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2

2014.01.20

‘디즈니 왕국’ 그 명성 그대로

크리스 벅 감독의 ‘겨울왕국’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1-20 10: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디즈니 왕국’ 그 명성 그대로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자원입대해 미국 적십자사 구호부대 소속으로 프랑스 전선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른 10대 후반 청년은 미술에 대한 재능과 열의로 한 광고 회사에서 1~2분짜리 애니메이션 만드는 일을 첫 직업으로 삼는다. 이후 자신이 직접 작은 회사를 차려 신문 풍자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판다.

    회사가 재정문제로 파산한 후엔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 필름을 갖고 서부에 사는 형을 찾아가 할리우드 영화사들 문을 두드린다. 복잡한 비즈니스 생리에 적응하지 못해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지만, 마침내 청년은 자기 이름을 내건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차리게 된다. 때는 1923년 10월이었고, 당시 22세 청년 이름은 바로 월트 디즈니다. 그가 형 로이와 함께 세운 회사 ‘디즈니 브라더스 카툰 스튜디오’가 후일 ‘월트 디즈니사’(디즈니)로 개칭되고, 지금은 자본금 약 400억 달러와 자산가치(2012년 기준) 749억 달러를 가진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됐다.

    지난해는 디즈니가 설립 90주년을 맞은 해였다. 이를 기념해서인지 디즈니로선 뜻 깊은 작품을 잇달아 내놓았다. 2013년 10월 톰 행크스가 월트 디즈니 역을 맡은 ‘세이빙 미스터 뱅크’가 북미지역에서 개봉했고, 뒤이어 11월엔 3차원(3D)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극장에 걸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3D 작품 가운데 역대 10위, 애니메이션 중 역대 7위 성적을 기록했으며, 개봉 후 7주간 흥행 1~2위를 오르내리며 디즈니사 이름으로 제작한 영화 중 사상 최고 매출을 올렸다.

    한국엔 약 두 달 만에 상륙한 ‘겨울왕국’은 ‘디즈니 왕국’의 ‘위엄’을 완벽하게 드러내고 요약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은 아렌델 왕국에 사는 공주 ‘안나’(목소리 크리스틴 벨 분)와 언니 ‘엘사’(이디나 멘젤 분)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우애 깊은 자매였지만 엘사에겐 동생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다. 바로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리는 마법의 힘이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이 능력 때문에 동생뿐 아니라 세상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엘사는 어느 날부터인가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궁전 안 자기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간다.

    왕과 왕비가 사고로 죽고, 어느덧 성장한 엘사는 왕위를 이어받아 여왕이 되지만, 즉위식 날 철없는 안나가 축하사절로 온 이웃나라 왕자 ‘한스’에게 빠져 하루 만에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크게 화를 낸다. 그러자 엘사의 마법이 세상을 얼려버리고, 여왕은 자신이 가진 저주받은 능력에 대한 자괴감으로 외딴 산꼭대기로 도망가 자신만의 얼음성을 짓고 은둔한다. 안나는 도망간 언니를 찾고 겨울이 계속되는 왕국에 여름을 되찾으려고 모험을 떠난다.



    긍정적이고 씩씩하며 활력과 사랑이 넘치고 장난기 많은 아가씨 안나와 그를 돕는 산 사나이 ‘크리스토프’, 감초 조연인 눈사람 ‘올라프’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끊임없이 웃음과 액션을 선사한다. 눈과 얼음, 오로라의 세상을 구현한 영상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절정인 건 음악이다. 목소리 주요 배역을 모두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가 맡았다. 우리말 더빙판에서도 정상급 뮤지컬 스타들이 노래를 불러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겨울왕국’엔 또 하나 숨은 ‘걸작’이 있다. 영화 본편에 앞서 상영하는 단편 ‘말을 잡아라!’다. 손으로 작업한 흑백 릴 필름과 3D 컴퓨터그래픽을 결합한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생전 월트 디즈니 육성을 찾아내 58년 만에 대사로 되살려냈다. 본편 이상으로 재미있으며, 누구라도 디즈니 전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값비싼 애피타이저다.

    ‘디즈니 왕국’ 그 명성 그대로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