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대충 가짜로 써놓고 ‘추사 편지’라고 우기기

가짜 서체·편지 봉투 쓰기 등, 졸렬한 작품 끊임 없이 유통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7-08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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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가짜로 써놓고 ‘추사 편지’라고 우기기

    1 1350만 원에 낙찰된 김정희의 가짜 편지와 진짜 봉투 반쪽. 2 선문대 박물관이 소장한 김정희의 편지와 봉투.

    ‘주간동아’ 893호에서 필자가 감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짜 휘호가 6월 19일 K옥션 미술품 경매와 6월 20일 마이아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각각 1950만 원과 1600만 원에 낙찰됐다. 두 서예작품은 수사기관에서 ‘박정희(朴正熙)’ 서명 부분만 필적감정을 해도 진위 판별이 가능한 졸렬한 가짜다.

    가짜가 팔리면 이를 만들고 제공한 위조자와 사기꾼은 힘을 얻는다. 벌써부터 박근혜 대통령 재임 내내 박 전 대통령의 가짜 휘호가 쓰나미처럼 밀려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미술품 수집을 권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주변에선 오히려 “진짜가 값이 없다” “값이 살 때만도 못하다”는 말만 들린다. 우리 미술품값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는 말이다. 이런 모든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고인이 된 작가의 위작을 누군가가 계속 생산해서 유통하기 때문이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가짜는 진짜 작품의 가치와 가격을 한없이 끌어내린다.

    미술품을 수집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현대 미술품의 경우 과대포장을 경계하고, 고미술품은 가짜를 조심해야 한다. 진짜라면 설령 조금 비싸게 샀더라도 크게 낭패를 보진 않는다. 진짜와 가짜의 가치 및 가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같이 비교할 수가 없다.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대충 가짜로 써놓고 ‘추사 편지’라고 우기기

    3 제주특별자치도가 소장한 김정희의 가짜 편지와 진짜 봉투. 4 제주특별자치도가 소장한 김정희의 편지와 봉투.

    편지 위조 스타일 각양각색

    요즘 미술시장은 작가의 예술세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돈에만 반응한다. 미술시장에서 가짜가 끊임없이 유통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추사 김정희(1786~1856)다. 생전에 추사체가 크게 유행해, 그의 그림은 물론 편지까지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남겨진 수량도 많아 위조하기에 편리했다. 그동안 축적된 가짜 편지는 위조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대충 가짜로 써놓고 ‘추사 편지’라고 우기기

    5 1818년 7월 7일자 김정희의 가짜 편지와 진짜 봉투. 6 1818년 4월 26일자 김정희의 편지와 봉투.

    2006년 제101회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1350만 원에 낙찰된 김정희의 ‘행서 서간’(그림1)은 가짜다. 이는 오래된 가짜로 ‘노도(老刀)’라고 부르는데, 오래된 흔적이 완연한 가짜지만 ‘칼처럼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림1’은 진짜 봉투 반쪽과 위조된 편지로 이뤄졌다. 편지글은 김정희가 눌인 조광진(1772~1840)에게 쓴 것으로 ‘완당전집’(권4)에 실렸다. ‘그림1’은 2006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추사 김정희 : 학예 일치의 경지’에 ‘김정희가 조광진에게 보내는 편지’로 출품됐다.

    위조자는 대담하게도 편지를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글씨로 위조했다. 어느 정도 김정희 글씨를 알고 희소한 작품을 찾는 컬렉터를 겨냥한 것이다. ‘그림1’의 편지를 진짜 봉투 반쪽, 그리고 1837년에 쓴 ‘그림2’와 비교하면 글씨가 분명히 다르다. 위조자는 김정희 글씨의 기이한 특징을 잘못 해석해 과장되게 썼다. 언뜻 보면 이것저것 섞어놓아 비슷한 듯해도 김정희 글씨와 전혀 다르다. 위조자 자신이 좋아하는 글씨로 쓴 것이다.

    대충 가짜로 써놓고 ‘추사 편지’라고 우기기

    7 1829년 11월 26일자 김정희의 가짜 편지와 가짜 봉투. 8 1829년 4월 13일자 김정희의 편지와 봉투. 9 김정희의 자(字) ‘元春’ 비교.

    진짜 봉투와 가짜 편지가 하나로 위조될 때, 일반적으로 봉투 반쪽보다 봉투 전체를 쓴다. 김정희 서거 150주기 특별기획전 도록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에 실린 ‘김정희가 쓴 편지 : 영정당에게 답장하여 보냄’(그림3)은 봉투는 진짜고 편지는 가짜다. 이를 비슷한 시기인 1825년에 쓴 ‘김정희가 쓴 편지 : 경호에게 답장함’(그림4)과 비교하면 누가 봐도 같고 다름이 확연하다.

    드물게 김정희의 가짜 한글 편지도 있다. 2004년 서울 예술의전당 명가명품컬렉션 전시도록 ‘멱남서당 소장 추사가의 한글문헌Ⅰ-추사 한글편지’에 실린 1818년 7월 7일자 ‘장동 본가의 추사가 대구감영의 아내 예안이씨에게 쓴 편지’(그림5)도 봉투는 진짜고 편지는 가짜다. ‘그림5’를 같은 해 4월 26일자 ‘장동 본가의 추사가 대구감영의 아내 예안이씨에게 쓴 편지’(그림6)와 비교하면 바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받는 쪽을 높이는 것이 기본

    조금만 주의해도 진짜와 확연히 다른 가짜 한글 편지도 찾을 수 있다. 2004년 예술의전당 명가명품컬렉션 전시도록 ‘멱남서당 소장 추사가의 한글문헌Ⅰ-추사 한글편지’에 실린 1829년 11월 26일자 ‘평양감영의 추사가 장동 본가의 아내 예안이씨에게 쓴 편지’(그림7)는 붓글씨를 배우지 못한 위조자가 성의 없이 만든 김정희의 가짜 한글 편지다.

    ‘그림7’을 같은 해 4월 13일자 ‘평양감영의 추사가 장동 본가의 아내 예안이씨에게 쓴 편지’(그림8)와 비교하면, 먼저 가짜는 1~2년 붓글씨 쓴 사람의 필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봉투 아랫 부분에 쓴 김정희의 자(字) ‘元春(원춘)’을 비교하면, 가짜는 ‘春’ 자 초서의 필순도 몰랐다(그림9). ‘그림7’의 봉투에서 ‘받는 쪽(입납)’과 ‘보내는 쪽(샹장)’의 좌우 위치가 뒤바뀌었다. 정반대다. 편지 받는 쪽을 위쪽에 쓰고 보내는 쪽을 그보다 아래에 써야 하는데 높이가 같다. 받는 쪽을 높이고 보내는 쪽을 낮추는, 편지 봉투 쓰는 예절을 위조자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알고 봐야 한다. 자꾸 본다고 보이는 게 아니다. 보기 전에 알아야 한다. 당연히 사기 전 살 작품에 대해 명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 미술시장에선 가짜가 팔리지만, 가짜라는 단어를 쓰진 않는다. 마치 가짜가 없는 척한다. 하지만 컬렉터가 미술품을 팔려고 들면 그제야 “가짜”라고 말한다. 가짜를 진짜로는 팔아도, 가짜를 진짜 가격으로 사주는 미술상은 없다. 가짜를 산 피해는 고스란히 컬렉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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