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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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나무다리’는 황실 진본 알고 있었다

표구 형식만으로도 작품 진위와 시기 파악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3-11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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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 ‘나무다리’는 황실 진본 알고 있었다

    그림1 장택단의 ‘청명상하도’ 중 홍예다리. 그림2 쑤저우편 ‘청명상하도’ 중 돌다리. 그림3 구영의 ‘청명상하도’ 중 돌다리.

    수업 중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모나리자’처럼 중국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뭐냐고. 중국 최고 문화재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그림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북송 휘종 선화시대(1119~1125) 궁정화사 장택단(張擇端)이 그린‘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다(그림1). 이 그림은 세상에 나온 이후 풍문이 끊이질 않은 데다, 후대에 원작과 상관없이 여러 스타일로 위조돼 현재 ‘청명상하도’라고 부르는 유명한 가짜만도 수십 점이 넘는다.

    ‘청명상하도’는 본래 북송 황실 소장품이었다. 이후 1127년 금나라 군이 북송을 멸망시키면서 약탈해 금나라 소유가 됐다가 원나라 황실로 넘어갔으나, 황실에서 표구하는 장인이 가짜와 바꿔치기해 민간 컬렉터에게 팔아버렸다. ‘청명상하도’는 명나라 때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400여 년 동안 여러 컬렉터 손을 거쳤고, 1799년 청나라 황실 소장품이 됐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1906~67)가 1925년 자금성에서 이를 가지고 나온 후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만주국이 무너지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명상하도’ 가짜만 수십 점

    1950년 겨울 양런카이(楊仁愷·1915 ~2008) 선생은 ‘그림1’을 랴오닝성박물관 임시 창고에서 찾아냈다. ‘그림1’은 동북인민은행이 수집해 보내온 ‘청명상하도’ 3 점 가운데 하나였다. 자칫 가짜로 묻힐 뻔한 장택단의 진짜 ‘청명상하도’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양런카이가 중국에서 ‘나라의 눈(國眼)’ ‘최고 감정가(人民鑑賞家)’라고 칭송받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당시 사람들이 진짜로 여겼던 ‘그림2’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 쑤저우 지역에서 만들어진 가짜 ‘쑤저우편(蘇州片)’이었다. 이미 가짜 ‘청명상하도’를 10여 점 넘게 봐온 양런카이는 그림 3점 가운데 ‘그림2’를 제외한 나머지 2점도 ‘쑤저우편’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막상 본 결과, 하나는 장택단이 그린 진짜였고, 다른 하나는 명나라 쑤저우 지역화가 구영(仇英·1502?~1552?)이 그린 그림이었다(그림3). 그는 이것들이 발굴된 것을 가리켜 중국미술사에서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양런카이가 ‘그림1’을 장택단의 진짜 ‘청명상하도’라고 감정한 근거는 그림 중간에 위치한 나무(木)로 만든 ‘홍예다리’(虹橋·무지개 모양처럼 만든 둥근 다리) 때문이다. 이는 지금의 허난성 카이펑(開封)인 북송 수도 동경(東京)에서 1103년부터 1126년까지 살았던 맹원로(孟元老)가 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내용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가짜들은 이 나무로 만든 홍예다리를 모두 ‘돌(石)다리’로 그렸다.

    그림 속 ‘나무다리’는 황실 진본 알고 있었다
    ‘그림1’과 함께 발견된 ‘그림3’은 쑤저우편 ‘청명상하도’가 모두 구영의 ‘청명상하도’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그림2’는 바로 ‘그림3’을 흉내 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영이 ‘그림1’을 재현하면서 북송 수도였던 동경이 아닌, 자신이 생활했던 명나라 중기 쑤저우 지역을 모델로 했다는 점이다.

    ‘청명상하도’가 장택단이 그린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름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건 그림 속 ‘나무다리’ 하나였다. 이렇듯 그림에 묘사된 사물 하나하나는 그것이 그려졌던 시대를 입증한다. 시대적 스타일은 작품 주제와 소재는 물론 작품에 쓰인 종이, 비단, 안료, 도장, 표구에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상황에 따라 표구 형식만으로도 작품 진위와 제작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2012년 9월 필자는 서울 한남동 리움 상설 전시관에서 고려시대(918~1392) 그림 ‘춘정관화도’(그림4)와 ‘추정화선도’를 봤다. 누가 봐도 두 그림은 같은 시기, 같은 사람이 그린 작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두 작품 모두 고려시대 그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 그림은 중국풍으로, 그림 속에 그려진 족자(그림5) 표구 형식은 16세기부터 유행한 ‘능권릉천지이색장(綾圈綾天地二色裝)’이다.

    ‘능권릉천지이색장’ 족자의 규정된 표구 격식은 쑤저우 지역 대(大)컬렉터 문진형(文震亨·1585~1645)이 쓴 ‘장물지(長物志)’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윗부분 천두(天頭)와 아랫부분 지두(地頭)는 반드시 용, 봉황, 구름, 학 문양의 검은색 능(綾)을 사용하되 꽃 문양의 하얀색이나 아이보리색 능은 쓸 수 없다. 경연(驚燕)의 두 줄은 백릉(白綾)을 쓰며 폭은 3.4cm 남짓이다. 족자의 양쪽 테두리 두 줄 경계선은 검고 굵어야 한다. 옥지(玉池)의 백릉도 앞서 말한 용, 봉황, 구름, 학 문양을 쓴다. …큰 서화작품의 경우 작품의 네 변은 백릉으로 두르고, 좁은 띠로 테두리를 해도 된다”(그림6).

    제비를 놀라게 한 송대 족자

    이는 송대에서 유행하던 족자 형식과 전혀 다르다. 송대 족자 형식을 현전하는 유물로 살펴보면, 1958년 허난성 옌스(偃師)현 수고(水庫) 서쪽 송대 묘에서 출토된 잡극(雜劇) 인물이 새겨진 벽돌 중 인희색(引戱色)이 들고 있는 족자와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인물’ 중 초상화 족자, 장택단의 ‘청명상하도’ 중 술집 십천각점(十千脚店) 입구에 걸린 족자, 송나라 동경(銅鏡) ‘사녀매장경(仕女梅鏡)’에서 여인들이 감상하는 그림 족자가 있다(그림7).

    송대 족자는 경연이 움직여, 말 그대로 제비(燕)를 놀라게(驚) 했다. 바람이 불어 족자가 움직일 때나, 제비가 날아들어 족자가 날개에 부딪칠 때 경연이 움직여 제비를 놀라게 한 것이다. 그러나 ‘능권릉천지이색장’ 형식으로 오면 경연이 장식적으로 변해 그 흔적만 남았다. 또 송대 족자는 ‘능권릉천지이색장’과 다르게 작품 네 변을 백릉으로 두른 옥지가 없다. 고려시대 족자는 송대 족자와 다르게 경연이 없는 반면, 송대 족자와 마찬가지로 옥지가 없다(그림8).

    ‘그림5’는 커다란 서화작품을 ‘능권릉천지이색장’으로 표구한 것이다. 필자는 ‘춘정관화도’가 16, 17세기 쑤저우 지역에서 유행하던 복고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아 18세기경 중국에서 제작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속 ‘나무다리’는 황실 진본 알고 있었다

    그림7 송대 족자 형식. 그림8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고려시대 ‘은제도금타출신선무늬 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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