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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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이 빚은 설국에 혼저옵서예

한민족의 영산이자 빼어난 세계자연유산…폭설 후 펼쳐진 모습 장관

  •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입력2014-01-13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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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이 빚은 설국에 혼저옵서예

    거대한 얼음호수로 변한 사라오름 굼부리. 눈꽃 가득한 얼음 위를 걷는 맛이 일품이다.

    제주 한라산은 성산일출봉, 거문오름과 더불어 국내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학술적, 경관적, 생태적 아름다움과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특히 한라산은 우리나라 희귀식물 자원의 보고다.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특산식물만 70여 종이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 4000여 종 가운데 1800여 종이 한라산 자락에서 자란다. 그중 구상나무는 학명(學名)이 Abies Koreana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한다. 1600~1800m 고지에 형성된 장대한 구상나무숲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광을 연출하는 한라산의 최고 보물이다.

    눈을 머리에 인 한라산 자태

    한라산은 강원 대관령과 경북 울릉도 나리분지 못지않은 다설 지역이다. 11월 중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이듬해 3월까지 내리면서 쌓인다. 그래서 제주 어느 곳에서나 머리에 눈을 인 한라산을 볼 수 있고, 그 품에서 설국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제주 겨울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몇 차례 없을 정도로 따뜻하지만, 1950m 높이 한라산엔 툭하면 폭설이 쏟아진다. 2005년 12월과 이듬해 1월 사이엔 2m20cm라는 기록적인 적설량을 보이기도 했다. 폭설이 내린 뒤 맑게 갠 한라산 풍광은 히말라야와 알프스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성판악~정상~관음사 코스가 유일하다. 거리는 19km, 8시간 정도 걸리는 고된 길이다. 겨울 한라산 날씨는 대개 아침까지 구름 속에 잠겨 있다 시나브로 구름이 걷힌다. 따라서 운해를 볼 확률이 아주 높다. 남한 최고봉 백록담 꼭대기에 올라 운해가 깔린 모습, 그리고 푸른 바다가 일렁거리는 풍광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호연지기가 절로 솟는다.



    神이 빚은 설국에 혼저옵서예

    한라산 동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백록담. 눈과 얼음 세상인 백록담 안으로 태초 시간이 흘러간다.

    제주에서 5·16도로를 넘어 서귀포 가는 버스는 주말이면 등산 버스가 된다. 오전 6시 30분 첫차는 자리 잡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 출발점은 성판악. 먼저 성판악휴게소에서 해장국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다. 식사를 끝낸 사람은 서둘러 중무장을 한다. 한 건장한 사내는 밸러클라버를 뒤집어쓰고, 그 위에 털모자를 눌러쓴다. 그다음 스패츠를 차더니, 쇠붙이가 주렁주렁 달린 아이젠으로 행장을 마무리한다.

    “실내에서 아이젠을 차면 어떡해.” 어기적어기적 걸어나가는 그의 뒤통수로 아주머니 지청구가 날아간다.

    날카로운 이빨이 포근한 눈이불을 찍는다. 뽀득~ 빠득~ 아이젠을 찬 신발이 눈을 밟는 소리가 요란하다. 순둥이 눈은 얼마나 아플까. 뒤에서 빠른 속도로 한 무리 산꾼이 맹렬히 다가온다. 잠시 서서 그들을 먼저 보낸다. 그들 발소리가 시베리아 눈밭을 달리는 기차 같다.

    구름이 무겁다. 발걸음도 더디다. 가지에 매달려 축 처진 굴거리나무 잎사귀가 거꾸로 매달린 박쥐처럼 보인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길은 삼나무 터널을 통과한다. 가지에 풍성하게 눈이 쌓였다. 땅만 보고 걷던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돈다.

    어느덧 사라오름 갈림길. 코스가 반대편 관음사로 넘어가기 때문에 사라오름을 구경하고 가는 것이 순서다. 나무데크 따라 걷는 길 주변은 온통 설국이다. 오르막이 끝나면서 사라오름의 거대한 굼부리가 나타난다. 찰랑찰랑 넘기던 굼부리 안 물이 꽝꽝 얼어 드넓은 얼음판으로 변했다. 굼부리를 감싸는 나무들은 막 피어난 듯 눈꽃이 만발했다.

    나무데크 길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굼부리 가운데를 걸어간다. 얼음판을 걷는 맛이 신난다. 오름 반대편으로 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서자 시나브로 무거운 먹장구름이 풀리기 시작한다. 구름 속에서 한라산 정상이 반짝 나타나고, 반대편 멀리 서귀포 앞바다가 아스라하다. 사라오름을 내려와 진달래대피소 가는 길, 드디어 해가 났다. 빛을 품은 눈꽃이 더욱 풍성해 보인다.

    얼음호수로 변한 사라오름 굼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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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관릉 일대 구상나무숲이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했다.

    예상대로 진달래대피소는 북적북적하다. 컵라면 사는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라면을 포기하고 김밥으로 만찬을 즐긴다. 머리에 눈을 인 광활한 구상나무숲을 바라보며 차가운 김밥을 꼭꼭 씹는다. 오래오래 꼭꼭 풍경을 씹는다. 옆에서 솔솔 풍기는 라면 냄새가 향기롭다.

    서둘러 진달래대피소를 떠난다. 꾸물거렸다가는 줄을 서서 정상에 오를 판이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계단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앞사람 궁둥이와 땅만 번갈아 쳐다보며 걷다가 잠시 멈춰 돌아보면 “아~”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구름 바다가 발아래 깔렸고, 그 너머 푸른 바다가 아스라하다. 시나브로 왼쪽 구름 장막이 무너지더니 서귀포 앞바다 범섬이 나타난다.

    이윽고 대망의 백록담 정상. 눈과 얼음 세상인 백록담 안으로 태초 시간이 흘러간다. 백록담 전설 속 흰 사슴은 어디에 갔을까. 펑퍼짐한 정상 일대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정상에서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드물다. 길이 성판악보다 험한 탓이다. 반대편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서면 흰 괴물이 나타난다. 괴물은 구상나무에 눈이 쌓인 기괴한 모습을 일컫는다.

    구상나무숲 사이로 이어진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구름 바다 사이로 제주항 일대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그 조망은 백록담과 장구목오름이 펼쳐진 전망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관음사 코스를 택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지복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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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관음사로 내려가는 길의 전망대. 눈을 뒤집어쓴 구상나무숲이 장관이며, 구름 커튼이 열리면 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태곳적 시간이 흐르는 백록담

    전망대에서 내려와 구상나무 눈꽃터널을 통과하면 왕관릉 꼭대기다. 여기서 급경사를 내려가면 옛 용진각대피소 터에 이른다. 볕이 잘 드는 이곳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쉬었다 가던 곳이라 온기가 있다. 대피소 건물은 태풍으로 부서져 아예 철거됐다. 현무암 돌로 단단하게 지었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현수교를 건너면 개미등 아래를 지난다. 뒤를 돌아보니 왕관릉이 비로소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왕관릉과 작별을 고하면 삼각봉대피소에 닿는다. 삼각봉대피소 앞에서 보면 삼각봉이 알프스의 작은 마터호른처럼 우뚝하다.

    이제 길고 지루한 숲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눈을 뒤집어쓴 웅장한 솔숲을 지나면 탐라대피소를 만나고, 산죽길이 꼬리를 문 뱀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구린굴을 지나면 비로소 관음사주차장이 나타나면서 산행이 마무리된다. 관음사주차장 옆 공터는 학창 시절 처음 제주를 찾았을 때 야영했던 곳이다. 그날 밤 한라산 위로 떠올랐던 별들이 아직도 내 안에서 총총하다.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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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두식당의 방어회정식.

    ● 한라산 산길 가이드

    한라산 등산 코스는 크게 두 가지, 정상 코스와 윗세오름 코스로 나눌 수 있다. 윗세오름 코스는 어리목~만세동산~윗세오름~선작지왓~영실의 8.4km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아이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정상 코스는 성판악∼사라오름~정상(동봉)~삼각봉대피소~관음사의 19km로, 8시간 정도 걸린다. 거리가 멀고 힘들기 때문에 경험자와 동행할 것을 권한다. 장비는 스틱, 아이젠과 스패츠를 갖춰야 하고, 차가운 바람에 대비해 보온 의류도 챙긴다.

    ● 교통

    김포, 청주, 부산 등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부산, 완도 등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064-753-1153)에서 어리목(영실) 가는 버스는 08:00~15:00, 1일 7회 다닌다. 성판악(5·16도로 경유 서귀포행) 가는 버스는 06:00부터 수시로 있다. 하산 지점인 관음사에서 제주대로 가는 버스는 주말에만 있다. 06:50~18:10, 1일 14회. 제주대에서 내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이나 제주공항 가는 버스로 환승한다.

    ● 숙소

    제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유정모텔(064-753-6331)은 산꾼과 올레꾼에게 인기 좋은 숙소다. 터미널이 가까워 베이스캠프로 좋다. 제주 시내에 자리한 예하게스트하우스(070-4012-0083), 월랑재게스트하우스(010-2378-7358)는 젊은 층이 많이 찾는다.

    ● 맛집

    제주의 겨울철 대표 어종은 방어다. 방어는 찬바람이 불면 산란기에 대비해 살이 오르고 지방 함량이 높아져 고소한 맛이 뛰어나다. 제주에서도 물살 거센 모슬포 앞바다에서 잡은 방어를 제일로 친다. 방어는 크기가 클수록 담백하고 식감이 뛰어나다. 모슬포항 식당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대부분 주인이 직접 잡은 활어를 내놓는다. 그중에서 부두식당(064-794-1223)은 싸고 푸짐하기로 유명한 집이다. 방어회, 고등어구이, 매운탕 등이 나오는 방어회정식 1인분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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