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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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분노에 폭발하는 ‘인간폭탄’들

욱해서 살인까지, 분노범죄 막으려면 정부 차원 관리 필요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6-23 17: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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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분노를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터뜨려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간폭탄’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6월 8일 경남 양산시 한 아파트에서 외벽 도색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음악을 틀어놓자 그 소리가 크다며 아파트 주민 서모(41) 씨가 인부들이 작업을 위해 옥상에 걸어놓은 밧줄을 홧김에 잘라버려 그것에 매달려 작업 중이던 김모(46) 씨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양산 사건 발생 9일 만인 16일에는 충북 충주시의 권모(55) 씨가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서비스 신청을 한 뒤 집을 방문한 통신업체 수리기사 이모(53) 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홧김에 살인까지 저지른 것. 경찰은 두 사건의 피의자 모두 정신적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두 피의자 모두 ‘인간폭탄’과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인근에 살던 주민이나 지역사회는 그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산 사건의 피의자 서씨는 과거 폭력전과로 치료감호를 받았음에도 추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충주 사건의 피의자 권씨는 망상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문제로 분노 조절이나 사회성 결여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지역사회와 정부가 조기에 파악해 관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평소 인사성 밝은 사람이었는데…”

    6월 19일 오후 사건 발생 11일 만에 찾은 양산 덕계동 아파트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아파트 외벽에 남아 있는 도색 작업 흔적만 이곳이 사건 현장임을 알려줬다. 아파트단지 전면에는 세탁소 등이 자리한 오래된 상가 건물과 작은 주민 쉼터가 있었다. 몇몇 주민이 이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지 뒤편에는 텃밭이 조그맣게 조성돼 있었다. 이곳에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을 하던 김씨가 추락한 것.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의자 서씨는 사건 당일 아침 일찍부터 술을 마신 상태였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인 그는 새벽같이 인력사무소에 나갔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셨던 것. 인근 주민들은 그를 술에 자주 취해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주민 이모(63·여) 씨는 “(서씨와) 말을 섞어본 적은 없지만 가끔 아침부터 술에 취한 상태로 아파트로 들어오곤 했다”고 말했다.

    술에 취한 채 오전 8시 무렵 집에 들어온 서씨는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아파트 도색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틀어놓은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거슬렸기 때문.

    당시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동에서 작업하던 인부는 총 4명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서씨는 그중 한 인부에게 크게 항의하며 음악을 끄라고 요청했다. 서씨의 항의를 들은 인부는 음악을 껐다. 하지만 다른 인부들이 음악을 끄지 않아 여전히 음악 소리가 들렸다. 서씨는 음악 소리에 화가 나 공업용 커터 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경찰 관계자는 “서씨 말고는 음악 소리에 항의하는 주민이 없었던 것으로 봐서 음악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당시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옥상에 매단 밧줄 하나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 채 일하고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간 서씨는 음악을 튼 인부와 연결된 밧줄을 커터 칼로 먼저 자르기 시작했다. 밧줄을 반쯤 잘랐을 때, 다른 곳에서도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서씨는 자르던 밧줄을 내버려둔 채 음악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그곳에 연결된 밧줄을 완전히 잘랐다. 이에 김씨는 아파트 12층 높이에서 추락해 현장에서 사망했다. 서씨는 밧줄을 자른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갔다.

    서씨가 피의자로 경찰에 구속된 것은 119구급대의 현장 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급대가 사건 현장을 조사하던 중 누군가 밧줄을 끊은 흔적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 이에 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 오전 서씨가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외벽에서 작업하던 근로자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현장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어 폐쇄회로(CC)TV와 옥상에서 족적을 확보해 서씨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했다.

    서씨를 알고 지내던 일부 주민은 그의 분노범죄에 놀란 눈치였다. 윤모(47) 씨는 “술을 자주 마시기는 했지만 술에 취해도 주민들에게 해코지하는 일이 없었고 인사성도 밝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주민 정모(74 · 여) 씨도 “(피의자가) 간혹 술에 취해 아파트를 배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말이 없어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관리되지 않았던 폭탄

    서씨의 가족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씨는 2남 1녀 중 장남으로 동생들은 모두 독립해 부모와 셋이 살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동생들과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부모와 관계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씨의 범행을 알게 된 부모는 그가 홧김에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김씨는 20여 년 전 결혼해 현재 생후 27개월부터 고교 2학년생까지 5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가장이었다. 외동딸로 자라며 외로움을 많이 느낀 그의 부인이 자식들에게는 형제자매를 많이 만들어주기를 원해 다둥이 아빠가 됐다.

    김씨는 결혼 후 부산 부전시장에서 장인이 운영하는 과일가게 일을 돕다 2년여 전부터 부산 한 건설업체의 하청을 받아 고층건물 외벽 청소일을 해왔다. 어린 자녀들 때문에 부인이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지자 시작한 일이었다. 위험하지만 월 300만~4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김씨는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씨는 잠을 설쳐 화가 난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한 가정의 가장을 무참히 살해한 것.

    서씨는 과거에도 정신적 문제로 치료감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서씨는 2012년 폭력 등 혐의로 구속돼 정신감정을 받았고, 그 결과 조울증 증세를 보여 공주치료감호소에서 3년간 수감생활을 하며 정신과 치료를 병행했다. 하지만 출소한 후 서씨는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 본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해 현재 지역병원에 정신감정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정신적 문제로 범죄를 저질러 치료감호를 받던 사람이 출소하면 그 뒤부터 관리가 어렵다. 올해 4월 이전에 감호소에서 나온 경우 추후 진료 등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제5장의 2는 치료감호소 출소자 관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제26조 2항을 보면 ‘치료 감호소 출소자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해 정신과 상담 및 진료, 사회 복귀 훈련 등 정신보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를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정부는 4월 국무회의에서 치료감호를 마쳤더라도 재범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한해 보호관찰을 추가로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의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치료감호 기간이 만료된 범죄자라도 추가로 치료할 필요성이나 재범 위험이 있는 경우 6명의 법조인과 3명의 정신과 의사로 구성된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추가 보호관찰 필요성을 인정하면 보호관찰 처분을 받게 된다.



    피해망상에 터진 분노

    잠을 설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까지 저지른 충격적 사건이 있은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유사한 사건이 충북 충주에서도 발생했다. 6월 16일 오전 11시쯤 충주시 칠금동 한 원룸에 거주하던 권모 씨가 인터넷이 느려 주식거래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이유로 인터넷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찾아온 통신업체 수리기사 이모 씨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것.

    경찰 조사 결과 권씨는 이날 오전 인터넷 수리 요청을 받고 자신의 원룸을 찾아온 이씨를 보자마자 “당신도 갑질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언성을 높이던 권씨는 갑자기 이씨를 향해 집에 있던 흉기를 휘둘렀다. 좁은 원룸에서 권씨에게 일방적으로 공격받던 이씨는 배와 등을 수차례 찔려 치명상을 입었다. 그는 어렵게 원룸을 빠져나와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고 건국대 충주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이씨는 충주 내 병원에는 응급 외과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헬기로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피의자 권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며 홀로 생활해왔다. 2007년부터 충주 한 원룸에서 생활하며 해당 업체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온 권씨는 인터넷 속도가 느려 불만이 많았다. 지역 인터넷 서비스센터 한 관계자는 “권씨가 서비스센터에 자주 전화를 걸어 인터넷 속도 문제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폭언이나 욕설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권씨는 “10여 년 전부터 인터넷 속도에 불만이 많아 내가 서비스센터 직원과 시비가 붙든지 죽이든지 한번 사고를 칠 것 같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권씨가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권씨가 이토록 인터넷 속도에 흥분했던 이유는 주식거래 때문이다. 6월 20일 충북 충주경찰서에 따르면 권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 속도가 느려 주식 ‘단타치기’를 제대로 못해 손해를 봐 화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타치기’는 특정 주식을 산 뒤 짧은 시간에 되팔아 수익을 내는 방법이다. 몇 차례 단타치기에 실패한 권씨는 인터넷 속도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생각했다. 경찰 관계자는 “권씨가 단타치기와 관련 없는 손해까지 인터넷 속도 탓으로 돌렸고, 이러한 생각이 업체에 대한 불만과 망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월 19일 충북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된 범죄심리분석(프로파일링·Profiling)에서도 권씨는 통신업체가 자신의 인터넷 이용을 막으려고 일부러 인터넷 속도를 느리게 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또 속도 문제로 계속 서비스센터에 불만을 토로하자 센터에서 자신을 달갑지 않게 여겼을 뿐 아니라 다른 고객과 차별 대우를 했다는 등 피해망상장애 증상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심리분석 결과를 토대로 보강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망상장애는 과거 편집증으로 불리던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특정 대상이 저의를 가지고 자신을 괴롭힌다고 믿는 증상이다. 망상장애는 조현병 등 다른 정신질환과 달리 망상을 가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어 조기 발견이 힘들다.

    6월 20일 오후 2시 칠금동 원룸촌에서 살인 혐의로 구속된 권씨의 현장검증이 진행됐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권씨는 파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 차림으로 경찰차에서 내려 원룸 건물로 들어갔다. 그는 흉기를 들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재연했다. 10분 남짓 진행된 현장검증이 끝나고 취재진은 피의자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현장을 떠났다.
    한편 유가족은 피해자의 황망한 죽음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4시 무렵 인근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만난 이씨의 손위 처남 김모(57) 씨는 “가장으로서 부족함 없이 성실했고, 친·인척에게도 항상 명랑하게 다가온 매제였다. 지금이라도 매제가 웃으며 나타날 것 같다. 아직도 매제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황망한 피해자 가족

    숨진 이씨는 고교 졸업 후 통신회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기술직 및 영업직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부양해왔다. 그는 2003년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영업능력을 인정받아 자회사인 서비스센터 직원으로 재취업해 인터넷 수리기사로 일했다.

    김씨는 “매제가 자회사로 옮긴 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급여를 받았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회사에서 ‘친절상’까지 받은 것으로 안다. 회사일이 바쁜 와중에도 가족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었다. 동생도 남편이 싹싹해서 참 좋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충주 한 아파트에 살던 이씨는 84세 노모를 모시고 싶어 했으나 어머니가 도시생활을 꺼려 해 멀지 않은 수안보에 집을 마련한 뒤 어머니를 모셨다. 김씨는 “매제가 어머니 댁에 수도나 전기가 고장 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늦은 밤중이라도 한달음에 달려가 고치는 등 모친을 극진히 모셨다”고 밝혔다.

    피의자에게 정신질환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는 얘기에 김씨는 “경찰로부터 계획적 범죄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피의자가) 회칼, 도끼 2개 등 흉기를 이미 준비했다고 한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피의자에게 제대로 죄를 물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인근 주민들은 피의자 권씨의 존재조차 몰랐다. 인근에서 원룸임대 사업을 하는 송모(76) 씨는 “(권씨의 범행이) 보도된 다음에야 이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원룸 특성상 세입자가 자주 바뀌어 계약할 때나 한 번 얼굴을 보고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거의 모른다. 사건이 일어난 원룸은 내가 운영하는 곳도 아니라서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원룸촌 골목에는 대형마트 등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구매할 만한 가게가 드물었다. 드문드문 음식점 몇 곳만 보일 뿐이었다. 원룸 앞은 세입자들의 소유로 추정되는 차량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사건 현장 인근 음식점에서 일하는 박모(43) 씨는 “원룸에 사는 사람들은 식사시간이나 출퇴근시간에만 가끔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인사하고 지내는 경우가 드물다. 오늘 현장검증 전까지는 (피의자가) 여기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불안에 따른 분노범죄를 막으려면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화를 이기지 못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폭력, 살인 등 상해 범죄에서 분노범죄의 비중이 높기 때문. 경찰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5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상해나 폭행 등 폭력범죄 37만2732건 가운데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거나 현실 불만인 경우가 40%(14만8035건)를 차지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 범죄 975건 중에서도 현실 불만이나 우발적 충동에 따른 범행의 비중이 41.3%(403건)에 달했다.



    정신질환은 국가적 관리가 필요

    권일용 전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은 “분노범죄를 저지르는 피의자는 대부분 특유의 집착이나 정서적 불안 등의 이유로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모른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그만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도 서투르다. 이웃들이 피의자가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하거나 피의자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고 말했다.

    권 전 팀장은 “분노범죄를 예방하려면 지역사회가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간혹 있다. 하지만 모두가 바쁜 현대사회에서 지역사회 구성원이 타인을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데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가 낯선 사람과 관계를 피할 공산이 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정부가 나서 국민의 정신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확실한 대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해 정신질환자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제 대응을 한다면 관련 범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관련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와 같은 대안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실현되기까지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희생자 위한 온정의 물결


    6월 8일 경남 양산시에서 아파트 외벽 도색 작업 중 밧줄이 끊겨 추락해 숨진 노동자와 16일 충북 충주 원룸촌에서 살해된 인터넷 수리기사 등 분노범죄 희생자 유족에게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양산에서는 지역사회가 유가족을 돕고자 나섰고, 충주에서는 고인이 일하던 회사가 유가족을 대상으로 보상 절차를 진행 중이다.

    양산지역 주민 커뮤니티인 ‘웅상 이야기’ ‘러브양산맘’ ‘양산사람들’ 관계자들은 6월 20일 오전 양산경찰서에서 해당 사건 희생자 김모(46) 씨의 유가족에게 1억3000여만 원 조의금을 전달했다. 처음에는 각 커뮤니티 회원을 대상으로 모금을 진행했지만 가장을 잃고 홀로 자녀 5명을 부양해야 하는 김씨 아내의 상황이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조의금이 들어와 모금 일주일 만에 1억 원 넘는 거액이 모인 것.

    지역 기업에서도 유가족을 위한 기부가 이어졌다. 양산에 생산 공장이 있는 천호식품은 6월 20일 유가족을 위해 매달 30만 원씩 10년간 총 3600만 원을 지정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엄기원 천호식품 상무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아팠다. 유가족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이승준 광일고무 대표와 이용 동아공업사 대표도 유가족을 위해 각각 100만 원을 기탁했다.

    양산시도 온정의 대열에 동참했다. 6월 19일 양산시청 민원봉사실과 웅상출장소 민원봉사실에 모금함을 설치한 것. 22일까지 모금된 성금은 양산시복지재단에 기탁돼 재단 기부사업인 ‘우리동네 행복드림사업’의 생계지원비 180만 원과 함께 유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또 양산시복지재단은 유가족을 돕기 위한 문의가 줄을 잇는 만큼 30일까지 전용 계좌를 통해 모금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김씨의 장인은 20일 양산경찰서에서 조의금을 전달받은 뒤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분이 많을 줄 몰랐다. (도와주신 분들의 뜻을)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 앞으로 아이들 엄마가 자기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고 도우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분노범죄에 희생된 인터넷 수리기사 이모(53) 씨가 몸담았던 KT의 자회사 ㈜KT서비스남부는 유가족을 위한 보상 절차에 나섰다. 이씨가 업무 중 발생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 KT서비스남부 관계자는 “산업재해 보상 외에도 회사에서 추가로 유가족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유가족은 6월 20일 오후 회사와 보상 논의를 끝마쳤다고 밝혔다. 숨진 이씨의 손위 처남인 김모(57) 씨는 “매제가 다니던 회사 분들은 단순히 장례식장을 찾아온 것에 그치지 않았다. (가족처럼) 함께 슬퍼해줬다. 앞으로는 이러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상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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