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1

2013.08.19

지하경제 키우는 ‘캐시 이코노미’

풀린 돈 사라지고 고여 있는 돈 증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재고해야

  •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3-08-16 17: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하경제 키우는 ‘캐시 이코노미’

    5월 16일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비자금 56억 원을 훔쳐 달아났던 범인이 경찰에 검거된 가운데 충남 아산경찰서 측이 범인 은신처에서 압수한 31억9000만 원을 공개했다.

    캐시 이코노미(Cash Economy)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거래가 신용카드나 계좌이체가 아닌 주로 현금, 즉 화폐로 이뤄지는 경제를 말한다. 추적이 힘든 현금 거래 비중이 높아질수록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캐시 이코노미는 지하경제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지하경제는 현재 우리 경제의 중요한 화두다. 올해 들어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향후 5년간 세수 27조 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세원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기 대응, 복지 확대 등의 수요로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세율 인상 없이도 소요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지하경제가 확대된다면 우리 경제는 세수 부족→재정 악화→세율 인상→지하경제 확대라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개인금고 판매 늘어 ‘화폐 퇴장’

    이런 이유로 최근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 확대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캐시 이코노미 확대는 다양한 경제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시중에 돈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캐시 이노코미 현상이 심화할수록 당연히 경제 주체들은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려 들고, 경제 내에 필요한 현금 양도 그만큼 많아진다. 올해 5월 말 기준 화폐 발행잔액은 1년 동안 15%나 늘었다. 이런 증가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올해 전체 화폐 순발행액은 예년 2배 수준인 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화폐 퇴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폐공급액 대비 화폐환수액 비율인 화폐환수율은 수년 전만 해도 95%대에 달했지만 올해 들어 70%대 중반에 불과하다. 특히 5만원권의 경우 환수율이 52%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5만 원권 지폐 가운데 절반가량이 되돌아오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음을 의미한다. 최근 개인금고 판매가 늘면서 장롱이나 땅속에 거액의 현금을 보관하는 부자가 늘고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안에서 제대로 돌지 않고 고여 있는 돈이 늘면서 화폐의 실물경제 활동에 대한 기여도도 빠르게 하락하는 모습이다. 명목 GDP(국내총생산)를 화폐발행액으로 나눈 화폐 유통속도는 2009년 2분기 35배에서 올해 1분기 23배로 떨어졌다. 이는 실물경제 활동 수준에 비해 화폐발행액 규모가 과도하게 증가한다는 의미가 되고, 그와 동시에 화폐 한 단위가 생산 및 거래에 기여하는 정도가 둔화한다는 의미도 된다.

    이 와중에 사람들은 기록이 남지 않는 현금 거래를 늘리고 있다. 올해 들어 개인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2년 전의 5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 체크카드, 직불카드, 선불카드 등을 포함한 전체 카드 사용액 증가율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둔화됐다. 자금이체 등 다른 지급결제 수단의 증가율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감안하면, 신용카드를 이용하던 지급결제 상당 부분이 현금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래프1 참조).

    5만 원권 발행 이후 지하경제 비중 확대

    지하경제 키우는 ‘캐시 이코노미’
    문제는 우리 경제에서 불투명한 캐시 이코노미 비중이 커질수록 정부 규제를 벗어난 지하경제가 확대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가 인용하는 지하경제 연구의 권위자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지하경제 비중은 2000년 27.5%에서 2009년 24.5%까지 낮아졌다가 2010년 24.7%로 상승했다. 2009년 하반기에 고액권 지폐인 5만 원권이 발행되고 화폐 유통속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래프2 참조).

    특히 슈나이더 교수가 우리나라의 경우 지하경제를 유발하는 다양한 요인 중 자영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자영업 요인이 지하경제의 44%를 차지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자영업자 증가세가 주춤하지만, 자영업 요인이 크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가 확대될 경우 현금 거래가 늘면서 자영업 부문의 거래 및 소득 불투명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적극 나섰지만 도리어 세금 추적을 피하기 쉬운 현금 거래 선호 현상이 심화되고, 자산가들의 현금재산 보유 및 이전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하경제 규모를 줄이려는 노력이 도리어 지하경제를 확대하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역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세수 확보 및 역진성 완화를 근거로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및 폐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1999년 도입된 이후 지하경제 양성화 및 정부의 세원 확보에 크게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소득공제 효과를 누리려는 일반 국민의 적극적인 신용카드 사용이 과거 세무당국의 계도 및 선별적 세무조사만으로는 역부족이던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에 중요한 구실을 해온 것이다.

    캐시 이코노미 확대가 우려되는 현 시점에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은 지하경제 확대 및 이로 인한 세수 감소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직불카드와 현금 사용액에 대한 공제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고가 상품 구입 시의 편의성과 자영업자들의 현금 거래 선호 경향 등을 감안할 경우 충분한 보완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경제의 캐시 이코노미 확대 속도를 감안해 그 시기와 정도를 신축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캐시 이코노미 확대를 방지하고 지하경제 규모를 줄여나가려는 방안을 다각도로 시행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국세청의 금융정보분석원 정보 활용과 재산추적기능 강화, 조세회피방지 규정 보완 같은 방안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불성실 납세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교육을 통해 국민의 납세의무 의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