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2

2013.04.08

특명! 비접촉戰으로 피해 줄여라

근접전 대신 원거리 전투 수행 항공력과 무인화에 박차

  • 김수빈 디펜스21+ 기자 subin.kim@outlook.com

    입력2013-04-08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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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명! 비접촉戰으로 피해 줄여라

    KBS와 MBC 등 주요 시설의 정보 전산망이 완전 마비된 3월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동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침해대응센터 종합상황실 직원들이 해킹 가능성에 대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이 죽는다.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인명 피해는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중동 최강 군대를 보유한 이스라엘이 2006년 레바논 전쟁에서 헤즈볼라에게 한 수 접고 휴전을 한 데는 가족을 군인으로 둔 중산층의 압박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전쟁의 상당 부분을 민간 군사기업에 맡긴 이유 가운데 하나도 자국군 인명피해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기술이나 경제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많은 국가가 아군과 적군이 직접 부딪히는 근접전 대신 원거리에서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투를 수행하는 비접촉전에 주력한다.

    3월 15일 러시아 국방산업 담당 부총리 드미트리 로고진은 군 관련 협의회에서 2020년까지 러시아군이 비접촉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러시아 무기개발 사업의 우선과제라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올해 국방비로 1조3000억 루블(47조 원)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보다 50%나 늘어난 금액이다.

    항공력으로 승리한 코소보 전쟁

    가장 널리 이용한 비접촉전 방식으로는 항공 폭격을 들 수 있다. 항공력을 활용하면 상대방의 전력이 미치지 못하는 원거리(공중)에서도 효과적으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미군은 자신의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려고 1991년 걸프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항공력을 사용했다. 사상 최초로 항공력만 사용해 승리한 전쟁으로 평가받는 99년 코소보 전쟁은 비접촉전의 대표적 사례다. 공식발표에 따르면 당시 나토군 가운데 전투 작전 중 사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항공력 또한 사람이 운영하기는 마찬가지다. 혹시나 격추당해 조종사가 희생되기라도 하면 피해가 막심하다. 미 공군의 경우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260만 달러 이상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항공력 운영은 무인기(드론)를 이용한 무인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항공력 무인화는 인명피해 방지와 비용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본토 기지에서 화면을 보며 조종하는 무인기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는 13만5000달러면 충분하고, 훈련기간도 기존 전투기 조종사에 비해 20주를 단축할 수 있다.



    무인기 작전을 선도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2008년까지 연 40회를 넘지 않았던 미군의 무인기 공습작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1년 후인 2010년에는 연 120회 이상으로 급증했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된 바 없으나 대략 1만 대 정도 무인기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미 공군에서 양성한 무인기 조종사 수가 사상 처음으로 일반 군용기 조종사 수를 넘어섰다.

    바야흐로 G2 시대, 중국도 빠질 수 없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중국이 운용 중인 무인기는 280대 이상이며, 지금도 새로운 기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폴란드도 2018년까지 노후한 수호이 전투기를 무장 무인기 30대로 대체하고 정찰용 무인기 20여 대를 도입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 초 독일은 국외 분쟁지역에서 사용하려고 무장 무인기 도입을 준비하다 국내외 여론으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더욱 간접적이면서도 가공할 만한 비접촉전 방식으로는 사이버전을 들 수 있다. 폭발음도 들리지 않고 불꽃조차 튀지 않지만, 3월 20일 국내에서 벌어진 사이버테러는 사이버전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사이버전의 역사에는 의외의 강자가 눈에 띈다. 바로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2006년 레바논 전쟁에서 상당한 수준의 사이버전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콧대를 꺾었다. 이 일을 계기 삼아 심기일전한 이스라엘은 현재 사이버전 수행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스라엘군 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8200부대(Unit 8200)는 이스라엘의 정보·사이버전 전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8200부대는 2010년 이란의 핵개발 진척도를 심각하게 후퇴시킨 ‘스턱스넷’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갈 길이 멀다

    특명! 비접촉戰으로 피해 줄여라

    미국 공격 무인항공기의 상징인 ‘프레데터’. 두 발의 레이저 유도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어 폭격도 가능하다.

    3월 20일 사이버테러에 사용된 악성코드는 감염된 모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내용을 부팅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한다. 심리적 충격을 주는 데는 나쁘지 않지만 정교한 사보타주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스턱스넷은 바로 이것을 해냈다. 통상적인 악성코드나 바이러스와 달리 스턱스넷은 지멘스에서 제조한 산업용 장비와 소프트웨어만을 교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란 핵시설이 지멘스 장비를 쓴다는 사실과 국가 차원의 지원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코드라는 점 때문에 지금까지도 스턱스넷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동작품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 또한 사이버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 보안업체가 7년 동안 일련의 지능형지속가능공격(APT)을 분석한 결과 그 배후에 중국의 사이버전 부대가 있다고 발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문제의 61398부대는 국영통신기업이 이례적으로 본부에 고속 광케이블망을 설치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록히드마틴 같은 주요 방산업체는 물론이고, 미국의 전력망이나 원유·가스 파이프라인 등의 기간시설에도 공격을 시도하는 등 중국의 사이버전 수행 방식은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

    비접촉전을 준비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는 모두 근래에 군사작전으로 인명 피해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러시아의 경우 2008년 남오세티야를 두고 조지아와 충돌한 전쟁에서 74명이 숨지고 19명이 행방불명됐다. 미국은 10년 넘게 수행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현재까지 군인만 2000여 명이 숨졌다.

    한국은 이런 경험이 없다 보니 비접촉전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비접촉전을 크게 항공력(무인화) 운용과 사이버전으로 나눠볼 때, 항공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무인화와 사이버전에 대한 대비는 특히 미미하다. 다만 앞서 살펴본 비접촉전의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수행하는 기술과 무기체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차기전투기(FX) 사업과 한국형 전투기(KFX·보라매) 사업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스텔스 기능도 사실 비접촉전을 위한 기술이다. 대표적인 스텔스 전투기이자 현존 최강 전투기로 평가받는 미국의 F-22 랩터는 개발 당시부터 소련 전투기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 먼저 격추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됐다. 스텔스 기술로 상대방이 자기 존재를 눈치 채기 어렵게 만들고, 정교한 레이더로 상대방을 먼저 포착한 다음 AIM-120 AMRAAM 같은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로 상대방을 격추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한국의 차기 전투기 사업에서 경합 중인 전투기 가운데는 F-35가 가장 뛰어난 스텔스 기능을 자랑한다.

    추진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에서도 스텔스 기능은 이미 주요 쟁점으로 자리매김했다. 1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발표한 ‘보라매’ 설계안은 날개 모서리 정렬 각도를 F-22 랩터와 유사하게 설정해 스텔스 기능을 깊이 고려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텔스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해도 보유한 무기의 사정거리가 미치지 못하면 결국 가시거리 내에서 교전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스텔스의 이점은 현저히 감소한다. 레이더와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 혹은 도입하는 일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한국 공군의 공대공미사일 보유량은 그나마 공대지미사일에 비해서는 양호한 수준이지만, 전시에 실질적으로 대비하는 데는 부족하다는 게 예비역 조종사들의 중론이다.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정찰 및 감시와 전략 표적의 위치 확인을 주목적으로 삼는 고고도 무인정찰기(글로벌호크) 도입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 적극 추진했다가 이명박 정부 초기 구매 취소로 계획이 바뀐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다시 도입을 추진했지만, 2009년에 비해 4배나 오른 가격이 제시돼 물의를 빚어야 했다. 군단 작전지역의 정찰 및 감시를 위한 군단급 무인기 사업은 업체들의 저조한 참여로 수차례 유찰되기도 했다.

    걱정스러운 사이버전 대비

    한편 한국 전장에 특화된 무인기 체계를 개발하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북한 해안포와 장사정포를 정밀타격할 수 있는 자폭형 고속무인기를 개발 중인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실은 채 발사할 수 있어 기동성이 뛰어나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전투용 다중로봇 통신장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인 장갑차 등을 현장에 투입해 인명피해 없이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복안이다. 전장뿐 아니라 유독물질이나 방사능 피폭이 우려되는 사고 현장을 통제하는 데도 다중로봇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사이버전 대비 부분이다. 3월 20일 사이버테러는 단순한 방식의 공격이었음에도 주요 방송사와 금융기관을 마비시켰다. 국내 보안 전문가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앙 관제식 보안 체계의 취약성과 국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한국식 공인인증체계를 문제점으로 지적했지만, 개선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3월 29일 국내 최대 보안업체인 안랩은 3월 20일 사이버테러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자사의 관리 소홀을 인정했다. 기업에서는 보통 중앙서버를 통해 일제히 각 개인용 컴퓨터(PC)의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한다. 이번 사이버테러에서는 이 중앙서버가 뚫렸다. 사용자가 아무리 조심해도 백신 업데이트를 통해 악성코드가 들어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중앙관제식 보안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공격을 방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격을 받은 후 그 근원과 방식을 연구하는 사이버 법의학(cyber forensic)도 향후 대비책 마련을 위해 절실하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사이버테러로 인명피해 등이 발생했을 경우 실제 군사력 동원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한 새로운 교전 수칙을 발표했다. 문제는 사이버 공격의 근원을 규명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3월 20일 사이버테러만 해도 처음에는 공격 근원지로 중국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지목했지만 알고 보니 농협 내부용 IP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이 전 세계 앞에서 체면을 구긴 순간이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민관군의 구별이 희미하다. 공격 또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이들 세 주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종합적인 기구를 설립하고 인력을 보강하는 대책이 절실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일부 정부부처가 위기를 이용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고질적인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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