰 실패 뒤에는 작은 실패가 29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확률의 바다’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확률의 바다에 떠 있는 큰 빙하의 일부분만이 실패라는 이름으로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엄격히 구분해야 할 실패의 두 범주

    그리고 대형 사건 뒤에는 반드시 변명이 따른다고 한다.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라든가,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말로 마치 불의의 사고인 양 변명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타무라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대한 사고가 나기 전 반드시 어떤 전조가 있었을 것이며, 그것을 감지했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타무라 교수는 결국 모든 실패는 인간의 실패이며,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 없기에 반드시 실패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대형 재해뿐 아니라 일상과 그 일상의 한 부분을 이루는 돈이나 투자와 관련한 부분에도 실패는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실패라는 한 단어에 뭉뚱그려 넣지만 실패에는 해도 되는 실패가 있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패가 있다. 이 둘을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랑에 실패한 남성이 있다고 치자. 변심한 여성에게 연락해보지만 온통 모르쇠로 일관한다. 드문 경우이긴 해도 분노가 극에 달한 남성은 살인을 하기도 한다. 최근 젊은 층의 연애 폭력이 문제가 되는데, 이는 실패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 커서라고 한다. 하지만 평균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연애에 실패해도 시간 흐름에 따라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남성은 사랑과 인생을 배워나간다. 사랑과 관련한 실패는 되먹임(피드백)을 통해 발전해가고, 길게 보면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반면 단 한 번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실패도 있다. 항공기와 열차 같은 운송 수단,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의료 분야, 은퇴 자금처럼 평생 모은 돈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이런 실패는 긍정적인 되먹임이 불가능하다. 사건 발생 자체가 파국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패 범주에 속한다.

    회의주의적 태도·절차·기본값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투자 실패란

    4월 16일 오전 8시 58분경 전남 진도군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구조 신호를 보낸 지 1시간 30여 분 만에 침몰하고 있다.

    이 두 종류의 실패는 필요한 정신자세도 다르다. 전자는 긍정적인 자아감이 중요하다. 이는 인간 본성에도 맞는다. 사람은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 대부분 자기 능력이나 지식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운전기술을 평가할 때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자리하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0%가 자신의 운전기술이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 남편과 아내를 대상으로 ‘집안일을 몇 %나 하고 있느냐’는 질문의 경우 남편과 아내의 응답을 모두 합했더니 100%가 아닌 120%가 나왔다. 부부 둘 중 한 명, 혹은 두 명 다 자신이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과신은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더 좋게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성공학 강사의 얘기처럼 자기 미래를 그려놓고 매일 아침과 저녁 그것을 쳐다보며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다 보면, 실제 몇몇은 성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갖는 부정적 측면의 예는 경험이 없는 사업에 뛰어들어 대박 꿈을 꾸거나 주식을 지나치게 사고파는 것 등이 해당한다.

    대형 재해나 은퇴 자금 같은 범주의 실패에서 자기 과신은 재앙으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이때는 회의주의적 태도, 절차와 과정의 명시, 그리고 올바른 기본값 설정이 중요하다. 일류 투자자 중엔 의사결정을 할 때 조직 내에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두는 경우가 있다. 악마의 변호인이란 특정 주제에 대해 반대 논리를 설파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모두가 찬성할 때 반대 논거를 내며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구실을 한다. 악마의 변호인을 두는 것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투자를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게임으로 바라본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펀드 매니저 가운데 한 명이던 고(故) 존 템플턴 경은 투자에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전에 주식 매입 절차와 과정을 만들었다. 평소 투자가 유망한 종목의 리스트를 작성해뒀던 것. 이는 해당 주식이 자신이 세운 낮은 가격 기준에 도달하면 매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못 믿어서 주식 브로커에게 자신에게 묻지 말고 매입하라고 얘기해뒀다. 주가 변동에 자기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처럼 절차와 과정의 명시는 일종의 매뉴얼 같은 구실을 한다.

    기본값 설정은 중요하지만 실제 행동에선 가장 무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예를 들어 119에 전화를 걸어 화재 신고를 하면 소방대원들은 무조건 출동한다. 설령 장난 전화라 해도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출동한다’가 기본값이다. 기본값 설정이 안 돼 있거나 잘못돼 있으면, 실제 사건이 벌어진 후에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성공적인 투자자들은 가격이나 투자 비중 등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두지만 기본값을 설정해두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회의주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 관리 및 감독도, 제대로 된 절차와 과정의 명시도, 기본값도 모두 엉터리였거나 아예 없었다. 실패를 관리할 수 없는 사회나 시스템은 삶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 그 시스템을 만든 인간이 재앙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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