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5

2013.07.08

365일 오디션 시대를 당할 수 있나

MBC 대학가요제 폐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3-07-08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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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일 오디션 시대를 당할 수 있나

    1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동상 수상자 젊은연인들. 2 제2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자 썰물. 3 제3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자 김학래와 임철우.

    MBC 대학가요제가 폐지됐다. 1977년 첫 대상곡인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36회를 끌어온 가요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대학가요제는 곧 신인 음악가의 등용문이었다. 75년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던 대마초 파동 이후 신중현, 조용필 등 록밴드뿐 아니라 김민기, 양희은, 한대수, 이장희 등 포크뮤지션도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청년문화가 뿌리째 뽑혀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가요제는 음악에 대한 꿈을 가진 대학생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그 후 꽤 오랫동안 대학가요제 입상곡은 인기 차트에 오르곤 했다. 김학래와 임철우의 ‘내가’, 이범용과 한명훈의 ‘꿈의 대화’,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이유진의 ‘눈물 한 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 마그마의 ‘해야’,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유열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작품하나의 ‘난 아직도 널’,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80년대의 대상 수상곡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80년대 히트곡의 역사 한 갈래를 쓸 수 있을 정도다.

    대학가요제의 영향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93년 전람회의 ‘꿈속에서’와 94년 이한철의 ‘껍질을 깨고’를 끝으로 대학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스타는 거의 없다. 대중음악 시장의 환경이 급변한 탓이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래, 가요계는 댄스음악의 시대를 맞이했다. 음악 시장의 주소비자인 젊은 층은 전에 누려보지 못했던 자극을 택했다. 풋풋함 대신 현란함에 열광했고, 이는 본격적인 기획사 시대로 이어진다. 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트레이닝을 받고 아이돌로 데뷔했다. 여기에 90년대 중반부터 홍대 앞에 인디 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스타가 되려면 기획사를, 자신의 음악을 공연하려면 홍대 앞 클럽으로 가면 되는 상황에서 음악 인재들이 굳이 대학가요제를 택할 이유는 없었다. 소비자 또한 굳이 대학가요제에 열광할 이유가 없었다. 1990년대 이전 대학가요제가 음악인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등용문, 즉 고시에 가까웠다면 90년대는 몇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대학가요제 전통은 지켜졌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붐이 일면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모든 과정을 경쟁으로 승화했다. 심사위원들은 대학가요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잔혹한 무한경쟁을 도입한 이 포맷에 대중은 열광했다.



    대학가요제가 꾸준히 내세웠던 가치는 낭만과 열정이다. 같은 ‘경쟁’을 기본 틀로 내세움에도 오랜 전통을 가진 대학가요제가 오디션 프로그램들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낭만을 사치로 여기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환경에서 대학가요제를 통해 스타가 탄생하거나 대학가요제 자체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 기왕 폐지가 결정된 마당이지만 지난 시대의 화려한 역사를 되짚어보는 다큐멘터리라도 제작한다면 최선의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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