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급한 광기 맨언굴 보았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 한국 사회 수준 적나라하게 표출

  •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입력2013-09-30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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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급한 광기 맨언굴 보았다

    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정영순 교수의 개인정보를 요구한 데 대해 학문활동을 방해하는 표적사찰이며 학문 사상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사학자, 교수, 언론인, 시민단체 회원 등 400여 명이 6월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언문을 낭독했다.

    최근 교학사가 발행한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벌어지는 파동은 한국 사회의 광기(狂氣)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검인정을 통과한 직후 일부 역사학계와 언론, 심지어 민주당과 일부 교육감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공격하며 검인정 취소 혹은 보이콧을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폭력에 다름 아니다.

    이번 공세를 선도한 것은 ‘경향신문’이다. 경향신문은 5월 31일 교학사 고교 교과서의 검인정 심의 본심사 통과 사실을 보도하면서 “교과서로 번지는 우파 표방 세력의 ‘역사 도발’을 보자니 착잡하고 걱정스러울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거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은 이런 편향된 보도를 초기 화면의 헤드라인에 올려놓으며 허위 사실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다른 좌파 언론에서도 동시 다발적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근거 없이 일제히 비난했다.

    심지어 ‘한겨레’는 5월 31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뉴라이트 교과서엔 5·16은 혁명, 5·18은 폭동’이라는 제목의 왜곡 기사를 올렸다가 스스로 너무 심하다고 판단했는지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 기사에 대해 사과정정보도를 해야 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사교육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조로 서술됐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교육은 각국의 근대국가 건립 과정에서 국가 건립의 헌법적 가치를 국민에게 인지시키고 근대 국민으로 교육시키려고 실시해왔다.

    반면 기존 한국사학자들은 낡은 계급적 민중사관에만 집착하고 그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라는 것은 일반 상식인데도 한국사 교과서에 이러한 내용을 넣는 것에 대해 기존 한국사학자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또한 대한민국이 유엔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문구도 삭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들은 역사교육을 국가정체성 교육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해왔다.



    무차별 흑색선전과 불매운동

    이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거부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를 시장지상주의, 신자유주의로 축소 해석하고, 더 심한 경우 우파독재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역사정의실천연대의 선언문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독재를 정당화하고 반공주의와 같은 의미로 통용돼온 자유민주주의를 쓰도록 하였다”고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유민주주의 근간은 의회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대립 개념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서 나왔지만 산업화 사회에선 노동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의회민주주의 내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였다. 더군다나 자유민주주의를 독재로 치환하는 무식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큰 문제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무차별 흑색선전과 불매운동은 일부 언론이 의도한 대로 급속히 대중의 폭력으로 번져나갔다. 인터넷 공간에선 “교학사 교과서에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 유관순 누나는 여자깡패’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식의 비방이 넘쳐났다. 과거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허위 비방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는 일이 많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좌파 성향 교육감이 있는 광주교육청, 강원교육청은 ‘특정 교과서 불매운동’으로 협박했다. 최근에는 교학사에 대한 방화 협박은 물론, 사주와 직원들에 대한 살해 협박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교학사는 이런 협박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자진 발행 취소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맞았다.

    이러한 소동에 민주당도 가세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6월 2일 브리핑을 통해 “뉴라이트 인사들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교과서 내용이 전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알려진 것만으로도 경악할 수준”이라며 “일제강점기가 조선 근대화에 긍정적인 구실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 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이 허위임이 밝혀졌는데도 민주당 우원식, 양승조, 정청래 의원은 이후에도 릴레이식으로 똑같은 발언을 이어나갔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비방을 격화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6월 5일 ‘남조선 각계층, 보수패당의 력사교과서 왜곡 행위에 항의’라는 보도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맹비난했다.

    저급한 광기 맨언굴 보았다

    양진오 교학사 대표이사(가운데) 등 임원진이 9월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본사 회의실에서 논란을 빚는 자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 사회 정체성 부재

    이런 악선전이 횡행하는 가운데 민주당 김태년 의원실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교수와 동아시아역사연구소장인 정영순 교수에 대해 ‘표적 감사’를 감행하며 한국현대사학회에 대한 학문적 탄압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학사 교과서의 저자인 권 교수와 저자가 속한 학회(한국현대사학회) 임원인 정 교수에 대해 표적 감사를 감행한 것이다.

    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몇몇 양식 있는 교수와 국내의 양심 있는 학자 및 지식인 412명(일반인 56명은 별도로 참여)이 6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사학자 표적 사찰 사과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 ‘지식인 선언’을 통해 “국회의원이 권력의 칼로 학문·사상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했다”며 김태년 의원에게 항의했다.

    교학사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검인정 취소 요구가 다시 불붙으며 일부 방송이 가세한, 이성을 상실한 공세가 가중되고 있다. 이에 권이혁 전 장관 등 전직 교육부 장관 7명과 한국사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사학자 16명이 9월 11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야당과 일부 언론 및 학계의 악의적 왜곡을 비판했다. 교학사 교과서가 기존 교과서와 다른 견해를 반영했다는 이유로 검인정 통과 취소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더는 소모적 논쟁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한 것이다.

    지난해에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황급히 나오게 된 데는 18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이 다큐멘터리가 주장하는 거친 내용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현재 한국사학계의 다수가 가진 생각과 일치하는 면이 많다. 이제 다음 단계로 교과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 데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 부재(不在)와 잘못된 역사교육이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놓고 벌어진 해프닝은 한국 사회와 정치계, 그리고 일부 한국사학계와 언론의 저급성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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