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공주는 가고 마녀가 왔다!

연애컨설팅과 특강에 몰리는 우리 시대 청춘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오소영 동아일보 인턴기자, 한양대 교육공학과 졸업 pangkykr@naver.com

    입력2014-02-17 0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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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2030 사이에서 ‘마녀’는 더는 화형시킬 대상이 아니다.

    현란한 ‘작업 기술’을 발휘해 연애 주도권을 잡고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너도나도 ‘마녀’가 되기를 꿈꾸는 세상. ‘연애 기술’을 전파하는 TV 프로그램과 대중 강연이 봇물을 이루고, 연애 한 번 못 해본 ‘모태솔로’는 안타까움 혹은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쏟아지는 연애 정보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 취재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현대 사회의 연애 풍속도를 탐색했다.




    공주는 가고 마녀가 왔다!
    “여자가 스킨십을 먼저 하면 남자가 꺼릴 거 같죠. 오해예요. 너무 진하지 않은 가벼운 스킨십은 오히려 좋아요. ‘여기 뭐 묻었네요’ 하면서 어깨를 살짝 만지거나 손을 스치면 분위기가 달라지죠. 기본적으로 남자의 말과 행동에 호응해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거침없이 ‘작업 기술’을 전수하는 방희정(35) 씨는 자칭 연애 고수다. 연애컨설팅업체 ‘러브멘토 제니의 연애상담소’에서 여성에게 연애 방법을 조언하는 컨설턴트로 일한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만나온 남자만 70여 명에 이른다는 조수아(24) 씨도 연애 기술면에선 방씨에 뒤지지 않는다. 그의 직업은 ‘픽업 아티스트’. ‘유혹의 기술’을 이론화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신종 직업 종사자다. 176cm 늘씬한 키에 예쁜 외모를 가진 조씨는 고교 시절 남자친구의 폭력과 집착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이후 남자를 향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연애 기술 습득에 나섰고, 한 남성 픽업 아티스트에게 코치받은 뒤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고수’가 됐다고 한다. 조씨는 “원래 픽업 아티스트는 거의 남자였는데 나쁜 남자에게 상처받은 여자가 자신을 방어하고자 연애 기술을 배우면서 점차 여자 픽업 아티스트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연애를 잘하고 싶어 하는 일반 여성이다. 과거 정조를 지킨 여인이 열녀비를 받았다면, 이젠 연애 잘하는 여자가 추앙받는 시대다. 여성이 연애 전면에 나서면서, 최근엔 연애 주도권을 잡고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여자를 일컫는 ‘마녀’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연애 잘하는 여자가 ‘마녀’

    공주는 가고 마녀가 왔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면서 연애와 사랑도 주도적으로 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작은마녀’를 운영하는 남성 픽업 아티스트 박현우(31) 씨는 “이곳은 멋진 연애를 원하는 ‘마녀’가 모이는 곳”이라며 “2012년 처음 카페를 만들었을 때는 회원 수가 3명에 불과했는데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지금은 6000명이 넘는다”고 소개했다. ‘작은마녀’ 회원들은 카페 안에서 자기 연애 경험을 공유하고 ‘작업 기술’을 갈고닦는다.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듣기도 한다. 박씨는 “한 달에 네 번 세미나를 여는데 평균 20명쯤 참석한다”고 했다. 참가비는 20만 원이다.

    한 달 동안 연애 기술을 집중적으로 알려주는 수강료 135만 원의 ‘종합반’ 프로그램도 있다. 박씨에 따르면 이 과정 역시 수강생이 10명이 넘는다. 종합반에서는 신청자의 기본 성향을 알려주는 심리테스트를 한 뒤 최면대화법, 유혹대화법 등을 가르쳐주고, 클럽 등에서 직접 남자를 만나게 하는 ‘실전 트레이닝’도 해준다고 한다.

    이처럼 ‘연애컨설팅’을 표방하는 업체는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웨딩업체 듀오의 ‘대표 연애코치’ 이명길(35) 씨는 “2004년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연애코치가 2~3명이었는데 지금은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만 50명은 족히 된다”고 말했다.

    연애 기술을 전파하는 책과 TV 프로그램도 인기몰이 중이다. ‘마녀’라는 단어를 세간에 유행시킨 종합편성채널 JTBC ‘마녀사냥’은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씨 등 ‘마녀’들이 자신의 연애 기술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구성으로 인기 고공행진 중이다. 종합편성채널에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이 4%에 육박한다.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이 케이블채널 tvN에서 진행하는 연애 상담 프로그램 ‘김지윤의 달콤한 19’도 최근 케이블채널, 위성TV, IPTV 통합시청률 조사에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이 프로그램의 주된 시청자는 젊은 여성. 이들이 이처럼 돈과 시간을 들여 ‘연애 기술 습득’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연애도 여성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스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수연(54)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센터장은 “요즘엔 남자도 여자를 고를 때 조건을 많이 본다. 외모, 직업, 집안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아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연애를 잘하는 것은 곧 좋은 스펙을 갖췄다는 증거처럼 여겨져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친구 사이에서 ‘연애 멘토’로 통하는 직장인 진미연(25·가명) 씨가 그런 사례다. 진씨는 “그동안 의대생부터 대기업 직장인까지 두루 만나봤다.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이 나를 찾아와 상담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밝힌 연애 기술은 “어설픈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지 않고, 남자에게 받을 건 받는 대신 줄 건 주는 것”이다.

    연애컨설팅업체 카르마의 김은영(41) 실장은 “예전엔 여성이 남성보다 경제적으로 하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엔 서로 동등하거나 심지어 여성이 더 우월하기도 해 여성이 주도적으로 연애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픽업 아티스트 조수아 씨도 남자 수십 명을 사로잡은 비법으로 ‘첫째 더치페이, 둘째 주도적인 행동, 셋째 미모와 능력’을 꼽았다. 그는 “남자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데 ‘얻어먹을’ 필요가 없다. 또 남자가 뭘 해줄 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다. 내가 미모를 가꾸고 능력을 키우면 옆에 서는 사람의 가치가 저절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애 능력이 스펙으로 여겨지면서 연애에 서툰 이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서 만난 직장인 김미영(가명) 씨는 “개그우먼 안선영 씨가 쓴 연애지침서 ‘하고 싶다 연애’를 사러 왔다”며 “대기업에 다니고, 얼굴이 못생긴 것도 아닌데 연애가 잘 안 된다. 늘 자신만만하게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안선영 씨의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대학가에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애 특강도 줄을 잇는다. 2012년 10월 성균관대에서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씨의 특강을 들었다는 박혜진(25·가명) 씨는 “주위에서 ‘사지 멀쩡한 애가 왜 혼자 지내느냐. 연애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요새는 ‘모태솔로’(태어나서 한 번도 이성교제를 하지 않은 이)가 안타까움이나 비웃음 대상이 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여성이 적극적으로 연애전선에 나서면서 남성도 달라지고 있다. 남성 전문 연애컨설팅업체 메이스 아카데미의 메이스(34) 대표는 “적극적인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맞춰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남자가 많다. 연애 상담 과정에 등록하는 이가 한 달에 30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공주는 가고 마녀가 왔다!

    2030을 중심으로 ‘연애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테마로 한 TV 프로그램, 책, 대중강연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

    자연스러운 연애시대 종말

    문제는 연애 기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달리 보면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연애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세태를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순간 상대를 사로잡는 방법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는 반면, 깊이 있는 관계에 대한 성찰은 사라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부는 ‘힐링’ 열풍이 그러한 외로움과 공허함의 반증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cm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kg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됐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2007년 부인과 동반 자살한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담은 책 ‘D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이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한날한시 죽는 길을 택한 고르의 편지는 세계 각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시작은 ‘작업’과 ‘기술’일지라도 종내는 이러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오늘 ‘마녀’들은 찾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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