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0

2013.06.03

만화 ‘진격의 거인’ 보면 일본 갈 길 보인다?

‘군대 보유’와 ‘약육강식의 법칙’ 주요 설정…아베 내각 국제정치와 묘하게 닮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3-06-03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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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이 무더기로 출몰했다. 이들을 피해 살아남은 인류는 방대한 규모의 세 겹 성벽을 쌓아 올리고 외부와 완전히 차단한 채 그 안에서만 생존을 구가한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새로운 돌연변이 거인이 나타나 첫 번째 외벽을 부순다.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간신히 두 번째 장벽 안으로 대피한 인류는 복수의 칼날을 벼리며 반격을 준비한다.

    여기 일본 만화 한 편이 있다. 2009년 10월 만화잡지에 연재를 시작해 현재 단행본으로 10권까지 나온 이 작품의 제목은 ‘진격의 거인(進の巨人)’. 2011년 주요 만화상을 석권한 이 시리즈의 누적 판매부수는 총 1200만 권에 달한다. 4월 7일 일본 MBS(마이니치 방송)를 통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면서 ‘진격의 거인’에 대한 열광은 열도를 넘어 한국에까지 이르렀다.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시간 차지하고,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를 패러디한 자막이 수차례 등장할 정도. 쉽게 말해 최근 수년간 일본산(産) 만화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흥행 돌풍을 기록하는 작품이다.

    눈여겨볼 것은 이 작품의 주요 설정이 최근 일본의 국제정치 현실과 긴밀히 맞닿은 상징으로 가득하다는 점. 아베 내각을 비롯한 정치권의 우경화 행보와 이른바 ‘보통국가화’ 주장, 개헌과 재무장 논란에 이르기까지,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를 긴장케 하는 일본의 행보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라는 뜻이다.

    설정 자체는 판타지에 가까워

    다만 ‘진격의 거인’은 주변국의 공분을 샀던 노골적인 우익 만화와는 거리가 멀다. 설정 자체가 판타지물에 가깝다 보니, 현대사를 왜곡해 논란을 자초했던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나 야마노 샤린의 ‘혐한론’ 같은 조악한 작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세력의 침공’이라는 모티프는 상당수 공상과학 작품이 애용해온 소재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데뷔작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경력이나 성향에서도 특별한 정치적 성향 또는 배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만화가 강도하 씨는 “작가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느냐보다 오히려 이러한 설정을 지닌 작품이 지금 이 시점에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강씨는 4월 초순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방영을 시작할 무렵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의 현 군국주의 부활과 맥을 맞춰 보니 대사 하나하나 섬찍하다”는 글을 남겨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작품이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이 작품에 투영된 일본의 현실을 읽어내고자 하는 것도 당연한 시도”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왜 지금 ‘진격의 거인’ 신드롬이 일고 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녀석들에게 지배당했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진격의 거인’ 1권 서장)

    “군사적 측면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강대해지는 중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위협인식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일본이 갖는 중국의 이미지는 최악이다.” (고쿠분 료세이 일본 방위대 총장)

    작품의 주요 설정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쌓아 올린 성벽을 넘어 머리를 들이미는 거인군단 이미지는 중국의 강력한 부상과 폭발적인 군사력 강화에 긴밀히 맞닿아 있다. 일본의 보수 정치세력이 선거 때마다 핵심 구호로 활용하는 ‘중국 위협론’이 그것이다. 몰려오는 외부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약한 존재’의 공포감이다. 특히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작품 속 거인의 특성도 중국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불안과 맥이 닿는다. 군사정책이나 안보정책의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기 짝이 없어 더욱 염려스럽다는 시각이다.

    쌓아 올린 성채와 그 안에서 보낸 100년간의 평화는 종전 이후 일본이 누렸던 장기간의 평화와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평화 시기의 군대는 반복적인 경비업무로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하기 짝이 없는 상태. 10대 소년인 주인공 엘렌 예거는 이러한 모습에 분노하며 “싸움이 나면 막아낼 수 있는 군대”를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전쟁 같은 건 일어날 리 없다”는 어른들에게 번번이 꾸중을 들을 뿐이다. 성채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는 모습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가축의 삶’으로 묘사된다.

    전후 일본은 평화헌법과 미·일안보조약을 두 축으로 삼아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발전에 매진한다’는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 의 틀 안에서 국제정치적 행보를 구축해왔다. ‘상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고, 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저한도의 것으로 한정한다’는 이른바 전수방위(傳修防衛) 정책이다.

    만화 속 설정에서 정규군이 아닌 자위대만을 보유해온 일본의 이러한 현실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기력한 태도를 비판하는 주인공 목소리는 헌법을 개정해 일본도 군대를 보유하자는 ‘보통국가화’ 주장과 고스란히 연결된다. 이와 관련해 칼럼니스트 박권일 씨는 트위터에서 작품 속 성채가 미국의 핵우산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일안보조약의 보호 아래 무기력해진 일본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보통국가화’ 주장과 일맥상통

    가끔씩 성채 밖으로 나가 거인들의 활동을 정찰하는 작품 속 조사병단 부대에 관한 논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성채 안 평화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성채 밖으로 나갈 때마다 적잖은 사상자를 내는 이들의 활동에 대해 무의미한 희생일 뿐이라고 질타한다. 반면 이러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은 조사병단 부대를 비판하는 어른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1992년 9월 육상 자위대 150명을 캄보디아에 파견하면서 시작된 해외파병 문제에 대해 지난 20년간 일본 정계가 벌여온 논쟁과 고스란히 겹친다.

    1차 걸프전 당시 막대한 전쟁비용을 다국적군에 제공하고도 직접 참전한 병력이 없던 탓에 수모를 당했던 일본은 이후 자위대의 활동영역을 국내로 제한하던 원칙을 깨고 부분적인 해외파병에 나서게 된다. 주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차원에서 이뤄진 이러한 행보는 국내 자유주의·좌파 진영의 비판은 물론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는 동북아 국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후 병력규모 24만 명에 달하는 자위대의 일본 내 이미지는 급속히 개선됐고, 최근에는 입대 경쟁률이 4~5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고 일본 측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래 가지고 여차할 때 싸울 수 있겠어? 놈들이 벽을 부수고 도시에 들어왔을 때 말이야!”(‘진격의 거인‘’1권 21쪽)

    “자위대는 강해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이노구치 다카시 일본 니가타현립대 총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왕을 위해 심장을 바쳐라” 같은 대사나 거인을 쓰러뜨리려고 초개처럼 목숨을 버리는 병사들 태도에서 군국주의 일본군의 악몽을 떠올리는 한국 독자도 온라인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며, 세상은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이므로, 지금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핵심 키워드로 쓴다는 점. 나치즘의 기반이었던 이른바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전후 일본은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과 경제교류 확대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대외정책으로 국제사회의 신망을 얻으려고 애썼다. 유엔에 적극 참여하고, 1990년대 후반 제3세계에 매년 1조 엔이 넘는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제공했다. 국가 간 협력과 이해야말로 평화를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게 이 시기 일본이 강조하던 외교정책의 핵심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사그라들고 있다. 2012년 일본의 ODA는 최고치의 절반 규모로 감소했고, 영토분쟁이나 역사 갈등을 ‘힘의 정치’로 해결하려 드는 이른바 현실주의적 행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정치권의 우경화와 맞물려 가시화하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본 지식인들조차 우려를 쏟아낼 정도다.

    앞서 말했듯 작가 이사야마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강조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직 초반부로 보이는 만화의 향후 줄거리가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갈지도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격의 거인’이 이렇듯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 바탕에는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 내 분위기나 정서의 변화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군대가 없는 비정상 국가’라는 불만, ‘섬 안에 갇혀 다가오는 위협에 대비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다.

    “평생 벽 안에서 나가지 못하더라도 밥 먹고 잠만 자면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마치 가축 같잖아.”(‘진격의 거인’ 1권 25쪽)

    “그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핵무기를 갖자는 논의도 태연히 할 수 있는 것이다.”(소에야 요시히데 일본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장)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일본의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연원이다. 만화는 인류가 거인을 피해 성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으로 설정했지만, 현실의 일본은 침략전쟁이라는 폭주(暴走)로 주변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기에 승전국들이 강제로 유폐한 것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일본이야말로 작품에 등장하는 거인인 셈. 그러나 ‘섬 안에 갇힌 나라’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일본 내 정서는 대부분 이러한 역사적 연원에 눈을 감는다. 침략전쟁의 가해자라는 반성보다 유일한 핵 피폭국이라는 피해자 정서만 되뇌는 게 대표적이다. 이러한 정서가 현재 일본 정치의 주류라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함정이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거인이 일본

    평화헌법 개정에 전력을 다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월 참의원선거를 통해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한 바 있다. 반면 일본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우파 정당들이 참의원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도 헌법 개정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다. 여론의 공감대가 부족해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른바 ‘마지막 보루’론이다. 또한 정해진 길은 없으며, 당장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개헌 논의로 이어질 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을 군국주의 부활과 동일시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무력’의 필요성과 ‘약육강식의 법칙’을 외치는 애니메이션이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는 현재 상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특히 개헌 이후 국제적 행보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 여론 일각의 ‘길 없는 불만’만으로 대외정책의 대전환을 논하는 일본의 오늘이야말로 주변국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원천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진격의 거인’ 신드롬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일 것이다.

    ※ 본문의 일본 전문가들 말은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삼성경제연구소, 2013)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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