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주행 시동 거는 전기차

관련 기술 눈부신 발전 시장서 큰 기대감…가솔린차와 비슷한 가격도 매력

  • 이진석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gene@donga.com

    입력2013-09-30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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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속주행 시동 거는 전기차

    제주시 아라동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에 위치한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의 ‘전기자동차 인프라 운영센터’. 충전소 현황과 이용 실태, 이상 유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미운 오리새끼’였던 전기자동차(전기차)는 백조가 될 수 있을까.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전기차는 오랜 기간 미완의 과제였다. 전기차의 등장은 화려했다. 기름을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고 배기가스도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내건 ‘저탄소 녹색성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당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출시된 전기차는 이렇다 할 시장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일반 가솔린차에 비해 높은 가격과 짧은 주행거리, 부족한 충전시설이 문제였다. 시장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 중소기업이 최고시속 60km 안팎의 저속 전기차를 내놓았을 뿐, 대형 자동차업체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관련 기술이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너무 속도를 냈다”고 당시 상황을 평가한다.

    올해 들어 전기차가 시장에 안착하리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가고 있다. 지난 5년간 전기차 관련 기술이 발전해 실용화 수준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에 진출한 자동차업체들은 강화된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충족하려고 친환경차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여기에 정부의 보조금 지급 규모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전기차 가격은 경우에 따라 동급 가솔린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국산 전기차 ‘3파전’ 양상

    쾌속주행 시동 거는 전기차
    이에 맞춰 자동차업체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기차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10월 한국지엠(GM)이 경차 ‘스파크’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스파크 EV를, 르노삼성자동차(르노삼성)가 준중형급인 SM3 Z.E.를 내놓는다. 이에 맞서 기아자동차(기아차)는 2011년 내놓은 경형 전기차 레이 EV의 가격 인하 계획을 밝혔으며, 내년 중 준중형차 쏘울의 전기차 버전을 내놓기로 했다.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인 현대자동차(현대차)와 수입차업체인 BMW코리아도 내년 중 준중형급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어서 국내 전기차시장의 열기는 유례없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처럼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전기차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목되는 짧은 주행거리는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전기차 보급의 선결과제인 충전시설 설치도 충전규격 통일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높다. 일부에서는 가솔린, 디젤 등 기존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자동차가 새로운 친환경연료를 사용하는 궁극의 미래형 자동차로 거듭나는 과도기에서 전기차가 도태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국산 전기차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쾌속주행 시동 거는 전기차
    현재 국내 전기차시장은 ‘3파전’으로 요약된다. 10월부터 일반인이 살 수 있는 대형 자동차업체의 전기차는 기아차 레이 EV와 한국GM의 스파크 EV, 르노삼성 SM3 Z.E. 3개 모델이다. 레이 EV와 스파크 EV는 경차, SM3 Z.E.는 준중형차다. 모두 기존 가솔린차를 기반으로 개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능이나 가격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스파크 EV는 한국GM의 모기업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처음으로 내놓은 순수 전기차다. 2010년 선보인 ‘볼트’(국내 미수입)는 차 안에 탑재한 1.4ℓ급 가솔린엔진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을 채택해 ‘순수 전기차라기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외부 충전이 가능한 하이브리드카)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GM의 첫 순수 전기차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셈이다. 한국GM 경남 창원공장에서 양산해 해외로도 수출한다. 다만 핵심 부품은 외국산이다. 배터리는 중국 완샹그룹이 최근 인수한 2차전지 전문업체 A123사가 공급한다. 전기모터는 미국 볼티모어 GM 공장에서 자체 생산한다.

    스파크 EV는 6월 미국에서 먼저 판매를 시작했다. 지난달 말까지 3개월간 판매대수는 230여 대로 같은 기간 6500여 대가 팔린 닛산 리프 등 경쟁모델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GM은 10월부터 스파크 EV의 생산능력이 궤도에 오르면 판매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배출가스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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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의 스파크 EV

    스파크 EV는 1회 충전(6∼8시간 소요)으로 135km를 주행할 수 있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거리와 비슷하다. 다만 통상적으로 가솔린차의 실제연비가 공인연비에 미치지 못하듯, 전기차의 주행거리도 운전습관과 도로 조건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최고출력은 143마력, 최고시속은 144km이다. 지난달 열린 공개 시승행사에서는 최고시속 149km를 기록했다. 가격은 3990만 원이다. 정부의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1500만 원)과 지방자치단체별 추가 보조금(구매자 요청 시 최대 800만 원)을 받으면 1690만 원에도 살 수 있다.

    같은 달 판매를 시작하는 SM3 Z.E.는 유일한 준중형급 전기차다. 타사 전기차에 비해 넓은 실내공간이 강점이다. 차명에 붙은 Z.E.(Zero Emission)는 ‘배출가스가 제로(0)’라는 뜻이다. 1회 충전으로 135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135km다. 이 차는 충전방식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일반 220V 콘센트에 연결해 충전하면 6~9시간이 걸리지만 급속충전 시스템을 사용하면 30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 다른 전기차가 급속충전과 일반충전에 별도의 충전 소켓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SM3 Z.E.는 하나의 충전 소켓으로 두 가지 충전방식을 소화해낸다.

    SM3 Z.E.는 원래 가격이 6000만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판매가격은 4500만 원으로 낮췄다. 원래 모기업 르노의 해외 공장에서 생산을 계획했다가 이를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소화하기로 했고, 배터리를 LG화학에서 공급받는 등 핵심 부품을 국산으로 사용해 원가를 낮췄다. 보조금을 적용한 최저가격은 2200만 원이다.

    SM3 Z.E.는 6~7월 제주가 접수한 일반인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요청 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모델이다. 구매 신청이 들어온 전기차 총 487대 가운데 307대가 이 차였다. 르노삼성은 제주를 비롯한 정부 선정 10대 전기차 선도도시를 중심으로 이 차의 시승센터를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렌터카, 택시 등 법인용 차량으로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레이 EV는 경쟁모델 가운데 가장 빠른 2011년부터 양산하는 전기차다. 이 때문에 최신형 모델에 비해 성능이 다소 떨어진다.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폴리머전지를 사용하는데,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거리는 91km, 최고속도는 시속 130km이다. 충전에는 6시간이 걸린다. 기아차는 이 차를 경차 전문 생산업체인 동희오토에 위탁해 생산한다. 가격은 4500만 원이지만 기아차는 다른 경쟁모델의 시판에 대응해 이 차의 가격을 연내 3500만 원대로 인하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최저 1200만 원에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3개 차종은 설계 단계부터 전기차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 앞바퀴굴림(전륜구동) 방식의 일반 가솔린차를 기반으로 개발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전기차는 전기모터의 특성상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부터 최대 가속능력이 나오는데, 앞바퀴굴림 방식 차량은 바퀴에 갑자기 큰 힘이 실리면 방향을 틀 때 차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성향(토크 스티어)이 있다. 이를 막으려면 의도적으로 전기모터에서 나오는 힘을 줄여야 한다. 이 때문에 전기차는 뒷바퀴굴림(후륜구동)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자동차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쾌속주행 시동 거는 전기차
    짧은 주행거리 해결 최우선 과제

    쾌속주행 시동 거는 전기차

    서울시는 카셰어링 서비스에 전기차를 도입했다.

    국산 전기차는 수년 전 순수 전기차시장을 선도하던 미쓰비시 아이미브(i-MiEV) 등 외국산 전기차와 비교해 동등하거나 좀 더 앞선 성능을 갖추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려면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큰 과제는 100~200km에 불과한 주행거리다. 서울 같은 대도시 안을 누비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운행거리가 길어질 경우 운전자는 주행 중 배터리 방전으로 차가 멈춰서는 상황을 우려하게 된다. ‘주행거리에 대한 불안감(range anxiety)’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기차 구매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소다. 조사 전문기관인 센서스와이드가 영국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88명 가운데 62%(736명)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이유로 짧은 주행거리를 지목했다.

    국내 전기차시장에서 완성차업체들이 저마다 다른 충전방식을 사용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한국GM은 직류(DC) 콤보, 기아차는 일본 도쿄전력이 개발한 차데모(CHAdeMO), 르노삼성은 교류(AC) 방식을 채택했다. 이들 방식은 저마다 규격이 다르다. 일본의 경우 충전방식을 차데모로 표준화했다. 닛산 전시장에서 도요타 전기차를 충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서로 호환이 불가능해 각 전기차에 맞는 충전소를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 밖에 전기차의 연료인 전력을 생산하는 데 여전히 화석연료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도 전기차의 친환경 기여도를 퇴색하게 한다. 전기차 원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자동차업계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느리게 떨어지는 점도 전기차의 대중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러한 문제를 단기간 내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전기차는 과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의외로 쉽게 자동차산업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려면 소비자들이 경제적 이득을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높은 구매비용과 향후 중고차 매각 시 시세 하락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메르세데스 벤츠, 도요타 등 일부 글로벌 자동차업체는 수소연료전지자동차(FCEV)를 전기차에 이은 차세대 친환경차로 낙점하고 개발에 힘을 쏟는다. FCEV는 대당 1억 원 이상의 높은 가격과 수소저장 시스템 탑재로 인한 큰 부피가 단점이지만, 최대 주행 가능거리가 600km에 달하고 충전시간도 짧다는 것이 강점이다. 수소연료전지 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낮아지면 FCEV가 전기차를 제치고 친환경차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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