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6

2014.02.24

천해성 밀어낸 실세는 도대체 누구?

청와대 안보분야 파격 결정 숨은 손 궁금…정책 코드 맞춰 일할 실무자들 당혹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4-02-24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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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해성 밀어낸 실세는 도대체 누구?
    “예전에는 (청와대에서) 예상치 못한 결정이 나와도, 시간이 흐르면 그 나름 ‘정설’이 만들어지게 마련이었다. 관련 부처 실무자들이 그림을 맞춰보면 이유는 무엇이고 결정을 주도한 핵심인사는 누구인지 윤곽이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다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맥락이나 배경이 오리무중인 일이 잦다.”

    2월 중순 외교안보부처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천해성 미스터리’를 두고 한 당국자가 남긴 말이다. 신설된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됐던 천해성 전 통일부 정책실장이 일주일 만에 임명 철회 통보를 받고 친정으로 돌아간 사건이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조차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 또 다른 관련 부처 당국자는 “‘윗분들 뜻’을 계속 살피도록 긴장하게 만들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와 사무처 신설로 요약되는 국가안보실 개편 방안이 발표된 이래, 사무처장을 겸임하는 안보실 1차장과 안보전략비서관에 누가 기용될 것인지는 관계 부처의 최대 관심사였다. 청와대가 각 부처에 후보 추천을 요청하며 제시한 기준은 ‘1차장은 차관급, 안보전략비서관은 1급 이상 경력, 군 출신은 3성 이상’이었다는 후문. 이후 부처별 명단에 누가 올랐는지, 외부에서는 어떤 이가 의욕을 보이는지 갖가지 소문이 한 달 이상 이어졌다.

    전격 철회 여전한 미스터리

    각 부처에서는 이를 ‘영향력 확대’의 기회로 생각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부처 간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노무현 정부 NSC의 전례를 복기하며 ‘머릿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 이미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요직을 상당수 차지한 국방부나 외교부에 비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의 움직임이 적극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인선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당초 안보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인도와 스위스 국빈방문을 위해 출국한 1월 15일 전에 인선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전용기 탑승시점까지 최종 재가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주요 직위 내정자를 발표한 것은 개편 발표 후 40여 일이 지난 2월 2일. 인선안이 대통령 책상 위에서 2주 이상 머무른 셈이다.

    발표만 놓고 보면 결론은 외교부의 완승이었다. 주철기 수석이 겸임하는 2차장에 신임 김규현 1차장 역시 외교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NSC 사무차장을 겸임하게 된 김홍균 정책조정비서관에 김형진 외교비서관 등 기존 인물까지 포함하면, 청와대 안보라인의 1급 이상 10개 직위 가운데 네 자리에 외교부 출신이 임명된 셈이었다. 특히 정책조율의 주요 경로인 NSC 사무처장과 차장에 모두 외교부 출신이 포진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통일부로서도 천해성 전 실장 기용이 나쁘지 않았다. 대통령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홍용표 한양대 교수가 통일비서관에 임명되면서 그간 청와대 안보라인에 통일부 출신은 한 사람도 기용되지 못했기 때문. 류길재 장관 역시 학자 출신임을 감안하면 안보정책 고위 조율과정에 참석하는 ‘오리지널 통일부 멤버’는 전무했다. 이런 상황에서 천 전 실장이 거시 외교안보 비전 마련을 책임지는 안보전략비서관에 기용되다 보니, 돌파구가 열린 셈이었다.

    ‘제 몫’을 찾지 못한 것은 국가정보원이었다. 정부 출범 당시에 이어 안보실 개편 과정에서도 청와대 안보라인 주요 직위를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했다. 전·현직 고위급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되던 당초 분위기와 다른 결론이었다. 이 무렵 한 당국자는 “댓글 사건과 개혁 논란 등으로 국정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애초부터 외부 전문가 필요”

    천해성 밀어낸 실세는 도대체 누구?

    2013년 6월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 준비 실무대표단 회의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들어서는 천해성 당시 통일부 정책실장.

    2월 12일 천 전 실장의 임명 철회를 발표하며 청와대가 밝힌 사유가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이러한 배경과 관계가 깊다. 이날 민경욱 대변인은 “(천 전 실장이) 통일부의 필수 핵심요원으로 가장 중요한 인재여서 통일부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대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보실 입성 여부가 해당 부처 영향력의 척도처럼 여겨지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겨우 확보한 ‘교두보’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김장수 안보실장을 비롯한 ‘군 출신 강경파 그룹’이 대북 유화파인 천 전 실장을 밀어낸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당국자 대부분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애초 인사안을 만든 책임자가 바로 김 실장이므로 스스로 이를 뒤집는 건 심각한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이 당초 박 대통령은 천 전 실장의 업무능력에 두터운 신뢰를 갖고 있었다는 게 임명 발표 당시 정부 안팎의 설명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불과 일주일 사이에 대통령의 뜻이 바뀐 셈이다.

    천해성 밀어낸 실세는 도대체 누구?
    반면 청와대 관계자들은 “애초부터 장기 전략을 입안하는 안보전략비서관에는 관료 출신보다 참신한 시각을 가진 외부 전문가를 임용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선의의 해석’인 셈이다. 천 전 실장을 대체해 내정된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은 2007년과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모두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도 일했다. 공학도 출신으로 북한 핵문제와 군사문제가 주 전공 분야다.

    한 정부 당국자는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장기 안보전략 주안점은 천 전 실장의 전문 분야인 남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게 이번 결정의 핵심 메시지”라고 말했다. ‘통일부의 활동공간이 커지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이러한 판단만으로 인사 철회라는 무리수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천 전 실장 개인에 대한 비판을 함께 보고해 철회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천해성 밀어낸 실세는 도대체 누구?

    2월 12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대통령국가안보실 1차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북한 측 수석대표인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왼쪽에서 세 번째)이 회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월 12일과 14일 진행된 남북 고위급 접촉에 통일부 대신 청와대가 직접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한 정부 당국자는 “대북 협력 기조가 강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통일부가 보수정권에서 무슨 결과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질시가 본뜻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당국 간 회담이나 개성공단 실무접촉에서 느낀 ‘실망감’이 깊이 반영된 결과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안보부처 관계자의 말이다.

    “정작 흥미로운 대목은 과연 이러한 논리를 대통령에게 제시한 인물 혹은 라인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통령 본인이 일주일 만에 생각을 바꿨을 리는 없고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움직인 거 아니겠나. 진짜 미스터리는 ‘왜?’가 아니라 ‘누가?’에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안보 분야 주요 직위 인사문제가 비슷한 논란에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최윤희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으로 발탁되는 과정에서도 국방부는 사실상 배제된 상태에서 발표가 진행됐다. ‘비(非)육군 출신 최고지휘관’이라는 파격적 아이디어를 대통령에게 제시한 이가 누구였는지는 현재까지도 뚜렷한 정설이 없다. ‘내 작품이었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천해성 밀어낸 실세는 도대체 누구?

    대통령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된 전성훈 통일연구원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누가?’를 둘러싸고 추측이 난무하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이 자문한다는 원로그룹이나 의원 시절부터 보좌한 ‘실세 비서진 3인방’ 등 갈래도 다양하다. 한 안보부처 관계자는 “청와대 결정의 배경이나 주체가 실무부처에서 입길에 오르는 건 달리 말해 ‘코드’가 확산되는 일종의 절차다. 그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공유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투명하지 않으니 실무자들로서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부 수난시대’의 모습

    고위직 인선을 끝마친 국가안보실은 2월 중순 현재 행정관급 실무진 구성작업을 진행 중이다. 1차장 휘하에서 일할 사무처 요원 약간 명을 새로 임용하고, 국제협력비서관실이 개편된 정책조정비서관실 등 기존 조직에도 인력 보강이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요가 가장 많은 것은 신설되는 안보전략비서관실로, 5~10명이 둥지를 틀 것으로 보인다. 전성훈 원장 내정과 함께 외부 전문가 출신이 상당수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는 이 과정에서도 각 실무부처의 추천을 받아 인선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통상 파견 행정관의 경우 서기관·사무관급이 다수를 차지하는 데 비해, 통일부의 경우 6급 직원이 포함됐다는 소식이다. 각 부처 파견 행정관의 직급 차이는 정책조율 과정에서의 발언권 차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실무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시각. 이 역시 통일부 역할 축소의 한 단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부 수난시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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